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혁신,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 오늘은 '미국을 변화시킨 혁신' 시간입니다. 조상진 기자와 함께합니다. 조 기자, 오늘은 어떤 혁신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기자) 오늘은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해 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 달려봤을 도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파란색과 빨간색 방패 모양 표지판에 I-95, I-66, I-10처럼 번호가 붙어 있는 도로, 바로 미국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인데요. 올해가 이 고속도로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꼭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국 동서남북을 하나의 도로망으로 연결하면서 사람과 물품이 이동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도시와 교외의 모습, 여행과 소비문화까지 바꿔놓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공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그전에도 미국에 고속도로는 있었는데요.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는 뭐가 달랐던 겁니까?
기자) 네, 인터스테이트, 주와 주를 잇는다는 뜻인데요. 이전에도 미국에는 주와 도시를 잇는 도로가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루트 66(Route 66)' 같은 도로였습니다. 하지만 도로마다 상태가 제각각이었고, 도시를 지나면서 신호등과 교차로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주로 넘어가게 되면 도로 체계나 규격도 전부 달라지기 일쑤였죠. 인터스테이트의 핵심은 이런 도로들을 단순히 이어붙이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정한 기준을 갖춘 고속도로망으로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호등 없이 장거리를 달리고, 출입구를 통해서만 차량이 드나들도록 만들어 사람과 물자의 장거리 이동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든 겁니다.
진행자) 이 인터스테이트를 만든 대통령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하던데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속도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젊은 육군 장교였던 아이젠하워는 미군 최초의 대륙횡단 자동차 수송대에 참가했습니다. 수도 워싱턴 D.C.에서 출발해 서부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 대륙을 자동차로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는데요. 당시 미국의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중간에 차량이 진흙에 빠지기도 하고 장비가 고장 나는 등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약 두 달이나 걸린 이 경험을 통해 아이젠하워는 제대로 된 전국 도로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진행자)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고속도로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도시와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는 넓은 고속도로망이 군대와 물자를 이동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본 건데요. 아이젠하워는 훗날 1919년의 미군 수송대 경험이 좋은 도로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했다면, 독일에서의 경험은 미국에도 훨씬 넓고 체계적인 고속도로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대통령이 된 뒤 실제로 그 구상을 현실로 옮긴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6년 6월 29일 '연방지원고속도로법(Federal-Aid Highway Act)'에 서명했습니다. 당시 계획은 미국 전역에 약 6만6천km(4만1천mi)의 인터스테이트를 건설하는 것이었는데요. 특히 연방정부가 건설비의 90%를 부담하도록 하면서 전국적인 건설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휘발유세 등을 재원으로 하는 고속도로 신탁기금도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공공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진행자) 그런데 정식 명칭을 보면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s', 그러니까 '방위'라는 말도 들어가잖아요.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단순히 여행을 편하게 하려는 도로만은 아니었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가안보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병력과 군수물자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고, 핵 공격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도시 주민을 대피시키는 데 활용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1956년 법은 정식 명칭에도 'Defense', 즉 방위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다만 인터스테이트 계획 자체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고, 이미 1940년대부터 연방 차원의 전국 도로망 구상이 있었습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대규모 재원과 제도를 마련하면서 실제 건설을 본격화한 겁니다.
진행자) 이렇게 전국을 고속도로로 연결하니까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역시 이동 시간이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단순히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물류였습니다. 트럭이 도시와 도시를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오갈 수 있게 되면서 공장에서 만든 제품과 농장에서 생산한 식품을 먼 지역까지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 있게 됐는데요. 미국 연방고속도로관리청(FHWA)은 오늘날 우리가 사고 사용하는 거의 모든 상품이 소비자에게 오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고속도로와 트럭 운송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을 하나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연결하는 동맥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진행자) 미국의 자동차 문화라고 하면 또 ‘로드트립(road trip)’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가 이런 문화에도 영향을 줬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훨씬 편리해지면서 미국의 '로드트립' 문화가 더욱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따라 주유소와 숙박을 할 수 있는 모텔, 식당 같은 시설도 발달했는데요. 자동차 여행객을 상대로 한 이런 도로변 산업은 인터스테이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국적인 고속도로망이 확장되고 자동차 이동이 늘면서 더욱 큰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느 주를 가든 고속도로 출구 주변에서 비슷한 주유소와 숙박시설, 식당을 만나는 지금의 미국 풍경도 이런 자동차 중심 문화의 성장과 연결돼 있습니다.
진행자) 도시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고속도로가 도심과 외곽 지역을 빠르게 연결하면서 직장은 도시에 두고 집은 교외에 마련하는 생활이 더 쉬워졌습니다. 전후 미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던 교외화가 고속도로 확장과 맞물리면서 더욱 힘을 받았는데요. 새로운 주택단지와 쇼핑시설, 사무공간이 도시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국 대도시권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고속도로가 단순히 기존 도시들을 연결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고 일하고 소비하는지에도 영향을 준 겁니다.
진행자) 처음 생긴 지 올해로 딱 70주년이 됐는데, 지금도 인터스테이트는 미국의 핵심 교통망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026년은 미국 건국 250주년이면서 인터스테이트 시스템이 생긴 지 70년이 되는 해이고요. 또 공교롭게도 미국 자동차 여행의 상징인 루트 66도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연방고속도로관리청은 올해를 맞아 인터스테이트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고 있는데요. 70년 전에는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면, 지금은 노후화된 도로와 교량을 어떻게 보수하고, 늘어난 교통량과 앞으로의 이동 방식에 맞게 이 거대한 시스템을 어떻게 발전시킬지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의 지도를 넘어 미국인의 생활 방식까지 바꿔놓은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70년 이야기, 조상진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