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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지구의 날' 제정 주도한 상원의원, 게일로드 넬슨


[인물 아메리카] '지구의 날' 제정 주도한 상원의원, 게일로드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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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규모의 ‘지구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미국의 한 적극적인 환경 운동가가 벌인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이 환경 운동가는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위스컨신주 출신 게일로드 넬슨입니다.

매년 4월 22일은 전 세계가 기념하고 있는 지구의 날, 즉 Earth Day입니다. 현재까지 추진돼온 지구보존 운동의 성과를 되돌아 보고, 아직도 요원한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결의를 다지는 날입니다. 미국에서 맨 처음 공식 출범한 지구의 날 이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일반국민들도 자발적으로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규모의 ‘지구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미국의 한 적극적인 환경 운동가가 벌인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이 환경 운동가는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위스컨신주 출신 게일로드 넬슨입니다.

게일로드 넬슨은 1916년 미국 중 북부 위스컨신 주 클리어 레이크(Clear Lake)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습니다. 거대한 미시건 호를 끼고 있는 위스컨신 동부, 아름다운 고장에서 넬슨은 낚시, 수영, 등산 등을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에게는 자연이 곧 놀이터였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넬슨은 서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산호세 주립대학교에 들어가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42년 고향으로 돌아와 주 수도 매디슨에 있는 위스컨신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2차 대전 중에는 군에 입대해 4년 동안 복무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48년 위스컨신 주 상원의원에 당선됐습니다. 52년과 56년에도 연이어 당선되면서 그는 10년동안 주 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번영을 구가하는 시대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넬슨은 기술의 혁신과 산업의 팽창이 가져오는 사회적, 환경적 폐해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시기 고향인 위스컨신 주민들도 갈수록 주립 공원이 사람으로 넘치고 황폐해 가며, 공공자원이 개인 기업에 의해 악용되고, 주 내의 수자원이 오염되는 사태에 대해 우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넬슨은 1958년 주 지사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그는 지사로 취임한 후, 주내 천연자원의 관리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했습니다. 그는 자연개발국이라는 기구를 신설했습니다. 그리고 주 정부 내 여러 군데에 분산돼 있는 자연보호 관련 부서를 한군데에 모아 보다 효율적인 관리를 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청년 자연보호단을 창설해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직장을 마련해 주고 이들이 환경 보호 업무에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거액인 5천만 달러를 투입해 광대한 땅과 처녀지를 매입하고, 그곳을 주립 공원과 자연보호구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금은 담배 한갑당 1센트의 세금을 부과해 충당했습니다.

그같은 환경보호 정책은 미국 최초의 방식이었습니다. 넬슨의 혁신적인 정책은 위스컨신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넬슨은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환경 운동가로 떠올랐고, ‘자연보호 지사’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주 지사로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그는 1962년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돼 워싱턴 정계로 진출했습니다. 그는1981년까지 3차에 걸쳐 의원직을 연임했습니다. 넬슨 의원은 연방 의회에서도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도록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동료 의원들로부터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는 건 쉽지가 않았습니다. 연방 상-하원 535명 의원들 중, 자신을 환경 옹호자라고 내세우는 의원은 2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1963년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해 환경보호에 관한 전국 순히 연설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환경운동가이자 태양광 에너지 전문가인 데니스 헤이즈를 끌어들여 환경 운동을 펴 나갔습니다.

넬슨 의원은 워싱턴 정가에 환경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미국 여러 대학에서 월남전의 실상을 알리고 이를 반대하는 시위행사가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이른바 teach-in 에 착안한 것입니다. 전국 수백군데의 대학이 같은 날짜에 환경보호를 위한 시위를 벌이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같은 풀뿌리 운동을 통해 전국에 있는 모든 선거구의 유권자들이 환경문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면 워싱턴이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미국 내 여러 대학과 도시에서 기회가 있을때 마다 환경보호를 위한 자신의 주장과 계획을 역설했습니다.

환경을 중시하는 의회라면 고속도로와 댐과, 무력경쟁을 가속화하는 신 무기 체계를 만드는 대신 사람과 자연의 교량을 건설해야 합니다.

Environment is perpetuated by expenditures of tens billions of dollars a year on the Vietnam War…

환경은 일년에 수백억 달러씩을 쏟아붓고 있는 베트남 전쟁 비용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도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풀뿌리 운동에 대한 넬슨의 아이디어는 언론의 보도로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넬슨은 보도자료를 통해 캠퍼스 내 환경보호 대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렸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게일로드 넬슨 상원의원이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환경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70년 봄에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시위 물결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로 불과 수개월 사이 거의 전국민이 환경보호를 위한 시위 계획을 알게 됐습니다. 또 여러 대학, 지역사회, 각종 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이날 행사에 동참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넬슨 의원과 지지자들은 대학의 봄 방학과 학년말 시험사이에 있는 4월 22일을 “환경위기에 대한 전국 대회의 날” 로 정하고 환경대회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그 행사가 반전운동보다 더 의미있고 더 큰 행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행사를 추진하는 넬슨의 사무실에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편지가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1970년 4월 22일, 첫 지구의 날, 무려 2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미국 여러 곳에서 거리로 나와 자기 마을, 주, 국가, 더 나아가 전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환경위기를 타파하자고 소리쳤습니다. 뉴욕시 맨하탄에 있는 센트럴파크에는 6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날의 전국적인 시위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가 됐습니다.

뜨거운 반응에 정치인들은 놀랐습니다. 의원들은 환경 문제를 외면했다가는 선거에도 타격이 올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중요한 환경 관련 법을 연달아 제정했습니다. 첫 지구의 날 이후 각종 법이 제정된 10년 동안은 “환경 10년” 즉 Environmental Decade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주요 법은 청정 수질 법, 전국 자연과 아름다운 강 보호법, 연방 살충제 법, 청정 공기 법, 환경 교육법, 전국 하이킹 및 둘레길 법 등이 있습니다. 게이로드 넬슨이 주도한 지구의 날 행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은 세계 190여개 나라에서 환경보호를 촉구하는 시위와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구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인구는 무려 10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사용억제, 대체 에너지 개발, 재활용 추진 등을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의회내 여러 진보적 동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게일로드 넬슨은 1980년 로날드 레이건 시대가 도래하면서 연임 선거에서 패했습니다. 그는 정치를 떠났지만 자연보호 기구인 Wildness Society고문으로 재임하면서 환경운동의 국민적 지도자로 존재했습니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회 있을 때 마다 지구의 날 행사에 나아가 참석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넬슨은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이 환경 우선정책을 추진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촉구 했습니다.

넬슨은 1986년에 위스컨신 자연보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습니다.

게일로드 넬슨은 89세때인 2005년 7월 3일, 심장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주 수도인 매디슨의 위스컨신 대학교는 그의 자연 사랑을 기리며 게이로드 넬슨 환경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5년 넬슨 전 의원에게 지구 살리기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미국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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