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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앞에 앉은 화가- 루크만 아흐마드(3)


워싱턴 DC에 있는 VOA 방송 스튜디오에서 쿠르드어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 루크만 아흐마드.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진행을 맡은 김현숙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출신 이민자 루크만 아흐마드 씨 이야기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쿠르드 소수 민족으로, 독재 정권에 맞서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 활동을 하다가 결국 시리아를 탈출하게 된 루크만 씨는 터키를 거쳐 정치적 망명자 신분으로 2010년에 미국에 오게 됩니다.

미술 학교라고는 다녀보지 못한 루크만 씨지만, 벌써 미국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도 열었고, 이때까지 팔린 그림이 100점이 넘습니다.

루크만 아흐마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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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미국 정착 초기에 여러 미술가가 공동으로 활동하는 센터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요. 미국인 화가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루크만 넌 절대 우리를 따라 하려고 하지 마. 미국인들이 너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의 그림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야'라고요. 미국에선 그런 것 같아요. 다름을 인정하고 또 존중하죠.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루크만 씨는 미국 정착 초기,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쉬는 시간만 되면 그림을 그렸고, 우연히 그의 습작을 보게 된 호텔 관리인 덕분에 일하던 호텔에서 처음 그림 솜씨를 뽐내는 기회를 얻었는데요.

루크만 씨에게 인생을 바꿀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VOA 쿠르드어 방송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녹취: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이렇게 VOA에서 일할 기회를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호텔에서 식탁을 닦던 제가 이렇게 마이크 앞에 앉아 방송을 진행하고, 제 목소리가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는 걸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현장음: 공사장]

“지난 2014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호텔 일을 그만두고 공사장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죠. VOA 쿠르드어 방송의 그래픽 디자이너 자리에 지원서를 내놓고는 그 날도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어요. 바로 VOA 방송 쿠르드어 국장이었습니다. 계약직 직원으로 함께 일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죠. 공사장 일보다는 육체적으로 덜 힘들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거란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현장음: 쿠르드어 방송 사무실]

방송 준비로 바쁜 쿠르드어 사무실. 어느덧 경력 3년 차가 된 루크만 씨는 현재 방송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뉴스 번역과 함께 매주 방송되는 한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여기가 제가 방송을 제작하는 녹음실입니다. 저는 매주 ‘댕구랭’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번역하면 ‘Sound and Color,’ 즉 ‘소리와 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쿠르드족 출신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방송인데요. 쿠르드 족은 시리아와 터키, 이란, 이라크 이렇게 네 나라에 퍼져서 살다 보니까 예술가들끼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전화로 인터뷰해서 방송으로 소개하고 음악가들의 경우 음악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녹취: VOA 쿠르드어 ‘댕구랭(소리와 색)’ 방송분]

루크만 씨가 방송하는 ‘소리와 색’은 VOA 쿠르드어 방송에서 처음으로 예술을 주제로 한 방송이라고 합니다. 루크만 씨의 상사인 모타바 셔와니 편집장은 루크만 씨 덕분에 이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모타바 셔와니] “지난 몇 년간 루크만 씨와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루크만 씨가 처음 왔을 때는 영어 뉴스나 인터뷰를 쿠르드어로 단순히 번역하는 일을 했어요. 쿠르드어 방송이 4개 나라로 방송되다 보니까 사실 저희는 각국의 정치 뉴스만 해도 다뤄야 할 게 정말 많거든요. 예술을 주제로 한 방송을 할 여력이 없었죠. 그런데 루크만 씨가 와서 ‘소리와 색’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사실 쿠르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방송에 루크만 씨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 인기리에 방송이 잘 나가고 있는데요. 루크만 씨는 계속 저한테 예술 관련 방송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압력을 주고 있답니다.”

루크만 씨의 동료들도 상사인 셔와니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루크만 씨는 열정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건데요. 루크만 씨의 직장동료이자 오랜 친구이기도 한 자니 딜란 씨는 루크만 씨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녹취: 자니 딜란] “루크만은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또 패기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하죠. 저는 루크만이 미국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예요. 그러니까 루크만의 미국 정착 과정을 다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루크만이 처음엔 영어도 못 하고, 문화도 다르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란에서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이거든요. 40년 전에 미국에 와서 접시 닦기부터 시작했기에, 루크만에게도 늘 격려했죠. 미국에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루크만은 저보다 더 잘하고 있어요. 학교도 다니고 미술 활동도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방송국에서도 일하고 있잖아요? 심지가 굳고 열정이 넘치는 친구입니다.”

루크만 씨의 정착 초기부터 함께 한 자니 씨는 직장 동료이자 예술 동료이기도 합니다. 쿠르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보니 화가인 루크만 씨와 더 통하는 게 많다고 하는데요. 자니 씨는 인터뷰 도중 자기 책상 앞에 놓인 그림을 가리켰습니다. 그 그림은 다름 아닌 벽에 그린 그림이었죠.

[녹취: 자니 딜란] “루크만이 며칠 전에 이 그림을 선물로 그려줬어요. 그림이 정말 좋긴 하지만 난감하더라고요. 루크만 한테 그랬습니다. ‘루크만 고맙긴 한데, 벽에다 그리면 어떻게 해? 나중에 자리를 옮기게 되면 이 벽을 떼가야 할 판이야’ 라고요. 그런데 사실 이 벽화뿐 아니라 우리 사무실 곳곳에, 또 복도에도 루크만의 그림이 많이 전시돼 있습니다. 직원들도 좋아하는 눈치죠. 삭막한 사무실이 미술관처럼 바뀌고 있으니까요. 루크만이 직장에 가져다준 또 하나의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루크만 씨의 책상 위에는 두툼한 폴더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방송 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늘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덧 습작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하는데요. 루크만 씨는 자신이 하고 있는 방송과 예술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지금 하는 일을 표현하자면, 다리를 놓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만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쿠르드 계 예술가들을 방송을 통해 서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고요. 또 그림을 통해 억압 아래 있는 시리아의 쿠르드 족 사람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는 거죠. 미국에서 제가 누리는 이 자유를 통해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보람됩니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정치적 망명자로 미국에 온 루크만 씨는 갖은 고생 끝에 화가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고, 이제는 또 방송인으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녹취: 모타바 셔와니] “동료로서, 또 상사로서 루크만 씨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능이 많은 직원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우리 방송의 자산이죠. 무엇보다 루크만 씨는 전쟁이 한창인 시리아 출신의 쿠르드인이잖아요? 방송뿐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도 시리아와 쿠르드 족의 자유와 희망을 그리고 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자유의 메시지를 계속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시리아 출신 화가 루크만 아흐마드 씨의 방송인으로서의 삶을 만나봤습니다. 다음 주에는 루크만 씨의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의 꿈을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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