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그라 판매 금지부터 데이터센터 건설까지…미국 중간선거, 이런 것도 주민이 결정한다

오는 11월 3일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후보자를 뽑는 투표 외에도 각종 정책에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주민투표(Ballot Measure)도 함께 실시한다.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의 판매를 금지할지,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할지, 이런 문제들을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수도 워싱턴 D.C. 주민들은 푸아그라 판매 금지 여부를, 콜로라도주 주민들은 천연가스 사용권을 주 헌법에 명시할지를 결정합니다.

미국 중간선거는 정치인만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낙태권과 세금 같은 굵직한 정책부터 동네 데이터센터 건설과 식탁 위 음식까지, 주민들이 직접 찬반투표에 나섭니다.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가운데, 투표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게 서 있는 모습. (자료사진)

정치인만 뽑는 게 아니다…주민투표란?

미국에서는 선거 때 후보자뿐 아니라 각종 정책에도 찬성과 반대를 표시합니다. 바로 주민투표(Ballot Measure)입니다. 법률 제정과 개정, 주 헌법 개정 여부까지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안건을 올리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주 의회가 주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하고, 주민들이 서명을 모아 법률 제정이나 개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법률을 폐지할지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주민들이 직접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지는 주마다 다릅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연방 차원의 주민투표도 없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투표용지에 등장하는 질문이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올해 164개 안건…11월에는 145개가 투표대에

올해는 얼마나 많은 주민투표가 실시될까요? 선거정보 전문기관 밸럿피디아(Ballotpedia)에 따르면 올해 미국 40개 주에서 모두 164건의 주 단위 주민투표 안건이 확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145건이 오는 11월 3일, 39개 주에서 투표에 부쳐집니다.

이는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짝수 해 11월 선거에서 실시된 주민투표 평균 163건보다 다소 적은 수준입니다. 물론 투표 안건으로 확정됐다고 해서 곧바로 법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투표에서 필요한 찬성표를 얻어야 합니다.

낙태권부터 부유세까지…주요 안건은?

올해도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이 주민투표에 올라왔습니다.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이 주민투표에 올라온 가운데, 낙태권이 여러 주에서 주민투표 안건으로 올라왔다.

먼저 낙태권입니다. 버지니아와 네바다, 아이다호에서는 낙태 관련 권리를 주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할지를 결정합니다. 반면 미주리에서는 2024년 주민투표로 승인된 임신·출산 관련 자기결정권 조항을 폐지하고, 일부 예외를 제외한 낙태를 금지할지를 묻습니다.

세금 문제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산이 10억 달러를 넘는 특정 납세자에게 일회성 부유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투표에 올라왔습니다. 해당 안건은 과세 대상 자산의 최대 5%를 부과하고, 세수의 90%를 의료서비스에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선거제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알래스카에서는 유권자가 후보자에게 선호 순위를 매기는 순위선택투표제를 폐지할지 결정합니다. 버지니아에서는 형기를 마친 중범죄 전과자의 투표권을 자동으로 회복하는 안건도 투표에 부쳐집니다.

우리 동네 데이터센터, 지어도 될까?

2025미국 텍사스주 에이빌린에서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건물들의 모습. (자료사진)

인공지능, AI 시대를 맞아 미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주민투표도 잇따릅니다. 주 전체가 아닌 시와 카운티 등 지방정부 차원의 주민투표입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세수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막대한 전력과 물 사용, 소음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하이오주 오리건시에서는 전력 수요가 25메가와트를 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건설을 금지할지 결정합니다. 같은 주 그로브시티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주민 승인을 의무화할지도 묻습니다. 전력 수요가 20메가와트를 넘거나 하루 물 사용량이 50만 갤런을 초과하는 개발사업 등이 대상입니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건설을 허용할지 묻는 지역도 있습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인근 볼더시티에서는 사막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토지 이용 규정을 변경할지를 주민들이 결정합니다.
밸럿피디아에 따르면 올해 데이터센터 관련 지방 주민투표는 13개 주에서 최소 49건이 예정됐으며, 이 가운데 41건이 11월 3일 실시됩니다. 앞서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도 개발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한 조치가 가결되거나, 데이터센터 개발을 지원하는 안건이 부결된 것입니다. AI 시대의 핵심 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 주민들이 직접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푸아그라 금지에 가스레인지 사용권까지?

워싱턴 D.C.에서는 푸아그라 판매 금지 여부를 결정한다. 푸아그라는 오리나 거위에게 먹이를 강제로 먹여 간을 비대하게 만드는 생산 방식 때문에 동물복지 논란을 빚어왔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이색 안건도 눈길을 끕니다. 워싱턴 D.C.에서는 푸아그라 판매 금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푸아그라는 오리나 거위에게 먹이를 강제로 먹여 간을 비대하게 만드는 생산 방식 때문에 동물복지 논란을 빚어왔습니다. 주민들은 이런 강제급식을 금지하고, 해당 방식으로 생산된 푸아그라의 판매와 유통 등을 막을지 투표합니다.

콜로라도에서는 가스레인지 사용권을 헌법으로 보장할지도 결정합니다. 이 안건의 배경에는 환경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신축 건물의 천연가스 사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민들은 가정과 사업장에서 요리나 난방에 필요한 천연가스를 계속 구매할 권리를 주 헌법에 명시할지 결정합니다. 찬성 측은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콜로라도에서는 가스레인지 사용권을 헌법으로 보장할지도 결정한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는 집주인이 필요한 수리를 하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직접 수리하고 비용을 임대료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도 올라왔습니다. 먹거리부터 주방, 집 수리까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셈입니다.

과반수면 통과? 주마다 다른 규칙

그렇다면 찬성이 얼마나 나와야 통과될까요? 많은 주에서는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됩니다. 하지만 주마다 규칙이 다릅니다. 특히 헌법 개정안은 일반 법률보다 더 높은 찬성률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콜로라도의 천연가스 사용권 관련 헌법 개정안은 통과하려면 5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올해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에서는 앞으로 주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60%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할지를 주민투표로 결정합니다. 주민투표의 통과 기준까지 주민들이 직접 정하는 것입니다.

가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시행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행 시점은 각 주의 법률과 안건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적 소송으로 시행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는 11월 3일 미국 유권자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정치인을 뽑습니다. 동시에 낙태권과 세금, 데이터센터 건설, 푸아그라 판매 금지 등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책에도 한 표를 행사합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