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직 관리들 "'원전 의혹', 북핵 협상 위험성 보여줘"

북한은 지난 2016년 1월 수소탄 핵실험에 성공했다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었다.

북한과의 협상에 관여했던 전 미 고위 관리들은 한국 정치권에서 제기된 ‘북한 원전 의혹’과 관련해, 추진 의도에 의구심을 제기하면서도 관련 문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미국과 유엔이 주목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는 우려와 함께 장기적 선택지의 초안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는 논란에 워싱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은 과거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해 에너지 지원 등 각종 유인책을 테이블 위에 올렸던 전직 외교 당국자들입니다.

전 국무부 외교 관리들은 북한의 합의 위반으로 오래 전 용도 폐기된 원자로 제공안이 ‘원전건설 추진방안’으로 다시 문건화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업 추진 경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VOA에 “북한 원전 건설 보도와 주장을 접하고 매우 놀랐다”며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 was stunned to read the story and to hear of the allegations, which are quite serious.”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지 않겠다”면서도 이미 정당성을 잃은 유인책이 북핵 문제가 오히려 악화한 상황에서 재등장한 데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은 북한 정권에 어떤 형태로든 원자력을 제공할 근거를 허물어트렸다”며 “어떤 가용한 기술을 이용해서라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너무나 분명해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 “North Korea's first test of a nuclear weapon in 2006 destroyed any rationale for providing the regime with nuclear power in any form, especially since it was now manifestly clear that Pyongyang's intention was to develop nuclear weapons using all available technologies.”

이어 “우리는 그때부터 명백히 핵무기 기술 증진에 열중하고 있는 핵무장국 북한을 상대해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자 그런 지위를 유지하려는 북한 정권에 누군가 핵 관련 에너지 지원을 제공하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 “Since that time, we have been dealing with a nuclear-armed North Korea that is clearly bent on enhancing its nuclear weapons capability. In that context, the idea that anyone would seek to provide nuclear-related energy assistance to a North Korean regime that is and intends to remain a de facto nuclear weapons state completely defies comprehension.”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 사건을 면밀히 살펴볼 것으로 확신한다”며, “한국의 어떤 정부라도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북한에 원자로를 건설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사를 통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 “I am confident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cluding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nd the United States, will be following the developments of this new case very closely. It's hard to imagine that any Korean government would be prepared to build a nuclear reactor in North Korea under the circumstances that exist today. I hope that the investigation will show that this is not what happened.”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이듬해 제네바합의로 봉합한 뒤 북한에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는 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전 국무부 협상가들은 북한에 원전을 지원할 여건이 아니라면서도 한국 정부의 의도에 대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제네바합의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아 북한과 협상을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는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의 장점이 무엇이든, 그런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데 어떤 장점이 있다고 믿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Whatever the virtues of building a nuclear plant in North Korea may be, I find it hard to believe that there would be any virtue in pursuing it secretly.”

갈루치 전 특사는 “나의 견해는 역사로 인해 ‘오명’을 얻었음을 상기시키겠다”고 전제한 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의 협상가로서, 나는 북한이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를 얻도록 돕는 게 좋은 생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I have to remind you that my views are inevitably "tainted" by history: as a negotiator of the Agreed Framework of 1994 with the DPRK, you must know that I think that there are circumstances under which helping the North acquire nuclear energy for peaceful purposes can be a good idea.”

다만 “지금이 북한의 원전 획득을 지원할 좋은 시기인지 아닌지는 상황에 달려있고, 현재로서 그 상황은 분명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Whether or not now is the time to consider helping North Korea acquire a nuclear power plant depends on the circumstances, circumstances which have not been made clear.”

1997년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경수로 건설을 시작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미국 측 수석협상가를 지낸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리스 전 실장은 “이번 논란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며 원전 건설 추진은 애초에 극비로 추진할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My first reaction is that everyone should take a giant breath and not overreact to this story. How could this plan be kept secret for very long? It would need significant funding. It would need significant manpower. It would be impossible to keep secret for any extended period. It would need to be publicly blessed by the legislature at some point.”

“상당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며 어느 시점에는 공개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안을 장기간 비밀리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남북 간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이 계획에 탄력이 붙을 때를 대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한 비상 계획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One interpretation was that this was contingency planning being conducted by a Ministry in the event that this idea gained traction in North-South talks.

하지만 리스 실장은 김정은 정권의 존재 자체를 협상의 장애물로 규정하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북한과의 합의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번 논란으로 더욱 분명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원전 건설 논란은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얼마나 복잡하고,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인책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려는 협상을 우리 스스로와 벌일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입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It underscores the political, economic and military complexities of conducting any serious negotiations with the North and the risk that we often seem to be negotiating with ourselves to sweeten the incentives for NK to reach agreement. It also, in an indirect way, illustrates just how preposterous reaching any agreement with NK is as long as the current regime remains in power.”

또한 “현 북한 정권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북한과의 합의 도출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연락창구인 ‘뉴욕채널’ 등을 통해 북한 외교 당국자들과 핵·미사일 관련 협의를 주도하며 한때 ‘대화파’로 분류됐던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도 북한과의 협상은 어떤 보상책을 내걸어도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 collapse of the October 1994 Agreed Framework ended the original plan to build a pair of light-water nuclear reactors to provide North Korea with electric power as part of an understanding that would have shut down its graphite-moderated 5-megawatt nuclear reactor that was producing fissile material that could be used for nuclear weapons. The Agreed Framework collapsed because North Korea was surreptitiously developing nuclear weapons by enriching uranium, and because Pyongyang would not allow the international inspections and monitoring necessary to verify that the regime was not developing nuclear weapons.”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1994년 10월 체결됐던 제네바합의가 파기되면서 핵원료 공급원인 기존 5MW 흑연감속로를 대체할 경수로 2기를 짓는 계획이 중단된 것”이라며 “제네바합의가 파기된 것은 북한이 몰래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 개발 여부 검증에 필수인 국제 사찰단과 감시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