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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배 북한 억류 주요 일지…2년 만에 찾은 자유


지난 2년간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전격 석방된 케네스 배 씨가 8일 미국 워싱턴주 공군기지 공항에서 도착해 가족들과 포옹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전격 석방된 케네스 배 씨가 8일 미국 워싱턴주 공군기지 공항에서 도착해 가족들과 포옹하고 있다.

미국인으로는 최장기를 기록한 케네스 배 씨의 북한 억류 734일 간의 주요 사건들을 백성원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2012년 11월 3일, 중국에서 여행사를 운영 중이던 케네스 배 씨는 함경북도 나선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체포됐습니다.

[녹취: 미국 언론 케네스 배 억류 보도]

보안 검색 중 소지품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국무부가 배 씨 사건을 처음 언급한 건 12월11일, 사건 발생 38일 만이었습니다.

[녹취: 빅토리아 눌런드 당시 국무부 대변인] “We’re obviously aware of these reports that a U.S. citizen has been detained in North Korea…”

억류 48일째.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관계자와 배 씨와의 접촉이 12월21일 처음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듬해 1월 7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방북으로 배 씨 문제가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녹취: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We’ve been meeting with the variety of foreign affairs officials, internet officials, scientists, and political leaders…”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북한 당국자들과 배 씨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귀국길 배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해 4월30일 북한은 배 씨에게 반공화국 적대범죄 행위를 적용해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어 5월14일 배 씨는 실제로 노동교화소에 수감된 유일한 미국인이 됐습니다.

억류 8개월째인 7월 4일, 북한은 배 씨를 카메라 앞에 처음 세웠습니다.

[녹취: 케네스 배 씨] “교화소에서는 지금 주로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삭발을 하고 회색 수의를 입은 배 씨는 북한의 용서를 구하고 미국에 석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물밑 작업에 의지하며 언론 노출을 삼갔던 배 씨 가족들이 침묵을 깨고 나섰습니다.

[녹취: 배명희 씨, 케네스 배 어머니] “제가 기억하는 아들은 전혀 아니고, 그래요, 많이 달라지고, 참 당당했었는데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육체만 이렇게 많이 살이 빠진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억류 10개월째 터진 희망의 조짐, 국무부가 지난해 8월27일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의 방북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머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 “Ambassador King will travel to Pyongyang on Friday on humanitarian mission solely focused on securing the release of Kenneth Bae.”

킹 특사가 북한의 초청을 받아 30일 방북하며 케네스 배 씨 석방에 초점을 맞춘 인도주의 임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띄워 인도주의적 대화 분위기를 망쳤다며 킹 특사 초청을 전격 철회했습니다.

40일 뒤인 10월 11일, 어머니 배명희 씨가 평양으로 날아가 닷새 동안 머물며 아들을 세 차례 만났습니다.

[녹취: 배명희 씨, 케네스 배 어머니] “젊은 사람을 조그만 데다 가둬놓고 1년 동안 버티는 게 굉장히 힘들잖아요. (아들이) 잘 견디고 있다고 자기 걱정 하지 말라고 식구들한테 다 전해달라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배 씨의 여동생 테리 정 씨는 지난해 11월 4일 억류 1년 성명을 발표하고 가족 모두 인질로 잡혀있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배 씨가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건 올해 1월 20일.

[녹취: 케네스 배 씨] “미국 정부와 공화국 정부가 긴밀한 대화와 협조 속에서 저의 문제가 머지 않은 시일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외신 기자들 앞에서 자신이 북한과 서방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힘입어 배 씨 가족은 일주일 뒤 워싱턴을 방문해 존 케리 장관을 만났습니다.

[녹취: 테리 정 씨] “이렇게 높은 데 계시는 분들이 신경 써 주시고 오빠를 위해서 애쓰는 게 너무 감사하고요. 다른 분도 많이 같이 이렇게 오빠 이름을 잊어버리지 말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2월6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배 씨의 석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관심과 기대를 고조시켰습니다.

[녹취: 바락 오바마 대통령] “His family wants him home. And the United States will continue to do everything in our power to secure his release because Kenneth Bae deserves to be free.”

하지만 나흘 뒤로 잡힌 킹 특사의 방북계획은 북한이 2주 뒤 시작되는 미-한 연합군사훈련을 이유로 또다시 무산시켰습니다.

두 달 뒤인 4월5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리동일 차석대사는 북한인권 문제를 지적해온 킹 특사의 북한 방문을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녹취: 리동일 차석대사] “The DPRK has no intention, absolutely no intention to receive him in our land.”

9월15일, 국무부가 대북 특사 후보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면서 북한 측에 협의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양측의 물 밑 대화설은 분분했지만 배 씨 억류는 결국 지난 3일 2년을 넘겼습니다.

[녹취: 배명희 씨]

하지만 상황은 일주일도 안 돼 반전을 맞았습니다.

8일 국무부가 가족들에게 배 씨가 이미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통보한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축하, 흥분한 지인들의 격려, 몰려드는 취재진 속에서 가족들은 배 씨와 눈물의 재회를 했습니다.

734일 만에 다시 찾은 자유였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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