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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북한 장마당 발전 놀라운 수준...되돌릴 수 없을 것"


평양의 최대 시장인 통일거리시장. 지난 2004년 3월 촬영한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이다.
평양의 최대 시장인 통일거리시장. 지난 2004년 3월 촬영한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이다.

북한 장마당이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북한 전문가의 분석이 최근 눈길을 끌었습니다. 탈북민들과 전문가들은 북한사회에서 이제 장마당 활동을 되돌릴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김정우 기자가 북한 장마당의 이모저모를 살펴봤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살다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주찬양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일찍 장사에 눈을 떴습니다. 주 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콩을 팔아 여기서 나온 돈을 장마당 장사밑천으로 삼았습니다.

[녹취: 탈북민 주찬양] “그래서 친구하고 시작한 게 밑돈이 있어야 하니까, 초기 자본이 있어야 하니까 가을걷이 끝나고 '북데기'라고 있습니다. 가을에 알곡 털어내고 이삭줍기할만한 북데기가 있는데 친구하고 그 속에서 두부콩 30kg을 주어서 엄마한테 팔아서 초기 자금을 만들어가지고..."

장사밑천을 마련한 주 씨와 친구는 장마당에 나가 처음에는 양말을 팔았습니다.

[녹취: 탈북민 주찬양] "처음에는 양말 장사, 캐릭터가 들어간 양말이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문양이 들어간 예쁜 양말, 그런 걸 파는 걸 시작해서 나중에는 친구하고 청진에 있는 도매시장에 가서 사과라든가 고기, 사탕, 단과류 이런 것들을 도매해다가... 저희 동네는 좀 시골동네니까 그런 것들을 장마당에서 팔고 그랬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장마당에 있는 철물점에서 일했다는 또 다른 탈북민 한모 씨는 장마당에서 매우 다양한 물건이 팔린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인 한모 씨] "네. 많아요. 여기 한국에 있는 시장처럼 물건이 각종 다양한 게 많아요. 철물점 같은 경우는 보통 금속은 괜찮은데 거래가 불법인 물품도 몰래 거래했습니다. 또 철물은 장마당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장마당에서 안 팔더라도 집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지난 2011년 북한 라선 시 장마당 입구. (자료사진)
지난 2011년 북한 라선 시 장마당 입구. (자료사진)

​북한의 장마당은 실제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 옌볜대학 국제정치연구소 진창이 소장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장마당이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진창이 소장] "북한이 전반적으로 시장화됐다. 사회적인 시장화 추세가 이미 나타났다. 생산양식에 있어서 중국의 80년대 상황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죠. 중국이 80년대 중반과 말에 시장경제 양식을 주입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북한은 이미 이걸 뛰어넘었습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폐쇄된데다 경제 제재를 받고 있지만, 장마당 경제는 과거 몇몇 중국 도시들의 시장화 수준을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탈북민 주찬양 씨와 한모 씨는 장마당 활동을 이제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찬양 씨는 특히 현재 북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장사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탈북민 주찬양] "젊은 세대라든가 왠만한 머리... 지능이 있는 사람은 다 장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13살인가 그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었습니다. 장마당에서 한 끼 벌어 한 끼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친구와 저는 호기심이 있어서 장사를 하고 싶은 그런 경우였는데... 너도나도 장사를 하니까 저희도 장사를 하고 싶었던 거죠."

주 씨의 설명처럼 북한에서 장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장마당은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가져온 산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한국 아산연구소 최현정 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녹취: 최현정 위원] "북한에서는 90년대가 공교롭게도 기상이변으로 큰 피해가 있던 시기에요. 그런데 이게 자연재난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자연재해 탓에 북한경제가 중앙집권적이고 계획경제로 이걸 유지하려는 것이 북한 정권의 의지였지만, 주민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장마당'이란 것을 도입해서 물건을 사고팔게 됐습니다. 중앙집권적인 공공배급 제도가 파괴되는 등 정권에서 원하지 않는 사회적 변혁이 일어난 거죠."

국가배급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먹고 살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것이 바로 장마당이라는 것입니다. 탈북민 한모 씨도 이런 상황을 자세히 증언했습니다.

[녹취: 탈북인 한모 씨] "공장이 돌아가지도 않고 돌아가더라도 주는 돈이 적으니까 공장 노동자는 이 걸로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은 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장마당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해서 가정을 유지해 가는 거에요."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해야 하는 북한의 현실은 주찬양 씨가 전하는 다음과 같은 농담 속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녹취: 탈북민 주찬양] "북한 사람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요즘 북한에는 두 개의 '당'이 있다. '조선노동당'하고 '장마당'인데, 조선노동당에 의지하고 살 수 없고 장마당에 의지해 산다는 말입니다."

주찬양 씨는 북한 정권이 장마당 활동을 규제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장마당 활동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탈북인 주찬양] "이제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해준 장마당도 있지 않습니까? 그거를 없애지는 않죠. 물론 한국산 물건을 파는 걸 단속할 수는 있겠지만... 웃긴 거는 거기에 단속하려고 나와 있는 사람들도 다 앉아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연결돼 가지고 뇌물을 받으면서 눈감아 주거든요? 그래서 정부가 이리저리 단속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처형해도 장마당은 엄청 활성화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옌볜대학 진창이 교수도 북한 정권이 이제 장마당 활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특히 북한에서 권력과 시장이 결합하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진창이 소장] "이제는 되돌릴 수 없죠. 북한경제의 중추가 시장이 한 개의 중추를 이루었거든요. 이제는 누구도 시장을 이탈할 수 없는 그런 구조가 됐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장하고 권력이 지금 합쳐지고 있다. 정치세력들도 이제는 시장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구조가 형성됐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쉽게 시장경제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부의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발생한 장마당 경제가 이제 점점 더 국가권력과 결합하고 있어 되돌리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장마당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장마당을 통해 북한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북한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킨 뒤 특히 외부 투자를 끌어오고, 관련 경제 규정을 정비해야만 국가경제의 장기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정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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