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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소녀 의회보좌관 되다 -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2)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가운데 오른쪽)가 지난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ECDE(Ethiopian Community Development Council) 행사에서 강연 직후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헤엄쳐 쿠바를 탈출한 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미국과 쿠바의 다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쿠바 인스파이어즈(Cuba Inspires)' 라고 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여성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쿠바의 열정이 넘치지만, 뜻하지 않게 고향 쿠바를 떠나 난민이 된 여성인데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씨입니다.

7살 때, 쿠바의 공산주의와 경제난을 이기지 못하고 탈출을 결심한 이모를 배웅하기 위해 바닷가에 나갔던 제시 씨. 이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갑자기 해변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어두운 밤이라 경찰인지 군인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몰래 배에 타려던 사람들이 난리가 났죠. 그리곤 해변에 서 있던 저와 할머니까지 배에 태워버린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와 할머니는 어느새 배를 타고 바다 위에 있었죠. 수영을 해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수영을 못했던 저와 할머니는 그렇게 전혀 계획하지 않게 쿠바를 떠나게 됐습니다. 5일 밤낮을 비바람을 맞으며 항해한 끝에 미국 해안 경비대가 우리를 발견했고,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있던 난민촌으로 가게 됐어요.”

1995년, 제시 씨는 7살의 나이에 난민촌에 들어갔습니다. 나이도 어린 데다 낙천적인 성격의 제시 씨는 난민촌에서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죠. 하지만 난민 자격으로 미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모는 미국에 온 지 1년 만에 자살하고 맙니다.

이후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자란 제시 씨에겐 피붙이라곤 외할머니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수많은 삼촌과 이모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데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저는 가족이 없었지만, 지역 사회분들이 저의 멘토와 후원자가 되어 주셨어요.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는 분도 계세요. 후원자 분들이 학비며 음악 공부에 필요한 돈까지 다 지원을 해주셨어요. 저는 성악을 공부해서 오페라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성악을 전공하게 된 것도 음악가였던 한 후원자분 덕분이에요. 그분 덕에 장학금을 받고 플로리다 탬파 있는 유명한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죠.”

후원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은 친 부모 못지 않았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후원자분들은 저를 그저 도움이 필요한 한 아이로 봐주셨어요. 난민이나 이민자에게 갖는 부정적인 시각이 전혀 없이, 딸처럼, 조카처럼 여겨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신 거죠. 사실 우리 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 하시고 또 매일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제가 음악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을 못 주셨어요. 하지만 제겐 이모 또는 삼촌이라고 부르는 후원자분들이 계셨죠. 제가 합창단 연습이나 오페라 공연을 다닐 때마다 그분들이 시간을 내서 저를 차로 데려다주시고, 데려오시고 하셨어요. 제가 하는 공연마다 참석하는 건 물론이고, 필요한 재정적인 후원까지 다 해주셨어요. 큰 사랑의 빚을 지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제시 씨는 한 후원자 덕분에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제가 탬파에 있을 때였어요. 제 후원자 중 한 분이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죠. 당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한창 선거운동을 할 때였어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저를 보시곤 “아가씨, 저를 뽑아 줄 건가요?” 라고 물었는데 전 당돌하게 “아니요. 안 뽑을 거예요. 어짜피 대통령에 당선되지도 못할 건데요 뭐.” 라고 말한 거에요. 그래 놓고는 좀 미안해서 “전 아직 미국 시민이 아니에요. 만약 시민권을 따게 되면 오바마 후보님을 뽑을게요.” 라고 말했는데요. 정말 선거일 전에 시민권을 받게 됐고 오바마 후보에게 저의 첫 한 표를 던지게 됐죠.”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만남 덕분에 제시 씨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올 결심을 하게 됩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보면서, 나도 워싱턴 DC 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지역 사회의 도움을 엄청 많이 받고 자랐잖아요? 늘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받은 사랑을 미국인들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는 걸 보고 또 미국 사회에 변화가 시작되는 걸 보고는 나도 이 변화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탬파를 떠나 워싱턴 DC로 갔어요.”

오페라 가수를 꿈꿨던 소녀는 그렇게 해서 의회에서 일하게 됩니다. 당시 제시 씨는 20살에 불과했습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저의 출신 지역인 플로리다 탬파 지역구를 대표했던 캐시 캐스터 민주당 하원의원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고 했죠. 그리고 2009년 2월 5일부터 캐스터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인턴, 즉 수습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월급을 못 받았어요. 저는 결국 의회에서 퇴근하고 나면 집 없는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노숙자 쉼터에서 잠을 청해야 했어요. 나중에 캐스터 의원이 제 사정을 알고는 의원 사무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허락해 줬고요. 일한 지 4개월 만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어요. 첫 월급을 받자마자 살 집을 마련해서는 탬파에 계시던 할머니를 바로 모시고 왔죠.”

난민 출신으로, 본인과 같은 난민이 많은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과 일을 하며 제시 씨는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미국 사회에 영향을 주는 지도자가 되는 꿈을 키우던 제시 씨에게 하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일어납니다.

[녹취: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2012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어요. 운전해서 가는데 어떤 차가 와서 제 차를 박은 거예요. 그 사고로 외상성 뇌 손상을 입고 특별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뇌를 다쳤으니 걷는 건 물론이고, 말하고, 쓰는 것도 못했죠. 의사들은 제가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전 결국 의회 보좌관직을 떠나야 했고요. 2012년부터 16년까지 4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처음엔 제 인생이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기독교인이거든요. 어느 날, ‘하나님이 내 인생의 다른 문을 열어주시려고 이렇게 고난을 주시는가 보다’ 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 믿음을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 번 토하면서 뇌가 제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했죠.”

제시 씨는 믿음의 힘과 강인한 의지로 힘겨웠던 치료과정을 이겨냈고, 결국 아무런 장애가 없는, 완벽한 몸으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업인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게 됩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쿠바 출신 사업가 제시 칼자도 에스폰다 씨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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