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0월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10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진행됐다.
지난 2018년 10월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10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진행됐다.

한국 정부가 신년 업무보고를 통해 북한과의 군사회담 정례화 추진 의지를 밝혀 북한의 호응 여부가 주목됩니다. 미-한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추후 대북 메시지와 미-한간 사전조율 과정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21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등 남북 군사회담 정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미-한 연합훈련 등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를 중점적인 대북 추진 과제로 제시한 겁니다.

9.19 군사합의에는 “남북 쌍방이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이나 무력 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지만 양측은 이후 협의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구성조차 안된 상태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군사회담 정례화 추진은 미-한 합동군사훈련 등 이른바 ‘근본 문제’ 해결을 내세운 북한의 압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세적 대응으로 분석했습니다.

홍 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당 대회를 통해 언급한 근본 문제에 대해 한국도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북한이 쉽게 거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설사 북한이 거부하더라도 도발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서로의 군사적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군사대화를 이렇게 의욕적으로 제기했는데 북한이 나오지 않았다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북한이 이렇게 제기하는 과정에서 군사 도발을 한다는 것은 북한의 군사 도발 자체가 명분이 굉장히 취약해지는 상황이 됩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 중단을 근본 문제로 적시한 만큼 오는 3월 예정된 연합훈련 이전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 대한 반응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연합훈련은 미-한간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북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다음달 국정연설과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한 정상간 전화통화 내용 등을 지켜보면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연합훈련 규모가 대폭 축소될 순 있지만 취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추진에 대한 호응 여부는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군사공동위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대화할 의지가 없이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한 것도 트집에 불과하다는 거고요. 그것은 이제 북한이 군사공동위원회를 받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에서 미국의 목소리를 기다리다가 별 메시지가 없으면 3월 정도에 도발로 갈 수 있다는 거죠.”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8차 당 대회에서 북한은 겉으론 한국에 요구사항을 집중했지만 미-한 연합훈련 중단을 앞세운 것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군사공동위원회에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제재와 동맹간 공조 강화를 통한 대북 억지력을 기본 토대로 외교력을 발휘해 북한 문제를 풀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기본입장으로 보인다며 9.19 군사합의 이행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키려는 한국 정부와 어떻게 조율이 이뤄질 지 또한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8차 당 대회에 나온 북한의 내용을 보면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라는 문제 해결의 주체는 결국 미국이다라는 게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이 문제는 한국에서의 남북관계 관련한 제안이 아니라 북-미 관계나 북-미 협상 차원에서 우선 실타래가 풀려져야 될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바이든 신 행정부와의 협의 틀을 조기에 구축해 미-북 대화 재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주도했던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습니다.

정 후보자는 2018년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임기를 1년여 남긴 상황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남북 대화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인선이라는 관측입니다.

전문가들은 정 후보자가 북한은 물론 미국을 설득하며 대화를 성사시켰던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중재역할을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도 시도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실무협상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 맞춰 그런 수준에서의 미-북 대화 복원을 우선과제로 삼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이에 대해 종전 선언 우선 추진이나 제재 일부 완화를 통한 대화 재개 등의 문재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이든 행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까지 진행해 온 방식을 그대로 바이든 행정부에 요구하면 수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봐요. 왜냐, 기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거든요. 그럼 그 실패한 것으로 규정한 대북정책을 바이든 행정부에서 그대로 이어받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미국과의 공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신 센터장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최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인도적 지원 부분에 대해 유연성을 보여준 만큼 미국과의 대북 공조에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진전시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