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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미나리, 미국 이민생활 꿰뚫은 명작" 영화 전문기자, 캐리 리키


[여성 언론인 대담] "미나리, 미국 이민생활 꿰뚫은 명작" 영화 전문기자, 캐리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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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세계적인 영화상, 오스카 시상식(The Oscar Awards)이 오는 주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됩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의 이야기인 ‘미나리’가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영화 전문기자를 초대했습니다. 동부 유력 신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문화 담당 편집 부국장을 지내고, 주요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는 캐리 리키 기자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캐리 리키 영화전문기자 (캐리 리키 제공).
캐리 리키 영화전문기자 (캐리 리키 제공).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리키) 저는 캐리 리키(Carrie Rickey)입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오래 일했고요. 영화와 문화 관련 사안에 대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영화 전문기자’라는 직함이 붙은 지 40년이 훨씬 넘었네요.

기자) 영화 전문기자의 일상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하루 종일 영화만 보시나요?

리키) 하하하…. 영화 전문기자, 혹은 영화 평론가라고 해서 영화에 관한 평가만 (기사로) 쓰는 게 아니에요.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배우들, 감독들을 만나고 인터뷰합니다. 독자들은 영화의 뒷얘기를 알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걸 알려드리는 게 제가 할 일 가운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물어서 그 답을 전달해야 해요. 때로는 제작진(staff)이 주목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또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요. 영화계의 유행과 흐름(trends)도 파악해서 기사화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과연 영화 전문기자의 영역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게 제 업무입니다.

기자) 과연 영화 전문기자의 영역이냐고 반문할 만한 부분, 어떤 겁니까?

리키) 예를 들어, 과학 기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술과 영화는 전혀 무관할 것 같지만,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제가 처음 취재 일선에 나섰을 땐 35mm 필름에 영화를 담았어요. 그 필름을 커다란 원통에 넣어서 영화관마다 ‘배급’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할 때 ‘배급- 누구누구(Distributed by someone, somebody)’ 하는 자막이 붙는 거예요. 지금은 배급할 필요 없이,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서 전송하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영화판이 또 한 번 뒤집어졌습니다. 아예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집에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대형 TV 화면을 통해, 끊기지 않는 동영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잖아요. ‘기술’이 영화를 얼마나 바꿔놨냐면, 제 막내딸 아이는 영화가 필름에 담겨서 영화관마다 ‘배급’됐었다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 못해요. 당연히 넷플릭스를 틀면 나오고, 아무거나 골라 볼 수 있는 게 영화라고 압니다.

기자) 영화가 ‘종합 예술’인 것처럼, 기술 분야까지 취재하는 영화 전문기자는 ‘종합 기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리키) 맞아요! 정치와 정책에 관한 기사를 쓸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영화에 흡연 장면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문화계에 촉구한 적이 있었어요. 청소년 보호 목적이었죠. 하지만 업계는 반발했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청소년 보호’와 ‘창작의 자유’, 두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첨예한 정치 쟁점이 됐어요. 여론도 크게 갈려서 사회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논쟁이 한창일 때, 정치인들과 교육자, 보건 전문가, 사회운동가까지 인터뷰하느라 바빴습니다.

기자) 결국 영화상의 흡연 장면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됐나요?

리키) 흡연을 묘사한 영화는 대부분 ‘R 등급(Rated R)’을 매기게 됐어요. 17세 이하 청소년은 보호자 없이 못 보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기자) 기자로서 취재할 수 있는 분야가 여러 개 있는데, 왜 영화를 택하신 겁니까?

리키) 아까 ‘종합 예술’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이 딱 맞아요. 영화에는 모든 게 담겨있습니다. 우선, ‘근사한 이야기’가 있지요. 그걸 받쳐주기 위해 아름답거나 고통스러운 ‘설정(settings)’이 있고요. 그 설정에는 음악과 미술, 의상, 역사 고증까지 들어갑니다. 그리고 요즘엔 컴퓨터 기술까지 포괄해요.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야기’와 ‘설정’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교류하는 배우들이 있는 거죠. 그걸 보는 관객들은 잠시 자기 자신을 잊고, 저마다 배우들과 동기화합니다. 영화를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영화는 사람들이 다른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위대한 예술이에요. 저는 영화에 어릴 적부터 빠져들었습니다. 영화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캐리 리키 기자가 국제영화제에서 강연하고 있다. (캐리 리키 제공)
캐리 리키 기자가 국제영화제에서 강연하고 있다. (캐리 리키 제공)

기자) 영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죠.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 한인 이민 가족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가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 영화 보셨나요?

리키) 오! 봤죠. 정말 좋았습니다. 환상적인 작품이에요. ‘미나리’는 정말 훌륭한 미국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이민 온 가족의 속 깊은 애환을 성공적으로 담아냈어요. 미국 사회가 이민 사회인데, ‘미나리’는 이민 생활의 본질을 꿰뚫은 명작이에요. 보통 ‘미국 이민’하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유롭고 풍족한 나라로 간다고 해서 근사하게만 생각하는데,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익숙한 나라를 떠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정말 어려우니까요. ‘미나리’에서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작은 남자아이(앨런 김 분)가 한국에서 온 할머니(윤여정 분)와 갈등을 빚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할머니한테, 자기 ‘친구들 할머니와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세대 차이’에 더한, 이민 가족만이 겪는 ‘문화 차이’, 이런 걸 제대로 묘사한 영화는 ‘미나리’가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어요. 작년에 봉준호 감독이 만든 한국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는데, 이어서 올해는 ‘미나리’가 작품상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기생충’은 작품상을 포함해 오스카 4개 부문을 석권했잖아요. 한국 영화가 이렇게 주목받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영화의 작품성이 크게 높아졌고, 세계적으로 애호가층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딸도 한국 영화의 광팬이에요. 친구들도 성향이 비슷합니다. 미국의 젊은 층이 이렇게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건,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오래갈 것을 뜻해요. 저도 한국 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김기덕 감독 작품을 높이 평가해요. ‘빈 집(2004)’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같은 작품은 영상미도 탁월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아주 고차원이에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기자) 40년 넘는 영화 전문기자 경력에서 가장 좋았던 일과 가장 나빴던 일은 뭔가요?

리키) 하하하, 그런 질문 제가 원래 싫어합니다. 왜냐면 평생 써온 기사 가운데 상당수가 어떤 분야의 ‘최고의 영화 10편’, ‘최악의 영화 10편’, 아니면 ‘최고의 배우 10명’, ‘최악의 배우 10명’ 그런 종류였거든요. 그렇게 무언가를 판단하고 가치를 매기는 데 솔직히 좀 지쳤어요. 그래도 답변을 드리자면, 음…가장 안좋았던 일부터 말할게요. 신문사 근무 초창기에 상사와 크게 갈등을 빚었던 일들이 아직도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몇 차례 있었는데, 제가 선임 입장이 되고 나니, 상사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더라고요. ‘그때 좀 더 잘할 걸…’ 이런 후회가 남습니다.

기자) 그럼 가장 좋았던 기억은요?

리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 기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이(영화) 분야에서는 아무도 꺾을 수 없다(invincible)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자로선 거의 독보적 위치이고요. 교만한 발언처럼 들리겠지만, 나이 들어서 이렇게 뻔뻔한 말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하하하.

기자) 전혀 교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영화를 좋아하고, 관련 보도를 챙겨보는 사람들 대다수가 리키 기자를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권위를 인정받게 되기까지 여성이라서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리키) 음…, 저는 운이 좋아서, 좋은 시절에 태어난 거 같아요.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막 언론 생활을 시작할 때(1970년대)가 미국에서 양성평등에 관한 언론계 변혁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많은 신문과 잡지사들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 깨닫기 시작한 시절이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그런 문제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거든요. 저희 윗세대들은 여자가 언론사에서 일하는 걸 꿈꾸기 어려웠습니다. 저희 때부터, 언론계에 여성 문제에 관한 인식이 퍼지면서, 성별의 다양성(diverse)을 추구하는 데 관심이 높아졌어요. 남녀의 관심사를 고르게 반영한 지면을 만들고, 기자들도 양성의 인적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예요. 제가 언론 생활 초창기부터 유명 신문사에 채용된 것도 그런 배려의 혜택을 본 겁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기자)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경력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리키) 네. 하지만 당시 그런 배려가 완전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진 않았어요. 무슨 말이냐면, 대게 신문의 앞면에 싣는 뉴스는 정치, 경제같이 중요하고 묵직한(hard-hitting) 사안들입니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ㆍ연예 기사들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들과 함께, 뒤쪽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시간에 나가는 꼭지들은 대게 정치ㆍ경제 기사들이고, 뒤쪽에 시간이 남을 경우 영화와 문화ㆍ연예 기사를 넣습니다. 당시 성별 다양성 추구를 위해 채용된 여성 기자들은 대부분 뒤쪽에 들어가는 문화ㆍ연예를 담당했어요. 여자가 정치ㆍ경제 보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나 경제를 담당하는 기자 중에서도 여성이 많아졌으니, 세상이 달라진 걸 실감합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리키) 음, 지난 1987년으로 돌아가 볼게요. (연방통신위원회가) 방송 보도에서 ‘형평성의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기했습니다. 논쟁적 사안을 다룰 때 한쪽 주장만 소개하지 말고, 다른 쪽 주장도 함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는데, 그걸 없앤 겁니다. 각 매체가 부담 없고 제한 없이 색깔 있는 목소리를 내도록, 자유를 더 증진하자는 목적이었죠. 그 뒤로 30여 년 동안 미국 언론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정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 즉 ‘옹호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이 급속히 확대됐어요. 보수 쪽에서는 ‘폭스뉴스’가 대표적이고, 진보 쪽에도 많은 매체가 있죠. 그런데 이런 변화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유가 확대된 것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왜 긍정적이지 않다고 보십니까?

리키) 옹호 저널리즘에서는 ‘사실(facts)’보다 ‘논쟁(argument)’을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그래서 논쟁에 몰두하다 보면, 현상이 왜곡되기도 해요. 주장에 맞추기 위해 사실의 조각들을 끌어다 맞추니까요. 그건 언론의 본연을 망각하는 겁니다. 또, 그런 매체들이 내놓은 기사가 이목을 끌기 쉬우니까, 형평과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매체들의 보도는 재미가 없어 보여요. 그러면, 중심을 잡으려던 매체들도 한쪽으로 끌려갈 위험이 높습니다. 언론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유도 중요하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절제해서, 전체적인 형평성을 회복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언론 자유’를 규정할 때, ‘자유롭게 말하는 것’만큼 ‘진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기자) 어떤 면에서 보면 자유가 지나치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계시는군요?

리키) 네. 그 문제 외에는, 저는 미국의 언론 자유도에 10점(만점)을 줄 수 있습니다. 40년이 훨씬 넘게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당국의 검열을 받거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적이 없으니까요. 특정 세력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자유롭게 진실을 대중에 전하는 것, 이게 언론 자유의 본질이에요.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리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언론 자유’가 한없이 허용된 곳에 살고 있어서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양성평등’을 향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에 미국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제가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온 이 소중한 가치들을 북한에 계신 분들도, 그리고 다른 어느 나라에 계신 분이라도 함께 경험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캐리 리키 영화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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