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공공보건의 숨은 거인, 데이비드 센서

2020.4.24 2: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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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공공보건의 숨은 거인, 데이비드 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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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공공보건의 숨은 거인, 데이비드 센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데이비드 센서 박사가 샤가스 병의 매개체인 '트리아토민'을 주제로 한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요즈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기관 중 하나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약칭 CDC입니다. CDC는 미국 연방 정부 기관으로, 국민에게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각종 관련 기구들을 연계해 질병을 예방, 통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CDC의 최장기 소장으로 재임하면서 천연두와 홍역 퇴치를 위한 국제적 운동, 돼지독감 방어를 위한 미 전역의 백신 접종 등으로, 공공보건의 거인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센서 박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데이비드 센서 박사는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1년간 CDC 소장으로 재임했습니다. 청년 시절에 결핵을 앓은 경험이 있어 일찍부터 공공 보건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재임 중  CDC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규모를 크게 확대했습니다. 센서 박사는 CDC를 미국만의 기구가 아니라 세계적인 기구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옛날부터 공포의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를 1970년대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데이비드 센서 박사는 1924년 11월 10일, 미국 중서부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구를 만드는 기술자였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어렸을 때 사망해 어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습니다. 그는 동북부 코네티컷주에 있는 웨슬리안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데이비드는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해군은 그를 미시시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데이비드는 그후 미시간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옮겨 1951년 의대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무렵 데이비드 센서는 결핵에 걸려 거의 2년 동안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메디컬 닥터(medical doctor), 즉 의료 분야의 전문인이 됐지만, 장차 무엇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데이비드 센서는 의과대학을 마치고 1955년 공공보건국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하버드대학교에서 보건의학을 계속 공부해 관련 분야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60년에는 애틀랜타로 옮겨 지금의 CDC, 당시에는 전염병센터로 불리던 곳에서 부소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소장이 됐습니다. 

센서 박사가 재임하는 동안 CDC는 말라리아 퇴치에서부터 영양, 흡연, 피임, 보건교육, 직장 안전과 건강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업무를 전개했습니다. 센서 소장은 달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우주인들을 일정 기간 격리하는 지침도 만들었습니다. 장차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외계의 병원균을 묻혀와 지구에 전파할 가능성을 염려한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재임 중 가장 성공적인 사업은 천연두 박멸 사업이었습니다. 센서 박사는 여러 나라와 기관의 천연두 퇴치 활동을 조화롭게 연결해켜 최대의 효과를 거두도록 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센서 박사는 세계의 천연두를 제거하지 않고 미국 국민을 보호할 수는 없다는 지론을 폈고 그것은 새로운 대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한 국제적 공동노력의 결과 1979년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사업은 CDC가 국제적 공공보건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 최초의 사례였고, 그 후 CDC는 계속 지구촌의 건강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19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 재향군인회 모임에서 29명이 집단으로 폐렴에 걸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CDC의 감염병 학자들은 센서 박사의 지휘하에 원인 규명에 나섰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른바 ‘재향군인회 병’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레지오넬라’균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당시 행사가 열렸던 호텔의 냉방 장치가 문제의 세균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그 사건이 사보타주(sabotage)나 독극물 공격, 또는 세균전에 의해 발생했다는 설을 잠재웠습니다. 

센서 박사의 일생에서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돼지독감(swine flu) 백신 접종을 전국적으로 실시한 것이었습니다. 1976년 뉴저지주 포트딕스 군 기지에서 200명 이상의 돼지독감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그 독감은 1918년과 1919년 미국인 50만 명, 전 세계에서 2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공포의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과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질병 통제를 책임지고 있는 센서 박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만약 정말 돼지독감이 유행한다면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백신 접종을 해야 했고, 독감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있지도 않을 일을 두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비판을 받을 뿐 아니라, 백신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센서 박사는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예방접종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까지도 직접 나서 백악관에서 접종을 받고, 의회에 모든 미국인이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센서 박사는 여러 제약회사에 2억 회분의 백신을 제조하도록 주문했습니다.   

우려했던 감염 확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접종을 시작한 지 2주일도 안 돼서 백신을 맞고 25명이 숨졌습니다. 그 외 여러 사람이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일명 길랭-바렌 증후군, 급성 감염성 다발 신경염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센서 박사는 백신 접종과 그 증후군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센서 박사 주장에 회의를 나타내고 사전 실험이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1976년 12월 센서 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돼지독감 백신 접종은 중단됐습니다. 그때까지 접종을 받은 사람은 4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후 정부가 실시한 돼지독감 논란  조사는 센서 박사가 너무 성급하게 전국적인 백신접종을 서둘렀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센서 박사는 만약 접종을 하지 않았으면 수많은 사람이 숨졌을 것이라며 자신의 접종 결정이 옳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센서 박사는 2006년 보고서를 발표하고,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는 모자라게 하는 것보다 과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 1976년 연방 정부가 국민 보호를 우선시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라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자 신임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은 ‘통상적인 교체’라면서 센서 박사를 CDC 소장직에서 해임했습니다.  

CDC 소장직을 물러난 후 센서 박사는 민간 의료기술 회사에 몸담고 있다가 1982년 뉴욕시 보건국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가 다시 공직을 맡았을 때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이 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 악화로 시의 재정은 바닥이었고, 보건국 직원은 반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센서 박사는 뉴욕시에 미국 최대의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했습니다. 센서 박사는 시 조례를 수정해 에이즈 감염자 신원을 노출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감염 어린이들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는 권리도 보호했습니다. 또한, 마약 중독자들에게 새 주사 바늘을 바꾸어 주는 운동도 벌였습니다.  

센서 박사는 1989년 공직에서 은퇴했습니다. 말년에는 비공식 직책이지만 CDC 역사가로 일했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해 자주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질병의 확산으로 전국이 긴장할 때면 그는 거의 매일 정식 직원처럼 CDC에 나와 일손을 도왔습니다. 당시 CDC 소장이 “보수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이런 일은 나의 즐거움”이라며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전 세계를 위협했던 각종 유행병과 반세기에 걸친 싸움을 계속하던 센서 박사는 2011년 5월 2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심장질환 합병증으로 타계했습니다. 향년 86세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애도와 함께 그의 공로를 되새기는 가운데, 미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데이비드 센서 박사야말로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인이었다고 찬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