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북한 우라늄 시설 확인에 미 국무부 “당혹”…비밀해제 문서 통해 드러나

지난 2010년 12월 성 김 당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서울의 한국 외교부를 방문했다.

미국 정부가 2010년 북한 영변에 고농축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당혹스러워 한 정황이 당시 국무부 인사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미국의 전직 관리는 의구심만이 있던 북한의 농축 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미 스탠포드대 교수가 지난 2011년 9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 핵 문제 관련 연설을 했다.

2010년 11월, 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당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와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수신인으로 한 이메일을 한 통 보냅니다.

비밀해제 외교문서들에 대한 국무부 ‘정보공개’ 웹사이트에 올라온 이 이메일에 따르면, 해커 박사는 북한 방문을 막 끝마치고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면서, ‘충격(shocker)’이라는 단어와 함께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습니다.

북한이 자신을 영변으로 데려가 작동 중인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2천 개와, 공사 중인 작은 경수로를 보여줬다는 겁니다.

이 내용을 확인한 성 김 수석대표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북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국무부와 백악관 인사들에게 “월요일에 시그(해커 박사)가 돌아오면 세부 내용을 더 얻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 이메일을 전달했습니다.

이메일 수신인은 커트 캠벨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제이크 설리번 국무장관 부비서실장,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대니얼 러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었습니다.

이후 이 이메일은 설리번 부비서실장에 의해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이메일 답변을 통해 드러난 클린턴 전 장관의 첫 반응은 “매우 불편하다(Very disturbing)”였습니다.

그러면서, 해커 박사가 워싱턴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그 해 11월22일과 23일을 언급하면서, 아마도 클린턴 전 장관 자신은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관련 사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009년 11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베이징에서 중국 당국자들과 회담했다.

이 이메일 교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자신에게 누군가 전화를 할 것이냐고 묻기도 했는데, 이에 설리번 부비서실장은 곧바로 “지금 연락을 하려 한다”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다음날 새벽 2시33분 ‘북한’이 제목으로 들어간 첨부문서가 담긴 이메일을 전달받은 직후, 이 문서를 인쇄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존재가 확인된 직후 클린턴 당시 장관을 비롯한 국무부 관계자들이 얼마나 이 사안을 중대하게 받아들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북한은 당시까지만 해도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생산 능력만이 알려졌을 뿐,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해선 의혹만 제기된 상태였습니다.

북한은 2002년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외부 인사가 관련 시설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건 해커 박사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라늄 농축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달리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한데다 연기나 냄새가 나지 않아 은폐와 이동이 쉬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이메일이 전달되기 직전까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는 1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의혹만이 제기돼 왔던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힐 전 대표] “We knew, with 100% certainty that Plutonium plant was operating…”

미국은 북한이 플루토늄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점을 100퍼센트 확신했지만,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선 의심만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라늄 농축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단계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명백히 우라늄 농축에 진전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부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고, 힐 전 대표는 밝혔습니다.

[녹취: 힐 전 대표] “It was disturbing that they had apparently progress in…”

다만 힐 전 대표는 당시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실제로 가동하는지, 또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는지 여부 등은 당시로선 알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힐 전 대표는 미국 정부가 우라늄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닫고자 했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의구심만 있는 우라늄에 집중하면서 자칫 틀림없이 존재하는 플루토늄에 대한 논의를 접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일정 시한이 지난 외교문서와 국무부 내 이메일 교신 등을 ‘정보공개’ 형식으로 자체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해당 웹사이트에 대거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경우 재직 시절 국무부 공식 이메일이 아닌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상당수 이메일 교신 내용에 대해 비밀해제 조치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