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최 기자,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기자) 오늘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의료장비 166종 지원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계기로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 정부가 북한에 의료장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의 어느 병원에, 어떤 장비를 제공한다는 것인가요?
기자) 한국 통일부가 지원하려는 곳은 평양 외곽에 있는 '평양시 강동군 병원' 1곳입니다. 이 병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지방 보건의료 현대화의 첫 본보기로 건설된 곳인데요. 제공하려는 장비는 총 166종으로, 주로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 또는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의료장비들입니다. 야당인 국민의힘 쪽에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긴장감을 높이는 상황에서 대북 지원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이와 관련해 윤민호 통일부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인도적 사업은 정치적, 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해 나간다는 원칙을 갖고 남북협력기금을 편성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조치에 따라 북한에 기계류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의료장비를 북한에 제공할 수 있나요?
기자) 네, 말씀하신 대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제2397호 등)는 금속류와 기계류, 정밀 부품의 대북 반출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정밀 의료장비 역시 대북제재 품목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제공할 방법이 있는데요. 바로 유엔 안보리 결의에 규정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제재 예외 조항' 덕분입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 주민의 생명, 보건과 직결된 인도주의적 목적의 사업에 대해서는 심사를 거쳐 예외적으로 제재 면제(Sanctions Exemption)를 승인해 줍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지난 5월, 평양 강동군 병원에 전달할 의료장비 166종에 대해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인도적 지원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법적 걸림돌은 해결된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 당국의 ‘수용 의사’입니다. 즉, 북한이 “의료장비를 받겠다”고 입장을 밝히면 의료장비 166종이 국경을 넘어 북한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노동신문을 보면 병원이 준공됐다는 소식이 가끔 있는데, 의료장비는 여전히 부족한 모양이군요?
기자) 네. 북한 병원은 전반적으로 의료장비와 부품 그리고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 의료장비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비에 들어가는 소모품과 부품 부족으로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2022년 9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의료장비 부품과 소모품 부족으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렝트겐 장비(X-ray)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으며, 신축 병원도 의료장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은 그동안 무상치료를 사회주의의 대표적 성과로 자랑해왔는데, 언제부터 병원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일까요?
기자) 탈북민들은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을 의료체계가 무너진 결정적 시기로 꼽고 있습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무상의료제도를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기간 중 병원이 황폐화됐다는 겁니다. 과거 함경북도 함흥에서 살다가 2001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박광일 씨의 말 들어보시죠.
박광일 / 탈북민
“북한의 의료체계는 1990년대 경제난으로 붕괴됐다고 봐야죠. 그게 회복이 안 되니까, 무상의료체계는 말뿐, 빈 껍데기라고 봐야죠.”
진행자) 그러면 지난 30년간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치료를 받아왔나요?
기자) 한국 통일부가 작성한 북한 인권백서를 보면 2021년에 탈북한 탈북민은 병원에 가려면 환자가 장마당에서 항생제, 마취제, 주사기, 심지어 붕대까지 사서 병원에 갖고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수술을 할 경우 의사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데, 맹장 수술을 할 경우 100위안, 그리고 큰 수술은 300~400위안을 줘야 한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또 2023년에 탈북한 탈북민은 2021년부터 인민병원에서 ‘인민’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병원에 정식으로 가격표가 붙어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북한 주민들은 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 아닌 개인 병원에 간다면서요?
기자) 네, 국영병원이 치료를 제대로 못 하자 주민들은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다시 탈북민 박광일 씨의 말 들어보시죠.
박광일 / 탈북민
“이제는 북한 정부도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암묵적으로 승인한다고 해요. 그래서 환자가 암에 걸리면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간대요. 거기에 가야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약이 있기 때문에…”
진행자) 한편 일반 주민들은 약이 없어 장마당을 헤매는 동안, 북한의 특권층과 당 간부들은 최고급 전용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면서요?
기자) 네, 맞습니다. 탈북민에 따르면 평양에 있는 봉화진료소는 김정은 위원장 일가를 비롯한 최상위 '로열패밀리'와 당 정치국 위원 등 간부들만 이용하는 특수 병원입니다. 또 평양의 남산진료소는 당 중앙위원회 과장급 이상, 내각 간부, 군 고위 장령(장군) 등 핵심 간부들만 다니는 병원이라고 합니다. 또 지방에도 당 간부들이 가는 병원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김정은 정권은 최근 지방 병원 건설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전망은 어떻습니까?
기자) 단기적으로 정치적 홍보 성과는 거둘지 몰라도, 실질적인 주민 보건의료가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은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공장과 병원을 건설하겠다는 것인데요. 군인을 동원해 병원 외형을 지을 수는 있지만, 그 안을 채울 의료장비, 의약품, 소모품, 그리고 전문 의료진이 없으면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 건설과 함께 의료 인력과 의약품, 의료장비를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결국 북한의 국가 재정이 이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뉴스 동서남북, 오늘은 북한의 보건의료 현주소를 살펴봤습니다. 최원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