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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이룬 아메리칸 드림- 루크만 아흐마드 (2)


집안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위한 루크만 아흐마드.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는 시간,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행을 맡은 김현숙입니다.

세상에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나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게 마련인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모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곳 미국에서 이루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루크만 아흐마드 씨인데요. 쿠르드 소수 민족인 데다, 그림으로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다 시리아 정부의 감시망에 들어가 탈출을 감행하게 된 루크만 씨. 터키를 거쳐 정치적 망명자 신분으로 미국에 오게 됩니다.

루크만 아흐마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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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미국에 왔을 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직업도 없었고요. 친구도 없었죠. 제가 가진 거라곤 그림 그리는 재능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호텔에서도 일했는데요. 웨이터라고 하는 접대원도 아닌 웨이터 보조로,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정리하는 버스보이 일을 했었어요”

루크만 씨는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고, 우연히 매니저라고 하는 호텔 관리자가 루크만 씨의 습작을 보게 되면서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호텔 직원 장기자랑 행사에 참여해 처음으로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보였고,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던 겁니다.

[현장음: 복도 전시실]

루크만 씨가 일하는 직장의 복도. 이국적인 화풍의 그림 10여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바로 루크만 씨의 작품들이었는데요. 복도를 지나는 직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림을 감상하곤 했습니다.

[녹취: 동료 직원]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사실 미술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루크만 씨의 그림이 참 좋네요. 쿠르드족이 처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또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던 한 직원은 루크만 씨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는데요. 루크만 씨는 동료들에게 그림들을 설명 하던 중 한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가로로 길게 그려진 그림엔 여러 인물과 상징물들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이 그림은 제 누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시리아에서 인권 운동가였던 누나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를 당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풀려나서 독일에 살고 있지요. 누나의 얼굴 옆에는 시리아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군인들의 모습을 넣었고 그 옆으로 목숨을 잃은 시리아인들의 형상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쿠르드 여전사의 모습이 있죠?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쿠르드 여성의 모습입니다. 그 옆에는 고향을 떠나는 난민 여성의 모습이고요. 제일 끝에는 한 소년이 큰 해바라기 꽃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요. 이 소년은 언젠가 전쟁이 끝날 것이고 시리아에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크만 씨의 작품은 이렇게 하나같이 자유와 희망을 전하고 있는데요. 루크만 씨가 작업하는 모습은 어떨까요?

[현장음: 아파트 입구]

워싱턴 DC 인근의 한 고층 아파트. 루크만 씨의 생활공간이자 작업실이기도 한 아파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현장음: 루크만 씨 자택]

루크만 씨의 집은 스튜디오라고 하는, 방과 거실 구분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창밖의 멋진 워싱턴 DC 전망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요. 멋진 전망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루크만 씨의 작품들과 그림 도구들이었습니다.

[현장음: 루크만 씨 자택]

루크만 씨는 이날도 한 작품을 그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지금 그리는 그림은 아크릴화고요. 시리아 난민들이 어떻게 고통 받는지를 표현하는 그림입니다. 저는 뉴스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그림은 며칠 만에 완성하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1달이 넘게 걸려 완성되기도 하죠.”

벽장 안에도, 책상 옆에도, 침대 밑에도, 집안 구석구석엔 루크만 씨의 작품이 수십 점이 숨어 있었습니다. 수년 전 호텔 직원 장기자랑에서 그림 솜씨를 뽐냈고, 고객들의 찬사를 받은 이후, 루크만 씨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그림 발표를 한 다음 날, 저는 다시 또 행주를 손에 쥐고 호텔 식탁을 닦았습니다. 사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희망이 생겼죠. 제가 가진 재능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물론 먹고 살기 위해서 호텔에서, 또 공사장에서 일해야 했지만 영어가 점점 늘고,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미국인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미국인들이 저를 도와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시회를 열 기회를 주기도 하고요.”

이제 루크만 씨는 뉴욕을 비롯한 미국 내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크만 씨는 사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저는 독학으로 미술을 익혔습니다. 시리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긴 했지만 미술 학교에 다녀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살던 시리아 고향 마을에선 미술 공부는 사치로 여겼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제게 미술 소질이 있는 걸 인정하지 않으셨고요. 특히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예술은 정권을 미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저는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로부터 감시를 받았던 거겠죠.”

미술 학교도 한 번 다녀보지 못한 루크만 씨. 그런데 전 세계 쟁쟁한 미술가들이 다 모여 있는 이곳 미국에서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미국 정착 초기에 여러 미술가가 공동으로 활동하는 센터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요. 미국인 화가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루크만 넌 절대 우리를 따라 하려고 하지 마. 미국인들이 너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의 그림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야'라고요. 미국에선 그런 것 같아요. 다름을 인정하고 또 존중하죠. 꼭 미술이 아니라 그 어떤 문화든, 기술이든 새로운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장음: 루크만 씨 자택]

루크만 씨 집에 있는 그림 하나에 가격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전시회에 걸었던 그림이라고 했는데요. 공책만한 자그마한 그림이 350달러 정도였죠.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작품에 따라 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수백 달러에 그림이 팔려요. 그런데 전시관 측에 일부를 주고, 또 재료비를 다 따지면 사실 크게 남는 건 없습니다. 이제는 사업하는 법도 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하하..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 7년간 100점이 넘는 그림을 팔았고요. 무엇보다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꿈을 이뤄가고 있으니까요. 행복합니다.”

루크만 씨는 이렇게 화가로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는 방송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3년 전, 건축현장 노동자로 일할 때 인생을 바꿀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VOA 쿠르드어 방송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된 겁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시리아 출신 이민자 루크만 아흐마드 씨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다음 주에는 방송인으로서의 루크만 씨와 또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보는 루크만 씨는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죠. 지금까지 진행에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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