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오늘은 조진우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내용을 준비하셨나요?
기자: 오늘은 미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있죠. 뉴욕항에 우뚝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미국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자유의 여신상은 사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조형물입니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 영어로는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입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자유의 여신상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프랑스와 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습니까?
기자: 양국 정부의 공식 예산이 아니라, 전적으로 양국 시민들의 성금으로 제작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기부금과 자선 행사, 모금 활동을 통해 동상 제작비를 마련했고요. 미국에서는 이 거대한 동상을 세워둘 받침대 건립 자금을 모금해야 했는데요, 초기에 모금이 부진하자 언론인 조셉 퓰리처가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에 모금을 호소하면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성금 등이 모여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왜 프랑스는 미국에 이런 거대한 선물을 주기로 했던 건가요?
기자: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 미국 독립 선언 100주년(1876년)을 기념하고, 미국의 노예제 폐지를 축하함과 동시에 양국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에두아르 르네 드 라불라예가 처음 제안했는데요. 당시 전제군주제 성격이 남아 있던 프랑스 내부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디자인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리가 했습니다.
진행자: 그렇게 프랑스와 미국의 자유와 연대를 상징하게 된 자유의 여신상이 올해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특별한 무대에도 등장했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난 7월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자유의 여신상을 특별한 조명과 음악으로 꾸미는 ‘Liberty Lights’ 행사를 선보였습니다. 프랑스 뉴욕 총영사관과 미국 250주년 기념행사 주최 측이 함께 마련한 것으로, 음악과 조명을 결합한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 140년 뒤에는 다시 미국의 250주년을 축하하는 무대가 된 겁니다. 프랑스와 미국의 오랜 우정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대서양을 건너온 거대한 조각상이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두 나라의 역사와 자유의 가치를 담고 있는 셈이군요.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을 보면 또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고, 한 손에는 횃불, 다른 손에는 책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는데요. 이것들이 각각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자: 하나하나 의미가 있습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횃불은 계몽과 빛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왼손에 들고 있는 석판에는 로마 숫자가 적혀있는데요. 바로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인 1776년 7월4일입니다. 머리 위의 왕관에는 모두 7개의 광선이 뻗어 있는데요. 이 광선은 빛나는 후광을 표현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자유의 여신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상징이 있습니다. 바로 발밑에 있는 끊어진 족쇄와 사슬입니다. 이는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합니다.
진행자: 그런데 화면으로 보면 상당히 커 보이는데요. 실제로 얼마나 큰 겁니까?
기자: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지면에서 횃불 끝까지 높이가 약 93미터입니다. 22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인데요. 동상 자체의 높이만 약 46미터이고, 그 아래 받침대가 약 47미터입니다. 무게도 약 25만4천 킬로그램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조각상은 구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초록색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구리가 공기와 반응하면서 산화돼 지금의 녹색 표면을 갖게 된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이렇게 거대한 동상을 어떻게 프랑스에서 만들어서 미국까지 옮길 수 있었을까요?
기자: 바로 이 부분도 자유의 여신상의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한 덩어리로 만들어 배에 실은 게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동상을 완성한 뒤 여러 부분으로 해체했고, 나무 상자에 담아 배로 미국까지 운반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뒤에는 뉴욕항의 섬에서 다시 조립했습니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 내부에는 거대한 금속 구조물이 들어가 있는데요. 이 내부 구조물을 설계하는 데 프랑스의 유명한 기술자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과 그의 회사가 참여했습니다. 에펠은 훗날 파리의 에펠탑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자유의 여신상은 단순한 조각 작품이 아니라 당시의 건축과 공학 기술이 함께 들어간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자유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여성의 모습으로 만든 겁니까?
기자: 자유의 여신상은 고대 로마의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Libertas)’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서양 미술에서는 자유나 공화국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도 특정한 실제 인물을 그대로 조각한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개념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리고 머리에 쓴 왕관과 손에 든 횃불도 이런 상징성을 강조합니다.
진행자: 밖에서 보는 모습은 익숙한데요. 그럼 자유의 여신상 안쪽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기자: 상당히 독특합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청동상처럼 보이지만, 안쪽에는 철제 구조물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얇은 구리판을 철제 골격에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부에는 일종의 거대한 철제 계단과 통로가 있고, 방문객들은 이 구조를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왕관까지 올라가려면 계단을 직접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요. 거대한 조각상 안에 사람이 들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도 자유의 여신상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진행자: 자유의 여신상 하면 뉴욕항을 오가는 배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특히 유명하죠. 그런데 이곳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요?
기자: 네.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뉴욕항을 통해 들어오면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바로 인근에 있던 엘리스섬은 1892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이민 심사 시설로 사용됐습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이 기간에 1천200만 명이 넘는 이민자가 엘리스섬을 거쳐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먼바다에서 뉴욕항으로 들어오던 이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눈에 띄는 존재가 됐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은 단순한 관광 명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알려졌죠.
기자: 그렇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제막된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뉴욕항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자유와 독립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의 상징이 된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와 미국의 우정, 그리고 자유의 가치를 담은 이 조각상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뉴욕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진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