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북한 군이 비무장지대(DMZ)에서 한국 군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파주에서 바라 본 DMZ 북측 초소의 모습.
지난 3일 북한 군이 비무장지대(DMZ)에서 한국 군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파주에서 바라 본 DMZ 북측 초소의 모습.

유엔군사령부가 북한군의 한국군 감시초소, GP 총격 사건에 대해 우발적 상황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유보적 결론을 내린 것은 북한이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특히 유엔사의 조사 결과가 한국군 당국의 판단과 달라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3일 발생한 북한군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북한 측의 우발적 상황인지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26일 밝혔습니다.

[녹취: 리 피터스 대령] “UNC determined both KPA and ROK army committed armistice agreement violations with unauthorized small arms firing across Military demarcation line”

유엔사 공보장교 리 피터스 대령은 “유엔사가 북한군과 한국군 양측 모두 군사분계선 넘어 허가되지 않은 총격을 가한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결론내렸다”며 “유엔사는 1953년 이후 성공적으로 수행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전협정 조항을 준수하고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엔사의 이런 결론은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중립자로서 북한이 조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유엔사는 이런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나름대로 성의 있게 대처했다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북한군에 이번 총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지만 북한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유엔사가 먼저 총격을 가한 북한군은 물론 이에 대응 사격한 한국군에 대해서도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한 결론은 북한군의 4발 총격에 한국군이 30발로 대응한 부분이 과잉 조치였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국방부는 유엔사 발표 직후 내놓은 ‘입장문’을 통해 “한국 군은 북한군의 총격에 대응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조치했다”며 유엔사의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유엔사는 접경지역 교전수칙으로 ‘비례성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시에 총격을 당한 만큼 비례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한국군의 대응수칙은 이보다 강도가 높은 ‘3~5배 응징’으로 대처하도록 돼 있어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유엔사 발표가 충분한 조사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정전협정에 기초한 유엔사의 권능에 의해 조사한 것이고 북측을 조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소지는 북한이 선제도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행위를 면책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높여주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군사정전위 체제를 무력화한 북한의 시도가 있었고 유엔사의 기능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한국 측의 행위에만 국한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 도발이 향후 보다 자유롭게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거죠.”

유엔사는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로 한국전쟁을 수행할 유엔군 지휘권을 갖는 조직으로 설치됐고, 1953년 7월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유엔사는 그러나 1978년 11월 창설된 미-한 연합사령부에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넘겨 주면서 정전협정과 관련한 일로 임무가 축소됐습니다.

북한은 핵 위기 와중이었던 지난 1994년 정전협정 무효화와 유엔사에 속해 있던 군사정전위원회 탈퇴를 선언했고 줄곧 유엔사 해체를 요구해왔습니다.

이번 총격 사건 조사 요구에 일절 반응하지 않은 것도 정전협정과 유엔사를 무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격 사건의 우발적 상황 여부를 놓고 유엔사와 한국 군 당국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 점 또한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총격 사건 당시 기상 상황과 북한군의 동향, 대북 기술정보 등을 고려해 북한군의 우발적인 상황으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미-한 동맹 전문가인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유엔사를 무력화시키고 미-한 관계를 어렵게 만들려는 게 북한의 목적이라며, 유엔사와 한국군 당국이 이견을 노출하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남북간 교류 있을 때부터 북한이 그런 비슷한 입장을 보였으니까요. 유엔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한국이랑 협의해서 빨리 시행하자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한국 정부가 계속 유엔사와 엇갈려 가는 게 북한 입장에선 유리하다고 생각하니까 동맹을 형해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유엔사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유엔사를 주한미군 주둔의 근거로 여기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한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과정에서 북한의 이런 시도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