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혁신과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다양한 미국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김철한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기자: 이번 주 미국 전역이 주황색 호박 등으로 물드는 축제, 바로 핼러윈 소식입니다. 핼러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죠? 아이들이 마녀나 유령 등의 분장을 하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외치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입니다.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라는 뜻인데요. 이때 집집마다 사탕과 초콜릿을 쌓아놓고 나눠주는 게 오랜 전통인데, 최근 미국 마트와 가정집의 사탕 바구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어떻게 변했다는 건가요?
기자: 네, 마트 매대에서 설탕이 듬뿍 든 전통적인 초콜릿이나 끈적한 젤리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전미소매협회(NRF)나 PwC 같은 조사 기관들의 발표를 보면, 전체적인 핼러윈 축제 소비 규모는 여전한데, 정작 사람들이 고르는 물건이 달라졌습니다. 설탕을 쏙 뺀 무설탕 간식, 식물성 재료로 만든 웰빙 과자, 그리고 파티용 무알코올 기능성 음료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달콤한 축제가 아니라 이른바 '날씬하고 건강한 핼러윈'이 대세가 된 거죠.
진행자: 축제 때만큼은 단것을 마음껏 먹는 것도 즐거움인데, 미국인들이 갑자기 이렇게 단 음식을 거부하게 된 진짜 이유가 뭔가요?
기자: 요즘 미국을 통째로 흔들고 있는 건강 현상 때문입니다. 바로 '오젬픽'이나 '위고비' 같은 GLP-1 계열의 다이어트와 비만치료제 열풍입니다. 현재 미국 성인들 사이에서 이 치료제를 맞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요. 이 주사를 맞으면 식욕이 억제되고 당기는 음식이 바뀝니다. 실제로 이 비만 치료를 받는 가정의 가을철 군것질 지출을 조사해 봤더니,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같은 이른바 '정크푸드' 구매량이 예전보다 두 자릿수 이상 떨어졌습니다. 약이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고, 그게 핼러윈 풍경까지 바꾸고 있는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허쉬(Hershey's)나 마스(Mars) 같은 미국의 내로라하는 거대 초콜릿 회사들은 비상이 걸렸겠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이에 맞춰 초콜릿 대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변신에 나섰습니다. 예를 들어 허쉬 같은 회사는 단맛 중심의 초콜릿 대신, 요즘 추세에 맞춰 팝콘이나 프레첼 같은, 짭짤하고 담백한 과자 라인업을 대폭 늘렸습니다. 또 한입 크기로 작게 포장한 묶음 상품을 대량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에 제품을 맞춰 나가고 있는 거죠.
진행자: 제과 회사들의 눈치 싸움이 대단하군요. 마트나 유통업체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어요. 현장에서는 물건을 어떻게 팔고 있습니까?
기자: 판매 전략에 부심하는 건 유통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미국 대형 할인점들은 동네마다 다이어트를 하는 인구 비율이나 요일별 판매 데이터를 컴퓨터로 정밀 분석합니다. "이 동네는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네?" 싶으면 매대 앞자리에 무설탕 과자나 비건 스낵을 눈에 띄게 배치하는 식이죠. 스마트폰 앱이나 SNS를 통해 "올해 핼러윈은 살 안 찌는 간식으로 준비하세요"라며 맞춤형 추천을 띄우는 마케팅이 대세입니다.
진행자: 먹는 것뿐만 아니라 핼러윈의 또 다른 재미가 바로 분장과 의상인데, 이 복장 시장도 건강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먹는 걸 건강하게 바꾸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는 것에 관한 생각도 바뀐 건데요. 예전에는 핼러윈 하루 입고 버리는 플라스틱 재질의 저렴한 의상을 많이 샀잖아요. 요즘은 그런 일회용 의상 지출은 주는 추세입니다. 대신 재활용이 가능한 천연 유기농 섬유로 만든 옷을 고르거나, 동네 구제 옷 가게, 중고 시장에서 나만의 빈티지 의상을 직접 조합해 입는 게 유행입니다. 내 몸의 건강을 챙기는 마음이 지구의 건강을 챙기는 환경 보호 문화로 연결된 셈입니다.
진행자: 올해 핼러윈은 마녀나 유령보다 '칼로리'가 제일 무서운 존재가 된 것 같네요. 앞으로 이 추세는 어떻게 이어질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다이어트 열풍이 멈추지 않는 한, 내년 핼러윈에는 '무설탕 호박 젤리'나 '단백질 셰이크 초콜릿'이 대세를 넘어 필수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네, 김철한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