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한인 김학동 시가 운영하는 여성 의류점이 최근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중 발생한 약탈 피해를 입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한인 김학동 씨가 운영하는 여성 의류점이 최근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중 발생한 약탈 피해를 입었다. 사진: 김학동 씨 제공.

최근 경찰 체포 과정에서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부 폭력으로 치달으면서, 한인 업주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와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들이 약탈 피해를 보고 있는데요. 이 시간에는 시카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 여성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학동 씨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에 장양희 기자입니다.   

라디오
[오디오] 미 흑인 사망 시위, 한인 업주들도 피해

기자) 안녕하세요. 김학동 사장님, 먼저 이번 시위사태로 피해당하신  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요, 당시 상황과 피해 규모가 어땠는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김학동 씨) 일요일, 내가 있는 곳이 시카고 남쪽 흑인 밀집 지역인데, 폴리스 헤드쿼터 바로 앞인데, 그런데도 워낙 약탈이 많이 자행되는 바람에, 시위 현장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곳곳이 약탈을 당하니까. 나는 여자 옷가게라 좀 덜한 편인데. 가게에 유리창이 많아요. 첫 번째 친구가 유리창을 깨는 망치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뺏어서 보내고, 유리창 서서 지키려고 오래 버텼어요. 달래기도 하고 사정도 하고. 폴리스는 한 6시까지 있었던 거 같아요. 두 시간을 버티다가 나중에는 한꺼번에 몰려오니까.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기자) 그럼 그때 피해가 났을 당시에, 매장에 어느 정도 물품이 있었고, 실제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되나요?  

김학동 씨) 한 35만 불에서 40만 불 정도 (남은 물건이 없어요?)남은 물건 한 1만 불어치에요. (약탈자들이) 미처 못 가져가고, 밟히고 한 것들인데, 다 가져왔어요.   

기자) 총 피해 규모가 40만 불에 이른다고 보시네요. 그런데, 이번 시위가 흑인들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로 시작된 건데, 왜 약탈이 발생한다고 보시나요?  

김학동 씨) 제가 판단한 건데 제 기준인데요, 나름 이걸 어떤 하나의 재미, 흥미, 이득이 상충돼서 군중심리로, 실질적으로 유리창을 깨고 하는 그룹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런데 군중심리로 하다 보니까, 쟤도 터는데 왜 나는 못 털까?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거예요. 보니까. 누가 하나 유리창 깼다고 하면 차를 끌고 벌떼 같이 몰려와요. 순식간에. SNS가 발달되니까.  금방 연락해서 순식간에 오고…   

미국 시카고에서 여성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학동 씨(왼쪽). 최근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중 발생한 약탈 피해를 입었다. 사진: 김학동 씨 제공.

기자) 사장님께서 지켜보신 약탈자들, 특정 인종으로 구분되던가요?  

김학동 씨) 100% 흑인이었어요. 흑인 동네에 있으니까. 젊은 흑인 애들. 남자애들이 터니까, 주위에 보이지도 않았던 여자들이 순식간에 나타나서 가는데, 우리 종업원 애들이 사장님 가자고 해서 5분~10분 지켜보다가 나왔는데. 주위에 한 100명 넘고, 가게에 들어가는 애들은 내가 봤을 때는 20~30명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기자) 그럼 약탈이 벌어지는 현장을 두고 포기하고 나오신 거예요?  

김학동 씨) 그렇죠.  

기자) 경찰에 신고를 다시 하셨나요? 

김학동 씨) (웃음) 생각해보세요. 올 수 있겠나. (경찰) 헤드쿼터(본부)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못 왔어요. 폴리스 헤드쿼터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못왔어요. 

기자) 그곳에서 사업체를 운영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김학동 씨) 9년이요.  

기자) 그럼 혹시 1992년 LA 폭동 당시 미국에 계셨습니까? 

김학동 씨) 네, 제가 1986년 3월 9일에 (미국에) 왔으니까.  

기자) 당시 상황 기억이 나시나요?  

김학동 씨) 다 기억이 나죠. 그때보다 더 심한 거 같아요. 시카고가.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우스에 있는 운동점 남자 옷, 신발가게는 다 털렸다고 보면 되고. 뷰티 서플라이 미용 도매는 90% 털렸다고 보시면 되고요.

지난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기자) 상심이 크실 텐데요. 가게 피해 복구에 대한 대응책이 있으신가요?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김학동 씨) 가게가 하나 더 있는데 다행히 거기는 덜 위험한 지역인데. 문이 너무 단단하게 돼 있고. 뒷문도 철문이라. 다행히 괜찮아요. 생계는 이어 갈 수 있고. 뜻밖에 제 딸이 흑인 동네에서 국민학교 선생이고, 아들은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이런 위기상태에 힘이 많이 되네요. 자기 소셜미디어에 피해 당한 사진 다 올리니까. 100불, 50불, 십시일반으로 친구들하고 아는 사람들한테서 30분 만에 한 시간도 안 돼서 3천 불 들어왔다고 힘내라고. 금액을 떠나서 많이 힘이 되네요.  

기자) 혹시 따로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릴게요.  

김학동 씨) 네, 똑같은 마이너리티(minority ∙ 소수계)이고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우리 같은 소상인까지 피해를 보고, 어이가 없는데. 그래도 오늘 가게를 정리하면서 천사 같은 흑인들도 많이 왔었어요. 근처 교회 사람들, 전부 다 와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번호도 많이 주고 가고. 어쨌든 안타깝네요. 

기자) 네, 사장님 경황이 없으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근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여파로 약탈 피해를 본 시카고 한인 김학동 씨와의 인터뷰 전해 드렸습니다. 장양희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