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아시안게임 나선 북한...‘체제 선전 도구’가 된 엘리트 체육

  • 최원기

2026년 9월 14일, 일본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조별리그 F조 방글라데시와 북한의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진행자) 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최 기자,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기자) 오늘은 북한의 일본 아시안게임 참가를 계기로 북한 체육의 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 아시안게임에서 첫 승리를 거뒀군요?

기자) 네,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 아시안게임 첫 경기에서 10골을 넣으며 대승을 거뒀습니다. 북한은 14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방글라데시를 10-0으로 대파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오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일본 아이치현과 나고야시에서 열리는데요, 축구는 경기 일정상 개막식보다 먼저 시작됩니다.

진행자) 북한은 이번 대회에 선수를 몇 명이나 보냈나요?

기자) 북한은 이번 대회에 축구와 역도, 복싱(권투), 레슬링, 탁구 등을 포함해 14개 종목에 100여 명의 선수를 파견했습니다. 여기에 선수단 임원과 지원 인력까지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약 180명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선수단이 일본을 방문하는 규모로는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진행자) 북한이 이번 일본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기대하는 종목은 무엇입니까?

기자) 북한이 기대를 거는 종목은 역도, 권투, 레슬링, 여자 축구 등으로 북한의 전통적인 메달밭입니다. 북한으로서는 북한-일본 경기나 한국-북한 경기처럼 상징성이 큰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내부 결집과 체제 우월성을 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방금 북한이 ‘승리하면 체제 우월성을 홍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북한에서 스포츠(체육)는 단순히 경기를 하고 메달을 따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기자) 네, 북한에서 체육은 단순한 신체 활동이나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국가 체제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핵심 정치적 도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 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딴 메달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수령의 은덕'으로 포장됩니다. 또 북한 당국은 스포츠에서 승리를 통해 주민들에게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과 착시를 심어줍니다. 이를 통해 북한 당국은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 결속력을 극대화합니다. 결국 경기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정치적 전리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북한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꼭 ‘위대한 장군님’을 언급하는 것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몇몇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유도의 계순희 선수는 당시 16세의 나이로 일본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땄는데요. 기자가 소감을 묻자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 기쁨을 드리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오늘 거둔 승리는 모두 장군님의 세심한 은덕 덕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2024년 파리 올림픽 탁구에서 은메달을 딴 리정식, 김금용 선수의 사례도 비슷한데요.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금용 선수는 “경애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 기쁨을 드리고 싶다는 한 마음뿐이었습니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진행자) 결국 북한의 ‘엘리트 체육’, 또는 ‘체육의 정치화’가 문제인데, 언제부터 이런 정책이 시작됐을까요?

기자) 북한이 체육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한 것은 일찍부터 시작됐습니다. 건국 초기인 1947년 이미 중앙체육지도위원회 산하에 선수 양성을 위한 체육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주목할 점은 북한의 체육 정책이 상당 부분 구 소련의 체육 정책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겁니다. 구 소련은 냉전 시절 올림픽과 국제대회에서 미국 등 서방과 경쟁하면서 스포츠 성적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했는데요. 북한도 이를 받아들여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를 ‘체제의 영웅’으로 만들고, 최고 지도자를 선전하는 데 활용해 왔습니다.

진행자)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집권한 이후 ‘엘리트 체육’을 더욱 강화하지 않았나요?

기자) 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체육을 정권의 핵심 국정과제로 끌어올리며 ‘엘리트 체육’을 강하게 추진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요.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인 2012년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하고, 친척이자 실세였던 장성택을 첫 위원장에 앉힐 정도로 체육에 힘을 실었습니다. 또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 핵심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또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금메달리스트에게 평양 최고급 아파트와 외제 고급 승용차를 하사했습니다. 또 메달을 딴 선수에게 '인민체육인'·'노력영웅' 등의 칭호도 주었습니다.

진행자) 한마디로 북한은 지난 80년간 ‘엘리트 체육’을 추진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스포츠의 정치화’가 가져온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수의 인권과 생활체육을 희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수를 선발해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 때문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습니다. 또 국가가 유망한 선수와 유망한 종목을 골라 재정을 투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주민들의 건강 증진이나 학교 체육 등 생활체육 기반은 황폐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공정한 경쟁과 신체 단련이라는 체육 본연의 가치는 사라지고, '수령 우상화'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결국 북한의 엘리트 체육은 독재자의 위신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진행자) 뉴스 동서남북, 오늘은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계기로 북한 체육의 현실을 살펴봤습니다. 최원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