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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인에 희망 주고파" -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4)


워싱턴 DC 인근 알링턴에 있는 '쿠바 인스파이어즈(Cuba Inspires)' 사무실에서 고객들로부터 받은 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는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워싱턴 DC 인근 알링턴에 있는 '쿠바 인스파이어즈(Cuba Inspires)' 사무실에서 고객들로부터 받은 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는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헤엄쳐 쿠바를 탈출한 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마지막 순서입니다.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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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7살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해 이제는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여성이 있습니다.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씨인데요. 제시 씨는 쿠바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의 ‘쿠바 인스파이어즈’라고 하는 사회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입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사회적 기업이란 기업의 이윤도 취하지만, 사회적 목적이 뚜렷한 회사를 말하는데요. 여행객들이 쿠바를 여행하면서 동시에 쿠바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일정에 고아원 방문을 넣어서 여행객들이 직접 쿠바의 고아원을 둘러보고 후원할 수 있게 주선하죠. 우리는 기업 이윤의 10%를 쿠바로 환원합니다.”

쿠바와 미국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 ‘쿠바 인스파이어즈’를 시작했다는 제시 씨. 이렇게 쿠바인들도 돕고 또 미국 여행객들에겐 진짜 쿠바의 모습을 볼 기회를 제공하며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데요. 회사 부사장인 마르코 씨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제시 씨의 모습은 동료들에게도 영감을 준다고 했습니다.

[녹취: 마르코 부사장] “제시 씨는 직원을 뽑으면 제일 먼저 쿠바로 보내요. 직원들이 먼저 직접 쿠바를 경험하고 느껴본 이후에 고객들에게 자신이 느낀 감동과 즐거움을 전하라는 겁니다. 제시 씨는 이렇게 모든 직원이 같은 열정으로 일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죠.”

이렇게 기업인으로서의 열정이 넘치는 제시 씨는 하지만 경영인이 되기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7살 때, 쿠바를 탈출하려는 이모를 배웅하다가 사람들에게 떠밀려 엉겁결에 배에 올라탔고 5일 밤낮을 바다를 떠다니다 미 해안경비대에 구조됐고,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미국에 온 지 1년 만에 이모가 자살하면서 제시 씨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됐는데요. 하지만 지역 사회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음악가의 꿈을 키우며 자랐고, 2009년부터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원 보좌관으로 일 할 당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또 일어났는데요. 7살 때 헤어진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겁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한순간도 잃지 않으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제 이름을 주면서 미국에 가게 되면 딸을 좀 찾아달라고 부탁하셨대요. 그런데 실제로 어떤 분이 미국에 와서 제 이름을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찾아본 거죠. 당시 저는 의회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나왔고, 인터넷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을 통해 저한테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전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너무 잔인한 농담 아니냐며 웃으면서 답장을 보냈는데 진짜 저희 어머니를 아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분을 통해 어머니 전화번호를 받게 된 제시 씨는 어머니와 헤어진 지 19년 만에 처음으로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처음엔 둘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흐느껴 울기만 했어요. 1분에 99센트 하는 비싼 국제 전화였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반가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가 매우 편찮으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만나러 쿠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는 미국과 쿠바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가 잘 나오지도 않았거든요. 하지만 당시 쿠바 대사관 사람들까지 다 나서서 도와주셨고 결국 쿠바 방문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비자와 여권과 짐을 챙겨 들고, 제시 씨는 들뜬 마음으로 쿠바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제시 씨는 끝내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미 연방의원 보좌관 재직 당시 쿠바 아바나를 방문해 가족과 상봉했다.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미 연방의원 보좌관 재직 당시 쿠바 아바나를 방문해 가족과 상봉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안타깝게도 제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헤어졌던 쿠바의 가족들을 어머니 장례식에서 다 만날 수 있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날이에요. 저도 저지만, 저희 어머니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일평생 저를 만날 희망 하나로 사셨는데 어쩜 딸을 보기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나실 수 있냐 말이에요. 원망도 됐고, 화도 났고, 죄송하기도 하고…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제시 씨는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쿠바를 방문하고 또 쿠바에 있는 일가친척들을 만나면서 쿠바에 대한 애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쿠바라고 하면 공산주의, 혁명, 담배만 떠올리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쿠바 인스파이어즈'를 통해 쿠바의 문화와 선량한 사람들을 알리는 일을 했고 어느새 제시 씨는 쿠바에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얼마 전에 쿠바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오더니, “제씨 씨죠? 당신을 잘 알아요.”라고 말을 거는 거예요. 전 정말 모르는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패키지’에서 저의 인터뷰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쿠바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다 보니까 인권 단체들이 ‘패키지’라고 해서 미국 방송이나, 뉴스, 인터뷰 등을 모아서 쿠바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거기에 제 인터뷰가 들어 있었던 거에요. 그분은 절 보고 쿠바의 자랑이라며 너무 좋아하셨어요. 의도하지 않게 쿠바를 떠나 미국에 오게 됐지만, 쿠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됐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난민에서 성악도로, 의회 보좌관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뇌 손상을 입은 환자로, 그리고 이제는 기업인으로 우뚝 선 제시 씨.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견뎌낸 제시 씨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꿉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저는 미국인의 긍지이자 쿠바인의 긍지가 되고 싶어요. 두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가 돼서 두 나라 사이에 더 많은 인적, 문화적 교류가 오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아직 쿠바에 대한 제재가 있지만 언젠간 제재가 완전히 풀려서 두 나라 국민이 자유롭게 오가고, 결국엔 저희 ‘쿠바 인스파이어즈’ 회사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오는 게 저의 첫 번째 소원이에요. 저는 또 역경이 많았던 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가지면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고 또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제시 씨는 미국과 쿠바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는데요. 북한의 청취자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했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저는 북한에 있는 청취자분들께 꿈을 잃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간다고 해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꿈과 희망이니까요. 저는 난민이 된 순간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을 끊임없이 직면했지만,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어느샌가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여러분의 꿈도 이루어질 그 날을, 기대하며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쿠바 출신 사업가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씨의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난민의 아메리칸 드림을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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