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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그리는 예술가- 루크만 아흐마드(4)


자택에서 민속악기 '탄부르'를 연주하고있는 루크만 아흐마드.
자택에서 민속악기 '탄부르'를 연주하고있는 루크만 아흐마드.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오늘은 지난 2010년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루크만 아흐마드 씨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쿠르드 소수민족으로 출신으로 시리아 군사 독재 아래 감시를 받다가, 터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루크만 씨. 고향 시리아에 모든 것을 두고 왔지만, 그에겐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미술 학교도 한번 다녀보지 못했지만, 실력으로 인정받은 루크만 씨는 이제 미국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 정도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죠.

루크만 아흐마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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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루크만 씨는 VOA 쿠르드어 방송에서 예술가를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지금 하는 일을 표현하자면, 다리를 놓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만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쿠르드계 예술가들을 방송을 통해 서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고요. 또 그림을 통해 억압 아래 있는 시리아의 쿠르드 족 사람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는 거죠. 미국에서 제가 누리는 이 자유를 통해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보람됩니다.”

미술을 통해 그리고 이제는 방송을 통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루크만 씨.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미국 생활 7년 만에 이제는 제법 여유도 즐기게 됐다는데요. 루크만 씨의 집을 찾아가 봤습니다.

[현장음: 루크만 씨 집]

요리를 직접 해주겠다고 앞치마를 두른 루크만 씨, 생선요리를 선보이겠다며 부엌에서 요리 도구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요리사가 되었을 거라는 루크만 씨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은데요. 각종 채소를 다지고, 생선에 특유의 양념을 해서 기름에 튀기기 시작합니다.

[현장음: 루크만 씨 요리]

쿠르드식 요리냐는 질문에, 전통적인 쿠르드 요리는 아니지만, 고향에서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요리라는 루크만 씨.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이렇게 요리를 하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는 어머니를 정말 정말 사랑하거든요. 미국에 온 이후로 어머니를 많이 못 뵈었지만, 대신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정치에 대해서도 모르고, 예술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세요. 그저 자녀들 생각만 하시는 분이죠.”

어머니의 요리법을 따라 한 루크만 씨의 요리는 모양이 그럴싸 한데요. 맛은 어떨까요?

[녹취: 기자] “정말 맛있습니다. 생선튀김인데 독특한 향이 들어갔고요. 식당을 내셔도 될 것 같아요!”

루크만 씨는 이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언어도, 문화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고향만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입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죠. 그 가운데 아무런 잘못이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금 이전의 시리아로 돌아갈 것이라는 꿈을 꿉니다. 전쟁이 있기 전 시리아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다른 종교와 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어도 평화롭게 살았죠. 쿠르드 족의 경우 시리아 정부로부터 독립을 추진했지만, 시리아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쿠르드 족이 시리아인과 결혼도 많이 했고요.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루크만 씨는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가족과 헤어져야만 했고, 본인 역시 그 중 한 명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다른 많은 시리아 가정들처럼 우리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자매 2명은 터키에 있고요. 독일로 간 형제자매도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터키에 가서 한두 번 뵌 적이 있지만, 아직도 시리아에 4명의 형제자매가 남아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좀 떨어져 있어서 그나마 안전하다곤 하지만 시리아를 떠나온 이후에 한 번도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시리아를 떠난 다음 해인 2011년에 전쟁이 시작된 데다 전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이니까 위험해서 시리아엔 못 돌아가죠.”

[현장음: 루크만 아흐마드 연주]

루크만 씨 집에는 쿠르드 전통 악기인 탄부르도 있었습니다. 루크만 씨는 기타처럼 생긴 탄부르 역시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그림도 그랬듯, 독학으로 연주법을 익혔고 이제는 수준급이 됐습니다.

[현장음: 루크만 아흐마드 연주와 노래]

이제는 그림 전시회에서 악기 연주와 노래 실력도 뽐낸다는 루크만 씨는 고향이 그리울 때, 마음을 위로해주는 도구가 바로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미국에서 생활하며 외로울 때가 있어요. 시리아에 있었으면 길거리에 나가서 이웃하고 이야기만 해도 마음이 풀릴 텐데 여기선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한정돼 있으니까 그게 안 되죠. 미국에 와서 처음엔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야 했어요. 열심히 배우고 익혔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제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제 뿌리를 기억했고, 제가 가진 색깔을 잃지 않았죠.”

루크만 씨는 자신의 것을 지킨다고 해서 미국인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저는 미국인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리아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미국인의 한 명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지금 악기에, 또 그림에 담아내고 있는 겁니다. 먼 훗날 ‘시리아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게 말이죠. 저는 역사의 증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림으로 시리아인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증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루크만 씨의 그림은 주제는 어둡지만, 색은 밝고 화려한데요. 시리아에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그 날을 기대하는 희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루크만 씨는 그러면서 북한에도 이런 희망의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시리아와 북한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독재와 탄압 속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든, 교사든, 노동자든 자신만이 가진 재능이 있겠죠? 그것을 통해 실력을 기르고 또 꿈을 가질 때, 독재 정권이 노리는, 취약한 억압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시리아에 있을 때도, 또 탈출해서도 제가 가진 재능이 곧 희망이었어요. 종이 한 장이 없어 허공에도 그림을 그렸지만, 그럴 때마다 힘이 솟았고 또 희망이 생겼죠. 북한에서 자유를 꿈꾸는 여러분들 모두 각자의 색깔로 희망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북한 땅에도 다채로운 색의 희망이 그려지기를 기대합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4주에 걸쳐서 시리아 출신 화가 루크만 아흐마드 씨의 이야기를 만나봤습니다. 다음 주에는 미얀마 소수민족 출신으로 자유를 찾아 살윈 강을 건너 미국으로 온 여성 인권운동가를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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