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오늘은 10월 2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1967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 서굿 마셜이 대법관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 날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1869년 이날 태어나 비폭력 저항을 통해 인도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삶과, 그의 생일이 오늘날 ‘세계 비폭력의 날’이 된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Thurgood Marshall Takes His Seat on the U.S. Supreme Court — 1967년 10월 2일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967년 10월 2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연방대법관이 공식 업무를 시작했죠?
[기자] 맞습니다. 이날 서굿 마셜이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사법 선서를 하고 대법관석에 앉았습니다. 마셜은 이미 한 달 전인 9월 1일 휴고 블랙 대법관 앞에서 헌법 선서를 했는데요. 10월 2일 연방대법원의 새 회기가 시작되면서 법정에서 사법 선서를 하고 공식적으로 재판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마셜은 대법관이 되기 전부터 이미 연방대법원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던 인물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이 마셜의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마셜은 대법관석에 앉기 훨씬 전부터 민권 변호사로 연방대법원 법정에 수차례 섰습니다. 특히 1954년 미국 공립학교의 인종분리 문제를 다룬 역사적인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즉 ‘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에서 원고 측 변호인단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 학생을 분리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인종차별에 맞서 연방대법원에서 변론했던 변호사가 13년 뒤 바로 그 법원의 대법관이 된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마셜은 1930년대부터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에서 활동했고, 이후 NAACP 법률방어기금의 책임자로 미국 곳곳의 인종차별 제도에 법적으로 도전했습니다. 마셜은 연방대법원에서 모두 32건의 사건을 변론해 29건에서 승리했는데요.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였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1960년대 미국 상황을 생각하면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 지명 자체도 상당히 역사적인 일이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7년 6월 마셜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1964년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이 제정되는 등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상원은 그해 8월 30일 마셜의 인준안을 통과시켰고, 결국 10월 2일 마셜이 연방대법관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마셜은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연방대법관으로 활동했습니까?
[기자] 1991년 은퇴할 때까지 약 24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재임 기간에는 인종차별 문제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형사사법, 사형제도 등 여러 헌법적 쟁점에 대해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면 역시 1954년 연방대법원에서 인종분리 교육에 맞서 싸우던 변호사가 1967년에는 그 법원의 첫 흑인 대법관으로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 독립운동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
2. Birth of Mahatma Gandhi / International Day of Non-Violence — 1869년 10월 2일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인도로 가 보겠습니다. 1869년 10월 2일, 훗날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되는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났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날 인도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하트마 간디’라고 부르는 인물인데요. 훗날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선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특히 폭력이 아닌 비폭력과 시민불복종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엔도 간디를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이자 비폭력 철학과 전략의 선구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간디도 처음부터 독립운동가였던 것은 아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1893년 일을 위해 남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요. 그곳에서 인도계 주민들이 겪던 인종차별과 차별적 법률에 맞서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발전시켰고, 1915년 인도로 돌아온 뒤에는 영국 식민통치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진행자]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면 역시 ‘소금 행진’을 꼽을 수 있겠죠?
[기자] 맞습니다. 1930년 당시 영국 식민정부는 소금 생산과 판매를 통제하고 소금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습니다. 간디는 이에 저항해 추종자들과 함께 약 24일 동안 인도 서부 해안까지 걸어간 뒤 소금을 직접 만들며 영국의 소금법을 공개적으로 어겼습니다. 바로 유명한 ‘소금 행진’인데요. 폭력 대신 공개적인 시민불복종을 통해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진행자] 비폭력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간디가 말한 비폭력은 그런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간디가 추구한 방식은 불의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행진과 시위, 비협조와 시민불복종 등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인데요. 유엔 역시 비폭력 저항을 갈등을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오늘 10월 2일이 간디의 생일인 동시에 유엔이 정한 ‘세계 비폭력의 날’이기도 하죠?
[기자] 맞습니다. 간디가 태어난 지 138년 뒤인 2007년, 유엔총회는 매년 10월 2일을 ‘세계 비폭력의 날(International Day of Non-Violence)’로 기념하기로 했습니다. 목적은 교육과 대중 인식 활동 등을 통해 비폭력의 메시지를 확산하는 것인데요. 그해 10월 2일 유엔에서 첫 공식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간디 개인의 생일이 국제사회가 비폭력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된 겁니다.
[진행자]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인도를 넘어 다른 나라의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죠?
[기자] 그렇습니다. 유엔은 간디가 세계 여러 지역의 시민권 운동과 사회 변화 운동에 영감을 줬다고 설명합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간디는 이듬해인 1948년 암살됐는데요. 하지만 그가 강조했던 비폭력 저항의 방식은 이후에도 여러 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행자] 인종차별에 맞서 법정에서 싸우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이 된 서굿 마셜, 그리고 폭력이 아닌 시민불복종과 비폭력 저항으로 인도 독립운동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까지. 역사 속 10월 2일이 남긴 두 가지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내일도 알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