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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노동당 창건 70주년] (2) 주민들 인식 '당 아닌 시장이 먹여살려'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하루 앞둔 8일 장식용 꽃을 든 평양 주민들이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하루 앞둔 8일 장식용 꽃을 든 평양 주민들이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 권력의 핵심인 ‘조선노동당’이 내일로 창건 70주년을 맞습니다. 이와 관련해 VOA는 두 차례 특집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북한 노동당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보름 앞두고 북한 전 주민들에게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는 전례 없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19세 이상의 모든 성인들에게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북한 당국은 당에 충성을 다한 데 대한 보상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민심 잡기를 통해 체제 결속을 극대화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주민들과 자주 통화하는 탈북자 이 모씨는 당 창건 기념 행사 준비로 시달린 북한 주민들은 행사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탈북자 이모씨] “주민들에게 너무 내라는 게 많고 모든 일정을 당 창건행사에 맞춰 주민들을 동원하고 하니까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한국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탈북한 북한 주민 1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김정은 제1위원장과 당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나타납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은 북한 경제난의 책임자로 최고 지도자를 꼽았습니다. 최고지도자에 이어 당 지도부를 꼽은 응답자도 지난해보다 13%나 많은 53%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탈북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 처음엔 젊고 외국 유학 경험이 있어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졌지만 북한 당국이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강성대국 건설’이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그 기대감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지난 해 9월 평양에서 온 탈북자 윤 모씨입니다.

[탈북자 윤 모씨] “새로운 사람이니깐 기대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특히 김일성 주석과 많이 닮아 그 때처럼 잘 살 수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많았어요. 그러나 솔직히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는 건 아니잖아요. 설령 다른 사람이 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과거 ‘출세의 관문’으로 통하던 노동당원의 인기도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당 비서로 있다 올해 초 탈북한 김 모씨는 당원이 되기 위해 돈이나 뇌물을 바치던 일은 이제 옛날 얘기라며 지금은 오히려 당원이 되길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합니다.

[탈북자 김 모씨]“당원이 되려고 몇 년 전만해는 50달러, 많게는 100달러를 바치곤 했죠. 입당한 제 친구들은 지금 다들 죽으려 하죠..당비를 내고 생활총화 참여해야 하고, 외출 시 다 보고해야 하니까 시끄럽죠”

북한 주민들에 대한 당의 통제력도 갈수록 이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협동농장에서 당 비서로 일하다 지난 해 탈북한 이성용 씨는 주민들이 예전에는 당 일꾼 말이라면 무조건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협잡꾼’이라고 욕을 하며 대들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 비서들조차 자금을 확보하거나 기업소를 돌리라는 당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이른바 ‘8.3액’이라 불리는 돈을 내고, 대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주민들이 최근 들어 많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다 지난 해 말 탈북한 윤철홍씨는 기업소에 나가지 않는 대신 매달 기업소에 납부한 돈은 북한 돈으로 10만원으로, 이는 북한에서 쌀 20~25kg을 살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당과 국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신이 깊어진 데는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당과 국가가 더 이상 자신들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김정은 3년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시장화의 진전으로 북한 주민들이 국가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농업이나 도소매업, 가공업과 같은 다양한 시장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대부분의 생필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통일부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서 얻는 소득과 구입하는 생필품은 2012년 이후 약 80%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2009년에 단행된 화폐개혁 조치가 당국이 아닌 시장의 힘을 북한 주민들에게 확인시켜준 계기였다고 평가합니다.

화폐 개혁 이후 탈북한 북한 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연세대 통일학연구원 박사과정 한기호씨는 응답자의 82%가 국가배급이 정상화되더라도 시장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연세대 통일학연구원 박사과정 한기호] “(설문조사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앞으로 잘 살게 될 거다’고 국가가 말해도 사람들이 믿질 않는다. 국가의 말을 믿지 못하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는 의지 때문에 시장이 더 커졌고 자신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법의 눈치를 보면서 국가의 일은 마지못해 하는 정도다라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시장통제 정책이 더 이상 실효가 없다고 판단되자 시장을 묵인하는 대신 주민들로부터 이득을 챙기는 이른바 시장과의 공생관계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국 정부 당국자는 체제 존립의 기반이기도 한 당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와 통제를 회복하기 위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민심 행보를 지속하면서 사상교육 강화를 통해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고 당 기능을 복원해 권력 강화의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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