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19일 군사분계선(MDL) 침범에 대응한 한국군의 조치에 반발하며 대남 확성기방송 재개를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북한은 지난 60여 년 동안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을 벌여 왔습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방송을 중단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됐는데요. 때로는 확성기 방송을 둘러싸고 실제 포격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남북 확성기 방송의 역사와 주요 사건들을 안소영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안 기자, 남북이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게 벌써 60년이 넘었네요?
기자) 네. 확성기 방송은 1962년 북한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한국 국방부 백서와 국방편찬연구소 등에 따르면, 북한이 군사분계선 인근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고 한국을 향해 방송을 내보내자, 한국군도 이듬해인 1963년 5월 1일 서부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냉전 시대였는데요. 남북 모두 자기 체제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상대방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한국은 북한군 장병들에게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자유로운 생활상을 소개했고요. 북한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부각하거나 북한 체제를 선전했습니다. 뉴스와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 군인들의 생각과 사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심리전이었습니다. 특히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는 군인들은 방송을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1962년 방송을 시작하고 계속 그랬던 건 아니죠? 방송을 중단하고 재개하기를 거듭했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첫 번째 큰 변화는 1972년에 있었습니다. 그해 7월 남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북은 같은 해 11월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1980년 9월 4일 북한이 먼저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한국군도 나흘 뒤인 9월 8일 다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약 8년 만에 군사분계선에서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이 부활한 겁니다. 이후 20년 넘게 남북은 확성기뿐 아니라 대형 선전 전광판과 전단까지 동원해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다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다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됐고,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중요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군사분계선 일대의 선전 활동을 중단하고 선전 수단을 철거하기로 한 겁니다. 이에 따라 남북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관련 시설을 철거했습니다. 남북이 단순히 방송을 잠시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전 시설까지 없애기로 합의한 사례로 평가됐습니다.
진행자) 2004년에는 확성기까지 철거했는데, 2010년에 또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는데 계기가 뭐였을까요?
기자) 네. 여기서는 라디오 방송과 확성기 방송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정부는 같은 해 5월 24일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했죠. 이른바 '5·24 조치'인데요. 한국군은 이에 따라 대북 심리전 라디오인 '자유의 소리'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또 군사분계선 일대에 철거했던 확성기 시설도 다시 설치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확성기 방송 자체를 재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다시 시작된 것은 2015년 8월, 그러니까 11년 만이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 사건입니다. 당시 한국군 부사관 2명이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발목과 두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당했고, 이에 따라 한국군은 8월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확성기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실제 무력 충돌로 이어지게 됩니다.
진행자) 확성기 방송을 둘러싸고 남북이 실제 포격을 주고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자) 네. 2015년 8월 20일 서부전선에서 발생한 포격 사건입니다. 한국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열흘 만이었는데요. 북한군은 경기도 연천군 일대 한국군 진지를 향해 포격했고, 한국군도 155밀리미터 자주포로 29발의 대응사격을 했습니다. 북한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며 48시간 시한을 제시했고, 준전시상태까지 선포했습니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남북은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나흘간의 협상 끝에 8월 25일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북한은 지뢰 폭발로 한국군 장병들이 다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한국은 이날 정오부터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북한도 준전시상태를 해제했습니다. 그런데 이 합의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한국군은 이틀 뒤인 1월 8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불과 넉 달여 만에 확성기 심리전이 재개된 겁니다.
진행자) 그러다가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성기 방송이 다시 중단됐는데,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기자) 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이후 판문점 선언에 따라 확성기 시설도 철거했습니다. 하지만 6년 뒤인 2024년 6월, 북한이 오물 풍선을 잇달아 보내자 한국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지역에서만 방송하다가 7월 21일부터 전 전선으로 확대했습니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맞대응했는데, 과거와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체제 선전이나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 대신 쇠를 긁는 듯한 소리와 늑대 울음소리 등 기괴한 소음을 장시간 내보낸 겁니다. 특히 인천 강화도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밤낮없이 이어지는 소음으로 수면 장애 등 심각한 생활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남북 간 확성기 심리전이 군사적 대치를 넘어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까지 위협하게 된 겁니다.
진행자) 지난해에는 남북이 또다시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죠. 이렇게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기자) 네. 지난해 6월 한국군은 남북 간 신뢰 회복과 접경지역 긴장 완화를 위해 6월 11일 오후 2시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습니다.그러자 북한도 다음 날인 6월 12일부터 대남 소음방송을 중단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오랜 소음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지난 60여 년 동안 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 다시 시작되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중단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특히 2004년과 2018년에는 남북이 방송을 중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까지 철거했지만, 이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다시 설치됐습니다. 2015년에는 확성기 방송을 둘러싼 갈등이 실제 포격 사건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확성기는 단순한 방송 장비가 아니라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실제로 대남 방송을 재개할 경우, 지난해 6월 남북이 서로 방송을 중단하면서 마련됐던 긴장 완화 조치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진행자) 네, 남북 관계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온 확성기 방송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