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 총비서 대리인 제1비서' 신설…전문가 "2인자 직책 공식화 이례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9일 평양에서 열린 6차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연설했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에 이은 2인자 직책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제1비서’ 자리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령제라는 일인지배구조를 견지해 온 북한에서 이례적 조치지만 통치구조의 본질적 변화는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VOA’가 2일 입수한 새 북한 노동당 규약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당 총비서 바로 다음 가는 직책인 ‘제1비서’ 자리를 신설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제1비서와 비서를 선거한다”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또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북한에선 그동안 사실상 권력서열 2위로 평가되는 인물들은 있었지만 2인자 자리로 여겨질 수 있는 당내 직책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입니다.

제1비서직은 김정은 총비서가 2012년 아버지인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면서 2016년까지 4년 동안 사용했던 직책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수령제라는 북한 특유의 일인영도체제를 감안할 때 제1비서직 신설은 이례적인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홍민 박사는 그러나 이 조치가 북한 권력구조의 본질적인 변화와는 무관하다고 봤습니다.

홍민 박사는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당 중심 국가를 표방하고 있고 이번 조치는 그 연장선상에서 통치 안정성 차원에서 김 총비서의 부재시 대리인 역할 또는 업무 부담 줄이기 차원으로 여겨진다고 말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정은식 위임통치의 일환이라고 분석하고, 후계체제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하기엔 김 총비서 나이가 아직 3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할 때 과도한 추측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과거 김정일의 경우엔 수많은 결재 문건들을 일일이 검토하느라 당원 그리고 대중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은 이런 김정일의 정책결정 스타일과는 차별화를 해서 업무부담을 줄이고 대신 본인이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대중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가지려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8차 당 대회 핵심은 당 국가 대표성과 김 총비서의 유일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데 있었다며 당시 김 총비서에 대한 존칭을 ‘위대한 수반’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제1비서직 신설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전제조항을 뭘 달았느냐 하면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이렇게 달았거든요. 그리고 해설조항에 ‘당 수반의 혁명영도를 더욱 원만히 보좌하기 위해서’ 이런 전제조건을 달았습니다. 당 수반이라는. 그러니까 당면한 기본적인 목적은 김정은의 당 대표성과 관련한 유일영도체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 조치다, 이렇게 평가할 수가 있겠고.”

아직 북한 매체 등에서 당 제1비서 직함이 등장하지 않고 있어 자리를 만든 이후 실제 임명 여부나 임명이 됐다면 누가 됐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임명이 됐다면 김 총비서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입니다.

정성장 센터장입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제1비서는 비서들 중에서 가장 높은 2인자 직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 중앙위 비서들은 현재 노동당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위원을 맡고 있는데 비서들 중 가장 높은 직책에 있는 인물이 조용원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이죠. 그래서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를 만약 임명했다면 그것은 조용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북한엔 7명의 당 비서와 5명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있고 이를 겸하고 있는 인물은 조용원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조용원은 지난달 7일 세포비서대회 2일차 회의를 다른 비서들과 함께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세포비서대회를 지도할 당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면 머리기사 사진으로 조용원을 부각시키는 매우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며 제1비서 임명설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황 교수는 다만 ‘노동신문’이 당시 조용원을 조직비서로 소개했다며 이는 북한이 제1비서직 신설 이후에도 주민들과 대외에 공개하는 데 신중한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북한 사람들이 그동안 이런 식의 권력 개편 과정들을 움직이는 패턴을 보면 지금 만들어진 새로운 체계가 어떻게 작동할지 과연 내부적으로 다른 반발들은 없을지 등을 판단해 보고 나서 공개하고 공식화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죠.”

또 다른 유력 인물로 김 총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거론되지만 당내 직책이 너무 낮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가 대부분입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김 부부장이 지난 8차 당 대회에서 직책이 당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낮아졌고 정치국 후보위원 조차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당 중앙위 비서직에 선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직책과 달리 백두혈통 실세라는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김 부부장이 이 자리에 앉을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나옵니다.

한편 개정 당 규약에선 서문에 있던 적화통일 관련 내용도 수정됐습니다.

당의 당면목적에 대해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다”고 돼 있던 문구가 “전국적인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된 겁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폐기하고 남북한 두 개 국가의 공존을 지향하는 새로운 노선을 채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홍민 박사는 그러나 북한 정권의 정통성 차원에서 통일노선을 공식 폐기하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공식적인 것은 통일 역량이나 통일 사업은 북한의 당적 사업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지금까지 자기들이 설득했던 통치 운영논리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개념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큰 조정작업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요.”

다만 실제 정책운영 방향에선 엄청나게 벌어진 한국과의 국력 차이 등 현실을 인정해 다소 수세적이고 공존 중심으로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