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미국을 하나로 연결하다…미국 250년 역사 속 대륙횡단철도

팜스프링스 사막 지대를 지나가는 유니온 퍼시픽(Union Pacific) 화물 열차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기자: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혁신 가운데 하나인 ‘대륙횡단철도’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비행기로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철도가 없던 시절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동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869년, 미국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설되던 철도가 마침내 하나로 연결된 건데요. 지금의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미국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설된 철도가 연결됐습니다. 그 순간 미국의 철도망이 사실상 대륙을 가로질러 이어졌는데요. 미국 역사에서는 흔히 ‘골든 스파이크’, 즉 ‘황금 못’이라는 말로 철도 연결을 기념한 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시 미국은 지금처럼 철도가 전국에 깔려 있던 것도 아니잖아요. 이 거대한 철도는 누가, 어떻게 건설한 건가요?

기자: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두 철도 회사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철도를 건설했습니다. ‘유니온 패시픽(Union Pacific)’은 지금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서쪽으로, ‘센트럴 패시픽(Central Pacific)’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동쪽으로 철도를 놓았는데요. 결국 두 철도가 유타주에서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특히 서부의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했기 때문에 바위를 폭파하고 터널을 뚫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대형 건설 장비가 있던 시대도 아니어서 수많은 노동자가 직접 곡괭이와 삽, 화약 등을 이용해 산을 파고 철로를 깔았습니다.

진행자: 그 엄청난 공사를 사람이 직접 했다는 건데요. 누가 철도 건설에 참여했습니까?

기자: 수만 명의 노동자가 철도 건설에 투입됐습니다. 특히 ‘센트럴 패시픽(Central Pacific)’의 건설에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은 약 1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철도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중국인 노동자들은 산악 지형을 뚫고 철로를 놓는 위험한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임금과 노동조건에서도 차별을 받았습니다. 철도 건설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남북전쟁 참전용사,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미국을 동쪽과 서쪽으로 연결한 철도는 한 집단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진행자: 그렇게 힘든 공사를 하다 보니 기록적인 속도로 철도를 놓은 경우도 있었다고요?

기자: 네. 놀라운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1869년 4월 28일, ‘센트럴 패시픽(Central Pacific)’의 중국인 노동자 약 400명과 아일랜드계 선로 작업자 8명이 12시간 만에 약 16킬로미터의 선로를 깔았습니다. 당시 하루 동안 놓은 선로로는 기록적인 규모였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철도 건설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그렇게 어렵게 완성된 철도는 미국의 풍경도 바꿔 놓았겠죠?

기자: 네. 철도가 지나가는 곳에는 새로운 마을과 도시가 생겨났고, 기존 도시도 철도역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들이 생산한 곡물이나 가축, 서부에서 생산된 광물 같은 물자를 먼 지역의 시장까지 운반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철도는 사람을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을 넘어 미국의 경제 지도를 바꾸는 역할을 한 겁니다. 특히 철도 노선을 따라 사람들이 서부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정착지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이 서부 지역을 개발하는 데 철도가 중요한 기반시설이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진행자: 철도는 미국의 이동과 경제를 크게 바꿔 놓았는데요. 이렇게 거대한 철도가 건설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도 나타났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철도는 미국의 경제와 이동을 크게 발전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큰 대가도 치렀습니다. 철도 건설과 서부 지역 개발이 확대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과 생활 터전이 침해됐습니다. 철도망이 서부로 확장되면서 정착민과 기업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는 큰 변화와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또 철도 건설 과정에서 들소, 즉 아메리칸 바이슨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서부의 자연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혁신인 동시에, 서부 확장이 가져온 역사적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그렇게 미국을 바꿔놓은 철도의 역사를 지금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기자: 네. 바로 철도가 연결됐던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골든 스파이크 국립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는데요. 당시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된 현장을 보존하고, 철도 건설의 역사와 당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당시 철도 연결식에 사용됐던 증기기관차의 복제품인 ‘주피터(Jupiter)’와 ‘119호(No. 119)’를 볼 수 있습니다. 두 기관차는 1869년 5월 10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서로 마주 섰던 기관차를 재현한 것입니다.

진행자: 지금도 실제 기관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건가요?

기자: 네. 특히 10월 중순부터는 골든 스파이크 국립역사공원의 겨울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하루 세 차례 기관차 정비시설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요. 관람객들은 두 기관차의 복제품을 가까이에서 보고, 19세기 증기기관차를 실제로 운행하기 위해 어떤 관리와 정비가 필요한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오는 10월 9일에는 밤하늘을 관측하는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습니다. 철도가 미국을 연결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별과 행성을 바라보는 겁니다.

진행자: 150년이 넘은 철도의 역사를 지금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롭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대륙횡단철도는 단순히 철로를 하나 연결한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속도를 바꾸고, 도시와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미국의 경제와 사회 지형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돌아보면,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이 광대한 영토를 하나의 경제권과 생활권으로 연결해 나간 대표적인 혁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기차가 미국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미국의 시간이 달라진 순간, 대륙횡단철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조진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