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메리카 250] 워싱턴이 미국에 준 것들, 250주년 특별전

2024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링컨 파이낸셜 필드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경기 중 워싱턴 커맨더스가 허들을 하고 있다.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워싱턴 D.C. 하면 백악관과 연방의사당, 그러니까 정치의 도시라는 인상이 강한데요. 그런데 미식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작전을 짜는 '허들(huddle)'이 워싱턴에서 나왔다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오늘은 워싱턴이 미국 문화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모은 건국 250주년 특별전, ‘지역 분위기 / 미국의 자부심: 어떻게 D.C.가 미국 문화를 바꿨나(District Vibes / American Pride: How D.C. Changed American Culture)’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행자: 특별전 제목대로라면 워싱턴이 미국 문화에 남긴 것을 모았다는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워싱턴 공공도서관이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인데요. 주 전시장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도서관의 대강당이고, 시내 여러 동네 도서관에서도 관련 전시와 강연, 상영회가 함께 열립니다. 6월 3일에 시작해 9월 27일까지 이어지고 입장료는 없습니다. 기획 의도가 분명한데요. 워싱턴은 연방정부의 도시이기 이전에 여러 동네와 공동체가 모인 곳이고, 176제곱킬로미터(68제곱마일)이라는 좁은 면적 안에서 음악과 과학, 스포츠, 사회 운동에 걸쳐 미국을 바꾼 것들이 나왔다는 겁니다.

진행자: 앞서 말씀하신 미식축구 '허들'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기자: 워싱턴 D.C.에 갤러뎃대학교가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종합대학인데요. 1894년 이 학교 미식축구팀의 쿼터백이었던 폴 허버드가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허버드가 수어로 작전을 지시했는데, 상대가 같은 청각장애인 학교 팀이면 그 수어를 상대 선수들이 그대로 읽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허버드는 선수들에게 자기 주위로 둥글게 모이라고 했습니다. 몸으로 원을 만들어 수어를 가린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 미식축구는 물론이고 농구, 축구 등 여러 스포츠에 퍼진 '허들'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진행자: 필요에서 나온 발명이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청각장애인 공동체에서는 이 이야기를 자부심으로 여깁니다. 허들의 기원을 두고 1920년대 다른 대학들이 자기가 먼저라고 주장한 적도 있지만, 갤러뎃의 사례가 30년 가까이 앞섭니다. 이 학교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요. 경기장 옆에 큰 북을 놓고 두드려, 그 진동으로 공을 넘기는 신호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현대식 혈액은행도 워싱턴에서 시작됐다고요?

기자: 네, 찰스 드루라는 흑인 외과의사 이야기입니다. 드루 박사는 1904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성장했고요. D.C.에 있는 하워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드루 박사는 혈액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연구해 대규모 혈액은행 체계를 만들었는데요. 2차 세계대전 초기 수많은 생명을 구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1942년 군 당국이 흑인의 피와 백인의 피를 따로 보관하라는 방침을 정하자, 드루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적십자사 혈액은행 소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하워드대학교에서 후배 흑인 의사들을 길러냈습니다.

진행자: 음악 쪽은 어떻습니까?

기자: 워싱턴이 낳은 음악가가 많습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듀크 엘링턴이 워싱턴에서 태어났고, 흑인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티스트로 꼽히는 가수 마빈 게이도 1939년 워싱턴 출신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워싱턴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장르인 '고고(go-go)' 음악입니다.

진행자: 고고 음악이 어떤 음악인가요?

기자: 1970년대 중반에 척 브라운이라는 음악가가 만든 장르입니다. 펑크에 라틴 리듬과 타악기를 겹쳐 쌓은 음악인데요. 타악기인 카우벨과 팀발레스가 계속 울리면서 곡과 곡 사이에 끊김 없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공연이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고 해서 '고고'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클럽뿐 아니라 동네 뒷마당에서도 연주됐고, 워싱턴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심장 소리 같은 음악으로 여겨집니다. 척 브라운은 '고고의 대부'로 불립니다.

진행자: 이 음악이 법으로도 다뤄졌다고요?

기자: 흥미로운 사연이 있습니다. 2019년 워싱턴의 한 상점이 오랫동안 가게 앞에서 틀어온 고고 음악을 인근 주민 민원으로 중단하게 됐는데요. 이것이 도시의 변화 속에서 원주민 문화가 밀려난다는 문제로 번졌습니다. '고고를 멈추지 말라'는 운동이 일어나 8만 명 가까이 청원에 서명했고, 결국 2020년 고고를 워싱턴의 공식 음악으로 지정하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고고 박물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올해가 고고 음악이 태어난 지 50년쯤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전시는 어떻게 꾸며져 있습니까?

기자: 사진과 유물, 기록으로 구성돼 있고, 체험 요소가 많습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취 장치가 놓여 있고, 방문객이 자기가 아는 워싱턴 이야기를 직접 녹화해 남길 수 있는 영상 부스도 있습니다. 도서관 측은 앞으로 250년 동안 미국과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 되면 좋겠는지를 적어 보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깃발을 그려 보는 순서도 있고요.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진행자: 워싱턴을 찾는 사람이라면 들러볼 만하겠군요.

기자: 네, 관광객이 주로 찾는 내셔널몰 박물관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연방 정부 기관이 모여 있는 워싱턴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도시로서의 워싱턴을 보여주기 때문인데요. 도서관 측은 듀크 엘링턴의 곡을 흥얼거리든, 고고 리듬에 몸을 움직이든, 워싱턴 D.C.의 발명품을 신기해하든, 그것이 곧 미국 문화를 만든 유산의 일부라고 설명합니다.

진행자: 워싱턴이 미국에 남긴 것들을 모은 250주년 특별전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