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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자동차 왕' 헨리 포드 (2)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 방문객들이 전시차량 정보를 담은 터치스크린을 이용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자동차 회사 '포드' 창업주 헨리 포드, 두번째 시간입니다.


헨리 포드는 1903년 처음으로 승용차 한 대를 팔면서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자동차 시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낸 차는 MODEL T, 4기통, 20마력짜리였습니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그 시절에 T형 차는 가장 빠르고 가장 믿을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됐고, 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1908년 10월 본격적으로 판매에 들어간 T형 차의 가격은 850달러. 오늘날의 시세로는 약 2만2천 달러쯤 됐습니다. 아주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력이 있는 사람은 살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T형 차를 소재로 한 소설도 나오고 노래까지 유행했습니다.

포드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공장을 짓고 일명 컨베이어 조립식 생산 방식으로 생산량을 크게 늘렸습니다. T형 차는 1914년에 50만대가 생산됐고, 그때 미국 자동차 시장의 50%를 차지했습니다. 1923년에는 그 비율이 57%로 높아졌습니다. 가격도 더 내려갔습니다. 1916년에는 차 한 대 값이 345달러, 오늘날 시세로 8천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의 절반 이하.

포드는 공장에 오래 일하는 애사심을 늘리기 위해 임금도 크게 올렸습니다. 다른 곳보다 2배가 넘는 하루 5달러, 요새 가치로 117달러 이상을 지불했습니다. 포드가 직원들에게 임금을 올려주자, 그 직원들이 또 T형 차를 사는 고객이 됐습니다.

포드 차는 세계적으로도 판매망을 넓혀, 홍콩의 택시, 남미를 구르는 대부분의 차도 포드 제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차 중에서 포드 차가 절반에 달했습니다. 어느 한 자동차 회사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예는 그때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습니다. 포드는 그때 미국 최대의 부자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포드는 이어 신문 발행에도 뛰어들었고, 철도 회사도 사들였습니다. 비행기도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원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포드도 강력한 도전을 맞게 됐습니다. 제너럴모터스, 약칭 GM사가 '쉐보레(CHEVROLET)’라는 차를 내놓고 포드가 독점하다시피 하던 ‘보통 사람들의 자동차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포드의 T형 차는 여러 해 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엔진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차가 너무 느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GM은 해마다 새로운 형을 내놓아 소비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했습니다. 또 포드 차를 사려면 대금을 한 번에 다 내야 했는데, GM은 여러 차례에 나누어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포드 차 시장 점유율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포드는 1926년 T형 차의 막을 내렸습니다. 포드는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차들을 내놓았으나, 그 수명은 길지 못했습니다. 1930년 이후 포드는 늘 GM에 밀렸습니다. 1929년에 몰아친 미국의 대공황도 포드에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1931년에 포드 차 판매율은 전해의 절반으로 떨어졌고 3천 7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포드 사는 그 후로도 근로자들의 노조 결성 운동, 경영권 승계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헨리 포드는 1947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헨리 포드는 갔지만, 그가 세운 포드 자동차는 아직도 세계 6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건재하고 생산량은 2014년 기준 약 600만대에 달하고 있습니다.

헨리 포드는 누구보다 자동차에 몰입한 인생을 살았고, 수십억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인물, 그리고 자동차 산업을 세계 최대의 산업으로 발전시킨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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