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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특집: 2014년 북한] 6. 핵·인권·해킹 이슈로 미-북 관계 악화 일로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1월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TV 보도 화면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1월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TV 보도 화면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 3년째를 맞아 올 한 해도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뉴스가 많았습니다. VOA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북한인권, 남북관계, 북한의 비대칭 군사력, 북-러 관계,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미-북 관계 등을 주제로 여섯 차례에 걸친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악화일로를 달려온 올해 미-북 관계를 돌아보겠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올 한 해 미-북 관계는 북한에 대한 비핵화 촉구에 인권 개선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악화일로를 걸어 왔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미국 기업 해킹의 배후가 북한으로 드러나면서 잠시 엿보였던 직접대화 기류마저 차단되는 양상입니다.

잔뜩 경색된 미-북 관계는 이미 새해 첫 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육성으로 발표된 신년사에서 일부 예견됐습니다.

[녹취: 김정은 제1위원장 신년사 낭독] “지난해에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고 제국주의자들과의 첨예한 대결전에서 커다란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대미정책 지침은 물론 쟁점이 돼 온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어 북한이 이 문제에서 양보할 뜻이 없음을 일찌감치 암시한 겁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바로 다음날 올해 첫 정례브리핑을 통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비핵화 조치이고, 북한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녹취: 머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 “Our position, of course, on North Korea has not changed. Our call for them to denuclearize, none of that has changed.”

미국의 이런 일관된 원칙, 그리고 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는 북한 측 요구는 한 해가 다 가도록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한국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에 호응하는 등 북한이 올해 초 잇따라 내놓은 유화신호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꿀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지난 2월 북한을 사악한 곳으로 규정한 뒤 작심한 듯 발언 수위를 높여온 존 케리 국무장관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압박을 이끌어냈습니다.

[녹취: 존 케리 미 국무장관] “This is an evil, evil place that requires enormous focus by the world.”

여기에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시드니 사일러 6자회담 특사 등 북한 문제를 다루는 핵심 고위 인사들까지 일제히 가세하면서 ‘인권’은 올 한해 미국 대북정책의 최대 화두로 부각됐습니다.

올 초부터 삐걱거린 미-북 관계는 2월부터 7월까지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쉬어 갈 틈이 안 보였습니다. 19 차례에 걸쳐 1백11 발의 미사일이 무더기로 발사된 5개월 동안 대화의 접점이 찾아질 리 없었습니다.

[녹취: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We’re certainly concerned by the reports of yet another round of provocative weapons launches the third in a week. These launches are intended to unilaterally heighten tensions in the region…”

북한인권 상황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는 문제가 최근 현안으로 부각됐지만,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이미 지난 3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일찌감치 미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했습니다.

미-북 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은 건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 시민이 3 명으로 늘어나고, 그 중 한국계 케네스 배 씨는 2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해, 이 문제가 오랫동안 미-북 관계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됐습니다.

[녹취: 시드니 사일러 국무부 6자회담 특사] “These three cases have posed a significant obstacle to an improvement of the U.S.-DPRK relations…”

북한에 미국인 석방을 끊임없이 요청하고 특사 파견을 제안했던 미국 정부는 마침내 억류 사태를 인권 유린으로 간주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에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어 지난달 북한 최고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북한인권 결의안이 유엔총회에서 의결되고 안보리 안건으로까지 채택되면서 미-북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10월 유엔본부에서 자체적인 인권설명회까지 열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전례 없이 높은 수위의 문구가 담긴 인권결의안이 채택되자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녹취: 리동일,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 & 최영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 “The DPRK is totally against misusing human rights for regime change in the country” / “This resolution means confrontation and confrontation is not compatible with the dialogue and cooperation that we’re very much in favor of.”

인권 문제를 정권교체에 악용하려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면서 결의안을 대결로 간주한 북한, 한 걸음 더 나아가 핵실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북 관계를 최악으로 끌어내렸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설전 속에 올해 미-북 간 대화 재개 신호가 완전히 묻혀버렸던 건 아닙니다.

미국 당국자들이 8월경 군용기를 타고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설이 제기됐고, 백악관에서 한반도 담당 보좌관을 지냈던 시드니 사일러가 9월 6자회담 특사에 기용되면서 미-북 간 소통 창구인 ‘뉴욕채널’에 힘이 실릴 지 주목됐습니다.

아울러 같은 달 북한 외무상이 15년 만에 미국 방문길에 오르면서 미-북 관계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고, 11월에는 양국 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미국인 억류 사태가 일단락돼 그런 기대가 더욱 커지기도 했습니다.

[녹취: 북한 억류 케네스 배 씨 석방 기자회견] “I just want to say thank you all for supporting me, lifting me up, and not forgetting me…”

하지만 인권 문제를 들어 정권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려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북한을 더욱 옥죄면서 미-북 관계는 더욱 대결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례적으로 지난달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을 ‘살인마’로 지칭하고 ‘식인종’에 빗대 비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미제 침략자들이야 말로 인간 살육을 도락으로 삼는 식인종이며 살인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하시면서…”

미국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한반도 지역 안보를 담당하는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 내정자는 지난 2일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명백한 위험"이라며 "오늘 밤이라도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내정자] “Our most volatile and dangerous threat is North Korea with its quest for nuclear weapons and the means to deliver them intercontinentally.”

북한의 억류 미국인 석방을 계기로 잠시 개선 조짐을 보이던 미-북 관계가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이후 계속 내리막길로 치달은 겁니다.

게다가 북한이 비핵화 문제에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미-북 간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기 어렵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도 각 부처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통해 누차 강조됐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로 미-북 관계에 출구가 막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양측 간 긴장이 정점에 달할 때마다 제기되던 미-북 직접대화론이 이번에도 수면 위에 떠올랐습니다.

[녹취: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Certainly the Obama Administration has never hesitated to talk directly to the DPRK.”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지난 16일 미국이 그동안 북한과 기꺼이 직접 대화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오바마 행정부는 미-북 대화를 하는 데 주저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략적 인내로 대변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접근기조를 감안할 때 이례적인 발언이었고, 양국관계에 유연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았습니다.

앞서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취임 이후 첫 서울과 베이징 방문에 나서 미-북 양자 대화 가능성을 거론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들렸습니다.

마침 미국과 쿠바가 외교 단절 54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선언하면서 미-북 관계에도 변화가 오는 게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기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핵과 인권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과 쿠바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면서 그런 관측에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녹취: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 “So our concerns with the regime in North Korea are different than the concerns that we have with Cuba. There is no concern that the Cuban regime is, for example, developing a nuclear weapon or testing long-range missile technology.”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올해 미-북 관계에 마침내 쐐기를 박는 사건은 올해 막바지에 터졌습니다.

[녹취: 미국 방송들 소니 해킹 사건 보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의 미국 상영이 취소되고, 미국 정부가 소니 영화사에 대한 해킹 공격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발표한 겁니다.

[녹취: 바락 오바마 대통령] “They caused a lot of damage. We will respond. We will respond proportionally and we will respond in a place and time and manner that we choose.”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북한에 대해 비례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직접 밝혔고, 바로 다음날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까지 발빠르게 내놨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미국 본토를 겨냥한 초강경 대응전을 벌이겠다고 맞대응에 나섰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는 미국 측과 이번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할 것을 주장한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와 사이버 테러에 대한 보복을 공언한 미국, 최고존엄을 건드렸다며 핵 억제력 강화로 원한을 풀겠다는 북한, 양국 관계의 간극은 어느 때보다고 멀어 보입니다.

여기에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문제 제기가 심화되고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경우 북한이 무력도발 등 초강수를 두면서 미-북 간 힘겨루기는 계속 악화일로로 치달을 전망입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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