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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김정은, 함북 지역 두려움 때문에 수해 방문 꺼려"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 학산리에서 최근 홍수로 파괴된 가옥들. 유니세프가 9월 20일 발표한 북한 수해 실태 보도자료에 실린 사진이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 학산리에서 최근 홍수로 파괴된 가옥들. 유니세프가 9월 20일 발표한 북한 수해 실태 보도자료에 실린 사진이다.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해방 이후 최악의 수해(큰 물 피해)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해 현장을 찾았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세계 다른 국가 지도자들이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난지역을 바로 찾아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인데요. 일부 전문가들은 피해지역이 북한 정권에 가장 불만이 많은 함경북도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방문을 꺼리고 있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2일 한국 측정 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5.8)이 발생한 경상북도 경주. 박근혜 대통령은 지진 발생 하룻만에 이 곳을 찾았고 일주일 뒤 다시 현장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피해에 대해서 지원도 빨리 해 드리고 다시 안정을 찾고 일어서실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난 8월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미 남부의 루이지애나주.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피해 현장을 방문해 모든 미국인들이 피해지역에 주목하고 도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I need all Americans to stay focus on this. If you are watching this today…”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피해지역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보다 늦게 찾았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남미를 방문 중이던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칭하이성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해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최고지도자가 현장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현상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심리적으로 중요한 거죠.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물론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고, 하지만 지원을 즉시 못 받더라도 그래도 그 만큼 지도부가 관심을 보여주면 안심을 하고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고…”

루마니아 출신인 스칼라튜 총장은 옛 동유럽 공산국가 가운데 최악의 독재자란 평가를 받았던 차우세스쿠도 국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루마니아에서 1977년도에 대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당시 루마니아 독재자인 니콜라에 차우세스쿠가 해외 방문 중이었지만 중단하고 바로 귀국을 했습니다. 바로 현지를 방문하고. 그 때 희생자가 천 몇 백 명 됐었습니다. 대재해가 있을 때 그럴 경우에는 현지 방문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말부터 9월초에 발생한 북한의 수해 지역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문했다는 소식은 한 달이 넘도록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해방 후 처음 겪는 대재앙”이라고 보도했지만 북한 정권은 오히려 수해 이후 5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최고 지도자는 첫 시찰지가 과수 농장이었습니다.

한국 내 탈북민 1호 박사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수해 지역 방문은 최고지도자의 위상에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방문을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애민주의, 인민대중중심 뭐 주체사상 자체가 인민 중심의 이론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최고 지도자는 무결점, 무오류, 또는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토사에 주민들이 무너지고 깔리고 이런 것을 최고 통치권자가 보고도 대책이 없다, 속수무책이다. 보내준 장비도 거의 없고, 따뜻한 모포도 없고 쌀도 보내주기 힘들다고 하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것이 입증되니까 아예 안 나타나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 재해 현장을 전혀 찾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지난해 태풍 ‘고니’의 피해를 입은 라선지역을 이례적으로 방문해 눈길을 끌었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김정은 동지께서는 큰물 피해로 살림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은 라선시 수재민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자신께서 직접 피해복구현장을 돌아보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찾아왔다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선시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했다고, 지난해 9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선시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했다고, 지난해 9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자료사진)

하지만 이번 함경북도 수해는 지난해 라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방대하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당국은 3일 국제적십자 대표단에 지금까지 사망자가 133명, 실종 395명, 가옥 3만여 채가 파괴되고 이재민 60만 명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수해 피해지역이 북한 정권에 정치적으로 가장 불만이 큰 함경북도 지역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정치적으로 불만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김정은이) 안 갈 수 있습니다. 20년 전 고난의 행군 때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주민들이 바로 북부 함경북도 지역 아닙니까? 이번에도 수해가 가장 심한 지역이 함경북도입니다. 거기에는 탈북자들의 친척들도 많고요. 정치적으로 성분이 낮은 주민들이 많고…”

안찬일 소장도 함경북도 지역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려움이 방문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안찬일 소장] “피해가 가장 많이 난 연사, 경흥,경원,무산 이 쪽은 사실상 거의 평양 정권에 등을 돌린 사람들입니다. 총구가 무서워서 가만 있는 사람들이지 평양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김정은이 이 곳에 나타난다는 것은, 물론 가도 비행가 잠깐 타고 갔다 돌아올 수 있겠지만, 국경 건너 중국 쪽에 대량의 탈북민들이 있고 김정은이 온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런 김정은에 대한 위해를 고려해 현장에 안 가는 게 기본적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두 전문가는 모두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수해 발생 20여일 뒤 복구가 완료된 일부 지역을 방문해 공적을 자신에게 돌린 것처럼 조만간 그런 행보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지난달 비슷한 분석과 전망을 했었습니다.정준희 한국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정준희 대변인] “(라선 방문은) 복구가 완료된 이후에 복구의 공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그런 의도에서 간 것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함경북도 지역이 수해 피해복구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응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피해 지역 방문 여부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리 큰 관심사라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70년째 민생보다 권력 유지에 급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이렇게 대홍수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걱정하거나 돕거나 지원하거나 거기에 필요한 자금과 자원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일반 주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게 너무나 놀라운 사실도 아니고 그만큼 북한 주민들도 지도부에 기대를 할 수 가 없습니다.”

북한의 인터넷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머릿면에는 3일 김정은 위원장의 샘물공장과 주사기 공장 시찰, 그리고 핵실험에 기여한 성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소식이 올려져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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