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관련 내통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들과 대통령 자신까지도 사면할 수 있는지를 전문가에게 문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지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란 무엇인가”
사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형벌 자체 혹은 그 일부를 없애주는 것을 말하는데요. 대부분의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써 대통령의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사면은 특정 죄에 대해 실시하는 것을 말하고, 특별사면은 이미 형을 선고받은 특정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해 주는 것을 말하는데요.
예를 들어 ‘생계형 범죄나 음주운전으로 형을 받은 사람은 사면한다’라고 할 경우,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이 사면 받게 되므로 일반사면에 해당합니다. 반면, ‘횡령죄가 인정된 대기업 회장 아무개는 경제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므로 사면한다’라고 할 경우에는 특정 범죄가 아니라 사면 대상자를 특정했기 때문에 특별사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특수한 사면제도와 다른 나라의 사면제도”
미국 연방헌법 제2조 2항에는 ‘대통령은 탄핵에 관련됐을 경우를 제외하고 미합중국에 대한 범죄에 형 집행을 유예하고 사면할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탄핵이란 위법행위를 한 고위 공무원을 의회가 해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데요. 대통령의 재량행위로 인정돼 제한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연방헌법에 규정된 대로 미합중국에 대한 범죄, 즉 연방법을 어긴 범죄에 해당할 경우에만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각 주의 법에는 미치지 않는데요. 주법과 관련된 죄의 사면은 주지사나 주 정부 특별위원회가 할 수 있습니다. 또 헌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그간의 판례에 따라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은 형사 사건에만 적용되고 일반 민사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도 대통령의 사면권을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는데요. 프랑스도 미국처럼 대통령의 사면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테러범죄나 전쟁범죄, 반인륜 범죄 등과 관련해서는 사면을 배제한다는 조항이 있고, 형 확정 전에 사면이 이뤄져도 재판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면 절차가 매우 엄격한데요. 사면에 앞서 죄를 판결한 판사들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또 사면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사면을 조건으로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조건부 사면 규정도 있는데요. 대상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면을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형기가 정해진 범죄자는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기 전에는 사면이 불가하고, 무기징역의 경우에는 형 집행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사면이 불가하도록 못 박고 있습니다.
“사면권 논란과 사례”
법치주의가 확립되기 이전 시대에는 형벌을 줄 수 있는 권한을 왕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면제해 주는 권한 역시 왕이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때문에 옛 기록에는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죄인들을 대대적으로 사면해주었다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사면을 왕이 내리는 은혜와 자비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법치주의가 확립된 이후에는 삼권분립에 따라 형벌을 내리는 권한과 죄를 면제해 줄 수 있는 권한이 분리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사면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통령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됐는데요. 초기 미국의 헌법 제정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반란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시점에 사면을 하면 나라의 안정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신중함과 훌륭한 인품을 가진 대통령 한 사람이 다수의 의회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대통령 사면권을 헌법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는데요. 결국, 의회의 동의를 받게 하자는 당시 다수 헌법 제정자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해밀턴의 의견이 채택돼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체로 사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는데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정부에 대항해 폭동을 일으킨 범죄자들이나 농민을 공격한 인디언들을 사면했고,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연합군에 가담했던 병사들을 사면함으로써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해 사면권을 활용했습니다.
반면 정치적 논란을 거세게 불러온 사면권 행사도 여러 번 있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면한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결정이었습니다.
[녹취: 제럴드 포드 대통령]
닉슨 대통령의 사면을 발표하는 포드 대통령의 당시 육성을 들어보셨는데요. 닉슨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당시 부통령으로 그 자리를 승계한 포드 대통령은 이후 닉슨을 사면하면서, 두 사람 간의 정치적 거래에 의한 사면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반면 포드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둘로 갈라져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며 옳은 결정이었다는 반론도 있었는데요. 큰 정치적 논란을 빚었던 사면권 행사임에는 분명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을 몇 시간 앞두고 사면권을 행사해 논란이 됐는데요. 특히 마약소지 혐의로 수감되었던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 씨와 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된 금융인 마크 리치 씨가 사면 대상에 포함돼 더욱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친인척과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인사를 퇴임 직전에 사면한 것을 두고 언론으로부터 최악의 사면권 행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 과연 가능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미국 대통령은 완벽한 사면권을 갖고 있다”라면서 “지금까지 러시아 관련 의혹에 대해 드러난 것은 정보기관이 유출한 기밀문서와 가짜 뉴스밖에 없다"라고 말했는데요. 게다가 대통령이 러시아 내통 의혹 관련자와 자신에게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전문가들에게 문의했다는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연방 헌법상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언급한 것인데요. 이와 관련해 커밋 루스벨트 펜실베이니아 대학 법학 교수는 “법 조항 그대로 탄핵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옹호했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의 브라이언 칼트 법학 교수도 사면권에 아예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권한의 범위는 꽤 넓다”라고 인정했는데요.
대체적으로는 대통령 자신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한 답은 누구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의 어윈 케머런스키 학장은 “전례가 없는 만큼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확언할 수 없다”라고 의견을 밝혔고, 대니얼 코빌 캐피털 대학 법학 교수 역시 “닉슨 대통령조차 감히 시도하지 않았을 만큼 전례가 없는 일로, 실제 시도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사면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 헌법학자들이 많은데요. 해럴드 브러프 콜로라도 법학 교수는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이 사면을 승인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는데, 승인, 또는 허가한다는 뜻의 단어 'grant'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의미”라면서 사면권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자비 행위로 해석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사면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련 조사 자체를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조사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내다봤습니다.
[녹취: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공보국장]
이에 대해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신임 공보국장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러시아 관련 의혹과 관련해 그 누구의 사면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선을 그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는데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친인척에게 사면권을 행사할 경우 러시아 관련 수사 방해로 인해 탄핵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당분간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