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정원 "북한, 미한연합훈련 중단 시 남북관계 상응 조치 의향"…전문가 "등가성 원칙에 안 맞는 요구"

북한에서 '전승절'로 기념하는 26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우의탑을 찾아 헌화했다고, 관영매체들이 전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미-한 연합훈련 중단 촉구 담화에 대해 연합훈련 중단 시 남북관계에서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입장은 등가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미-한 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한 담화를 낸 데 대해 “북한이 근본 문제로 규정한 미-한 연합훈련에 대한 선결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며 “미-한이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 상응 조치 의향을 표출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원이 이같이 보고하면서 “북한은 미-한 간 협의와 대응을 예의주시하며 다음 행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전했습니다.

김병기 의원은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북한의 군대와 정부가 연합훈련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미뤄 군사, 비군사적 상응조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국정원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정보위 보고에서 “미-한 연합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 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등가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초 북한의 통신선 차단이 한국 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 시행으로 통신선 복원에 상응한 조치는 이미 한 셈이라는 주장입니다.

신 센터장은 그러면서 북한의 추가 상응조치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균형을 잃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이 남북대화나 화상통화나 또는 고위급 회담 나아가서 정상회담 같은 추가적인 조치에 나올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연합훈련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평가하는데요, 등가성에도 맞지 않고 그러한 북한의 확인되지 않은 의향 때문에 한-미 동맹의 핵심적인 요인을 양보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봐요.”

국정원은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조치에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통신연락선 복원에 호응한 배경에 대해 “지난 4월부터 남북 정상 간 두 차례 친서 교환을 통해 남북 간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의 의지를 확인했고, 판문점 선언 이행 여건을 탐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통신연락선 복원 후 며칠 만에 김 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점으로 미뤄 연합훈련과 연계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시사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게 북한의 노림수일 수 있다고 홍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상태에서 연합훈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 한-미의 결정에 따라서 관계가 개선될 수도,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는, 한-미의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결국은 남북관계든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한-미에 떠넘길 수 있는 명분이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아주 교묘하게 관계 개선과 한-미 연합훈련을 연동시켜서 한-미의 행동을 끌어내거나 한-미의 의지를 실험하는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은 아울러 “지난 5월 미-한 정상회담 이후 미-한 당국 간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 결과를 주시하며 한국 정부가 향후 미-북 관계 재개를 위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북한이 미-북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광물 수출 허용, 정제유 수입 허용, 생필품 수입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생필품에는 평양 상류층 배급용인 고급 양주와 양복도 포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국정원이 북한 측의 대미 협상 재개의 구체적 조건을 언급한 것은 비핵화 협상의 조건을 놓고 한국이 미-북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라며, 남북 간 대화에 비핵화 협상 관련 논의도 함께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김여정 담화나 박지원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를 종합해 보면 북한이 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는 명분상 한-미 군사연습 중단으로 보여지고요, 그러나 실제로는 북-미 대화의 재개이고 그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지금 대북 제재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게 확인이 됐다고 봐야죠.”

국정원은 이와 함께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한국 내 일각에서 제기됐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제안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남북이 판문점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추진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평양에서 주재한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회에서 뒤통수에 패치를 붙이고 있어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데 대해선 “패치는 며칠 만에 제거했고 흉터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벼운 걸음걸이와 깊숙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장면들을 볼 때 건강이상 징후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경제 동향과 관련해선 “올해 곡물 부족 사정이 악화하자 전시비축미를 식량이 끊긴 이른바 ‘절량세대’를 비롯해 기관과 기업소 근로자까지 공급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민감해하는 쌀 등 곡물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7월 중순 이후 지속된 폭염으로 인명과 농축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7월 1일∼9월 10일 사이에 진행되는 북한군 하계훈련을 정상적으로 개시했지만 폭염으로 야외훈련을 최소화하고 피해 복구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은 “북한의 지난해 산업가동률은 석탄 수출 중단, 광산 침수, 원자재 부족 등으로 예년 대비 5%포인트 하락한 25%에 불과했다”며 “상반기 북-중 무역은 6천575만 달러 규모로 지난해와 비교해 84% 급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징후에 대해선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