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지난 8월 미국 여러 군 기지의 마트에서 냉동고가 동시에 고장이 나 식료품이 대량으로 부패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한 장비 결함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펜타곤이 이 사건을 사이버 공격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왜 이 일이 그 정도의 심각성을 띄는 건지,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오종수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먼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정리해 주시죠.
기자) 지난 8월 말부터 미국 내 군 기지 대형마트, ‘커미서리(commissary)’라고 부르는데요, 여러 매장에서 가동 중인 냉동고와 냉장고가 밤사이 갑자기 ‘해동 모드’로 바뀌어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일이 잇따랐습니다. 안에 있던 육류와 냉동식품, 채소가 상해서 폐기됐는데요. 애리조나주 포트 와추카의 커미서리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냉동고가 밤 사이 해동 모드로 들어가 식품들을 모두 “변질시켰다(spoiled)”고 공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향은 냉동식품에만 그치지 않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는데요. 매장 내 모든 냉장·냉동시설에서 식품을 철수하고, 평범한 채소 진열대까지 모두 비워놓은 사진을 함께 게시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피해를 본 기지가 그곳뿐이 아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이런 이야기들이 올라왔을 때,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는데요. 그런데, 얼마 안 가 군사전문 매체인 밀리터리 타임스가, 미국 본토의 6개 넘는 기지에서 ‘냉동고 대란’이 일어난 것을 전쟁부가 확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뒤로 관련 소식이 들리지 않았는데요. 석달 가까이 지난 이달 29일 전쟁부가 이 문제를 사이버 공격 의심 사례로 조사한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진행자) 이런 일이 일어난 곳들이 어디 어디인가요?
기자) 아까 말씀드린 포트 와추카,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의 트레비스 공군기지, 로드아일랜드주의 뉴포트 해군기지, 미시시피주 컬럼버스 공군기지, 와이오밍주 F.E. 워런 공군기지 등이 사건 발생을 공개 발표한 곳들입니다. 육·해·공군 시설이 골고루 포함됐고, 지역적으로도 서부와 중부, 동부에 걸쳐 흩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데요. 유럽의 미군 시설에서도 이런 일이 확인됐습니다. 미군 기관지 성조지(Stars and Strip)는 지난달, 영국과 독일의 미군 시설 4 곳에서도 일부 냉동·냉장설비들이 운영 중단됐다는 국방 커미서리 관리국(DeCA·데카)의 발표를 전했습니다.
진행자) 단순 고장이 여러 곳에서 우연히 일어난 걸 수도 있는데,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가 뭐죠?
기자) 단순한 고장이라면, 냉동시설이 꺼졌다든가, 설정한 온도만큼 내려가지 못한다든가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정상 가동되던 설비가 갑자기 ‘해동(defrost) 모드’로 전환돼서 내부 온도가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에 주목해 미 사이버사령부가 다른 정부기관들과 협력해 조사에 돌입했다고 군 당국이 로이터통신과 폭스뉴스, 뉴스위크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에 확인해줬습니다.
진행자) 매장의 냉장·냉동고가 해킹 대상이 될 수 있단 이야기인가요?
기자) 네. 요즘 냉동·냉장 설비는 인터넷에 연결해 원격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외부에서 접근할 통로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미군 당국의 이번 수사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기 체계나 지휘 통신망이 아니라 식품을 보관하는 일상 설비의 제어 시스템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품 보관 설비가 멈추면 커미서리를 이용하는 장병들의 생활에 차질을 빚게 되고, 그러면 미군의 준비태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와 관련해 육군 범죄수사단(CID)은 유럽의 냉동·냉장 설비 중단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프랑스 수사 당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진행자) 프랑스에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던 겁니까?
기자) 네. 이달 초 프랑스에서 확인된 사이버 공격이 있었습니다. 해커들이 슈퍼마켓 냉장·냉동 시스템의 온도 제어 장치를 조작해서 350곳이 넘는 매장에서 식품이 상하는 사건이 발생했거든요. 파리 검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군 시설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을 조사하는 미군 당국이 반드시 들여다봐야할 사건입니다. 두 사건이 같은 원인에서 비롯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비가 설정과 다르게 해동 모드로 바뀐, 증상이 비슷하다 보니 비교 대상이 된 것입니다.
진행자) 조사가 진행되면서 지켜봐야 할 점은 뭔가요?
기자) 첫째는 해킹이 실제로 있었는지, 둘째는 장비와 침투 경로가 프랑스 사건과 같은지, 셋째는 배후가 누구인지입니다. 지금은 세 가지 모두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군 기지 안의 사물인터넷 설비 관리 기준도 점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 사건이 벌어진 커미서리, 미군 장병들이 이용하는 기지 내 마트라고 했는데, 어떤 곳인가요?
기자) 장병 복지를 위해 미군 기지 안에서 운영하는 대형 식료품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마트와 비슷한 구조인데요. 고기, 채소, 유제품, 냉동식품, 빵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식품과 관련 상품들을 구비해놓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미군 기지에는 보통, 가장 접근이 쉬운 위치에 커미서리와 피엑스(PX)가 나란히 붙어있습니다. 피엑스는 ‘Post Exchange’라고 해서, 식품을 제외한 상품들을 파는 곳입니다. 전자제품, 의류, 취미용품 등을 망라해 놓은 백화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행자) 일반 마트와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기자) 가격이 일반 마트에 비해 현저하게 낮습니다. 세금과 이윤이 제거된 식료품을 장병들에게 판매하는 건데요. 소비자가 상품을 최종 구매할 때 내야하는 판매세(sales tax)가 대개 면제됩니다. 그리고 커미서리 측이 별도로 남기는 이윤없이 ‘원가에 5% 추가 요금’을 더한 가격으로 상품을 팝니다. 이 5%는 의회가 정한 ‘서차지(surcharge)’라는 것인데요. 새 매장을 짓거나 기존 매장을 개보수하는 비용에 쓰는 실비입니다. 매장 운영비는 별도로 의회가 책정한 예산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일반 마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진행자) 세금과 이윤이 제거됐다면서, 5% 서차지가 붙는다면, 그게 그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실제 구매자 입장에서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 건가요?
기자) 데카 측은 이용자가 평균 30% 안팎을 절약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비교 대상과 산출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의회 요구로 비교 방식이 바뀐 뒤에는 절감률이 예전에 알려진 것보다 낮게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지역별 차이도 있습니다. 또 기지 주변에 경쟁하는 할인 마트가 많으면 격차가 줄어듭니다. 결국 싸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몇 퍼센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진행자) 상품 구색은 어떤가요, 일반 마트를 상대로 경쟁력이 있습니까?
기자) 물론입니다. 눈을 감은 채로 커미서리 입구를 통과해 안에서 다시 눈을 떠 보면, 여기가 ‘월마트’인지 커미서리인지 선뜻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 마트에 비해 손색이 없습니다. 매장 규모나 진열 상품의 다양성에서 뒤지지 않거든요. 데카 공식 자료에 보면, 평균적인 매장은 1만 2천 개 안팎의 품목을 갖추고 있습니다. 큰 매장은 훨씬 더 많아서, 가장 큰 매장 기준 2만 2천 500개라는 숫자도 나옵니다. 일반 마트에서 파는 유명 브랜드 상품 외에, 커미서리 자체 브랜드까지 있고요. ‘클릭투고(Click2Go)’라는, 온라인 주문 후 커미서리 앞에 가면, 차안에서 물건을 받아갈 수 있는 서비스도 운영합니다.
진행자) 상당한 편의성까지 갖췄네요.
기자) 네. 이런 경쟁력 때문에, 기지 안에 거주하는 장병들은 굳이 장을 보러 영외에 나가서 일반 마트를 방문할 필요가 없고요. 오히려, 영외 거주 장병들이 장을 보러 일부러 기지 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데카는 평균적으로 미군 기지 반경 20마일(약 32km) 안에 이용 자격이 있는 가구가 350만 가구 있고, 이 중 170만 가구가 정기적으로 이용한다고 집계했습니다.
진행자) 누구나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건 아니죠?
기자) 물론 아닙니다. 유효한 군인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현역 군인과 가족, 주방위군·예비군, 은퇴한 군인과 가족이 기본 대상입니다. 해당자들에게 신분증이 발급되거든요. 점점 이용 자격이 넓어져서 군 복무 중 장애를 얻은 제대군인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전쟁부 소속 민간인 직원(군무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인데요. 미국 본토와 해외 미군 주둔지의 일부 매장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해외 미군 주둔지에도 커미서리가 있군요, 한국에서도 매장을 운영하나요?
기자) 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칠곡의 캠프 캐럴, 대구의 캠프 워커 등에 있고요, 오산 공군기지에도 있습니다. 캠프 험프리스 매장은 데카가 선정하는 최우수 매장으로 2021년과 2023년에 뽑혔습니다. 해외 매장은 현지 사정에 맞는 제한이 적용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규모에 따라 월 구매량 한도를 두고 있습니다. 과거, 주한미군 커미서리에서 대량 구매한 상품을 재판매하는 일이 빈번했거든요. 매장 크기에 따라 취급하는 품목 수도 다릅니다. 작은 매장은 큰 매장에서 물품을 옮겨 와서 요청에 맞추기도 합니다. 피엑스와 커미서리를 합친 복합 매장도 있고요.
진행자) 미군 당국이 해외에서도 매장을 둘 정도로, 커미서리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뭡니까?
기자) 미군 당국은 커미서리를 단순한 염가 식료품점이 아니라, 장병들의 복무 여건을 유지하는 복지 혜택의 중요 구성요인으로 봅니다. 군인들의 이동이 잦고, 해외나 외진 기지에서는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마지막으로, 앞서 전해드린 냉동고 고장 사건과 연결해서 오늘 이야기 정리해 주시죠.
기자) 커미서리는 미군 장병과 가족들이 장을 보는 일상 생활 시설입니다. 그런 만큼 냉동·냉장 설비가 멈추면 곧바로 식품 폐기와 불편으로 이어집니다. 펜타곤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조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해킹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미군 기지 내 마트인 커미서리 여러 곳에서 냉동설비가 잇따라 고장나 당국이 사이버 공격을 염두에 두고 조사한다는 이야기 전해드리면서, 커미서리가 미군 장병과 가족들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까지 살펴봤습니다.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 오종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