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인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미국, 미국 속으로 시간입니다. 김정우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 네. 안녕하십니까?
진행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알아볼까요?
기자) 10월 15일은 미국의 ‘흰 지팡이의 날’, 영어로는 ‘화이트 케인 세이프티 데이(White Cane Safety Day)’입니다. 오늘은 이 흰 지팡이의 날에 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진행자) 흰 지팡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을 때 사용하는 도구죠?
기자) 맞습니다. 흰 지팡이는 길을 걸을 때 장애물이나 턱, 계단의 시작과 끝, 바닥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지팡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앞쪽의 위험을 확인하고, 동시에 주변 사람과 운전자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도 합니다. 다만 모든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내견을 동반하거나 남아 있는 시력을 활용하고, 여러 이동 보조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지팡이가 왜 흰색일까요?
기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운색의 지팡이보다 보행자나 운전자가 알아보기 쉽고, 시각장애인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줍니다. 지팡이 끝부분이나 몸체에 붉은색 또는 반사 소재가 들어간 제품도 있습니다.
진행자) 이날은 어떤 취지로 만든 날인가요?
기자) 네. 이날은 흰 지팡이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하게 길을 다닐 권리를 알리고, 무엇보다 장애인 스스로 일상을 결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돕자는 행사보다 자립과 평등을 강조하는 기념일로 소개됩니다.
진행자) 미국에서는 언제부터 이날을 기념했습니까?
기자) 네.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10월 6일 미 의회가 대통령에게 매년 10월 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선포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 결의안을 승인했습니다. 이어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공식 선언문을 발표했고, 10월 15일을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흰 지팡이가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이동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설명하면서, 특히 운전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처음에는 교통안전이 중심이었던 셈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선언문은 도로와 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시민과 운전자가 배려해야 한다는 데 큰 비중을 뒀습니다. 학교와 시민단체, 언론에도 흰 지팡이의 의미를 널리 알리는 행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각장애인을 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스스로 이동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는 시민으로 인정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진행자) 미국 사람들은 운전할 때 흰 지팡이를 든 사람이 거리를 건너면 어떻게 합니까?
기자) 네. 우선 속도를 줄이고 충분한 거리를 두면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합니다. 건널목에서 갑자기 앞으로 진입하거나 경적을 울려 재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구체적인 운전자 의무와 위반 시 처벌은 주마다 다릅니다. 흰 지팡이를 들었다고 해서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인 통행 우선권이 생긴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신호와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진행자) 보행자로서는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까요?
기자) 네. 무조건 팔을 붙잡거나 지팡이를 잡아당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안내하면 좋을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길을 알려줄 때도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손짓하기보다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정도 가면 문이 있습니다’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는 편이 유용합니다. 그런데 장애인 당사자가 거절하면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선의로 하는 행동이라도 상대방의 이동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직장에서는 어떤 배려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기자) 예를 들어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 주는 스크린리더, 화면 확대 소프트웨어, 점자 표시장치, 접근할 수 있는 전자문서 등이 있습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시각장애인이 업무의 필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문제를 안내하고 있는데요. 핵심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을 미리 판단하지 않고, 어떤 도구나 환경을 갖추면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진행자) 시각장애인의 일상에서 정보 접근도 중요하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식당 메뉴를 스마트폰으로 읽거나 버스 도착 정보를 음성으로 확인하고, 웹사이트에서 예약이나 결제를 하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는 평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지에 설명이 없거나, 웹사이트가 키보드로 조작되지 않거나, 버튼에 읽을 수 있는 이름이 없으면 시각장애인은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요즘 접근성은 경사로 같은 물리적 시설뿐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진행자) 학교나 공공시설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기자) 미국의 장애인 권리 정책은 교육, 대중교통, 공공건물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필요한 경우 점자나 보조공학, 적절한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공공기관과 교통시설에서는 안내표지, 음성정보,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등을 통해 이용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다만 지역과 기관에 따라 실제 접근성 수준에는 차이가 있어 법적 권리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불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행자) 미국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네. 큰 흐름에서는 동정이나 보호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관점으로 이동해 왔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장애인의 생활을 대신 결정해 주는 방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반면 오늘날 장애인 권리 운동은 장애인과 관련된 결정에서 당사자를 배제하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물론 일상에서는 여전히 편견이나 과잉보호, 접근성 부족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어 제도와 실제 인식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흰 지팡이의 날에 특별한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까?
기자) 네. 지역별 시각장애인 단체나 학교, 재활 기관에서 흰 지팡이 사용법을 알리는 행사, 안전한 보행에 관한 교육, 당사자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 등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행사 방식과 일정은 다릅니다. 이런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비장애인이 잠깐 눈을 가리고 걷는 체험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시각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일상에서 어떤 장벽을 없애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흰 지팡이의 날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날은 아니겠군요.
기자) 맞습니다. 도로를 설계하는 사람, 버스와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 채용 담당자, 웹사이트 개발자,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시민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고 필요한 정보를 얻으며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흰 지팡이는 그 변화가 필요한 곳을 보여 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은 미국의 흰 지팡이의 날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