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뉴스] “한국군 ‘포로 가족’ 워싱턴 방문…국제사회 관심 호소”

2021.6.9 3: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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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중 북한에 포로로 끌려간 한국군의 가족들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한국군 포로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한국군 포로 가족들은 또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찾아 한국군 포로 문제를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김정호)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에 붙잡혀간 한국군 포로 손동식 씨의 딸이자 ‘6.25 국군포로 가족회의’ 대표인 손명화 씨가 4일 워싱턴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가 주최한 대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손명화 씨는 20대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가 북한에 끌려간 한국군 포로들은 평생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서 북한 내 한국군 포로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손명화 / 6.25 국군포로 가족회의 대표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그 노예 같은 삶을 침묵으로 지켜야 만이 살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눈을 감고 잠을 자고 나면 국군포로들을 다 잡아서 정치범 수용소에 갔기 때문에.  국군포로를 잡아 가두고 총살을 해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취약한 환경 속에서 북한을 국군포로들을 순 노예로 잡아 가둬서 일을 시켰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손 씨는 아버지가 51살 때인 1984년 폐암으로 사망한 뒤 2005년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손 씨는 한국군 포로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가혹한 행위는 연좌제로 가족들에게도 적용해 차별과 처벌이 이어졌다면서 가장 낮은 성분으로 분류된 자녀들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최악의 조건에서 일을 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손명화 / 6.25 국군포로 가족회의 대표 

“아버지가 국군포로이면 제가 국군포로이고, 제가 만약에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도 제 자식도 국군포로가 됐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시아버지가 한국군 포로인 마영애 씨는 현재 생존한 북한 내 한국군 포로들이 대부분 고령이기 때문에 스스로 탈북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마영애 / 한국군 포로 가족, 북한인권운동가  

“저희 시아버지가 89세입니다. 대한민국으로 올 수도 없는 그런 연세입니다. 지금 저 뒤에 앉아 있는 이런 국군 포로병의 아들들이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게끔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COI 보고서는 한국전쟁 당시 8만 2천 명의 한국군 포로가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5만에서 7만 명이 포로로 억류돼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손명화 씨와 마영애 씨는 워싱턴 일정을 마친 뒤 뉴욕에 유엔 본부를 찾아 한국군 포로 문제를 적극 알리고, 유엔 내 북한대표부를 찾아 한국군 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정권에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손명화 씨를 비롯한 한국군 포로 가족들은 지난해 10월 북한 내 한국군 포로의 생사 확인과 송환 등을 북한 정부에 요청하도록 촉구하는 진정서를 유엔에 제출했으며, 북한이 포로와 전시 납북자의 생사 여부를 밝히고 한국으로 이들을 무사히 돌려보낼 것을 촉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