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국의 시간은 누가 정했나, 1883년 '두 번의 정오'

시계 이미지 (화면 출처: Adobe stock)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을 바꾼 혁신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미국인들의 하루를 통째로 바꿔놓은 것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워싱턴이 오전 9시면 시카고는 8시, 로스앤젤레스는 6시죠.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 구분이 미국에 생긴 것은 1883년입니다. 그것도 정부가 아니라 철도회사들이 자기들끼리 정했습니다.

진행자: 철도회사가 시간을 정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전까지 미국에는 통일된 시간이 없었습니다. 각 마을이 저마다 해를 기준으로 시계를 맞췄습니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왔을 때가 그 마을의 정오였는데요. 그런데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니까, 마을마다 정오가 되는 시각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시카고가 12시일 때 피츠버그는 12시 31분이었고, 워싱턴이 정오면 뉴욕은 이미 12시 12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안에 지역별로 다른 시간이 300개 가까이 있었다고 합니다.

진행자: 그런데도 큰 문제가 없었나 보군요.

기자: 걸어 다니거나 마차로 다니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옆 마을에 도착했을 때 시계가 몇 분 다르다고 해서 곤란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마을의 시계는 보통 교회 첨탑이나 시계방 진열창에 걸린 것 하나가 기준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맞춰 살았습니다. 문제는 기차가 등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진행자: 기차는 빠르니까요.

기자: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게 되면서, 열차 한 대가 하루 동안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지나가게 된 겁니다. 철도회사들은 각자 나름의 기준 시간을 만들어 시각표를 짰는데, 그러다 보니 미국에 철도 시간만 50개가 넘게 생겼습니다. 어떤 역에는 시계가 여러 개 걸려 있었습니다. 이 철도 시간, 저 철도 시간, 그리고 그 마을의 시간까지요. 승객은 어느 시계를 봐야 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진행자: 사고 위험이 컸겠어요.

기자: 그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단선 철로에서는 서로 마주 오는 열차가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지점에서 비켜 가도록 운행했는데요. 두 기관사의 시계가 몇 분만 어긋나도 같은 선로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1853년 로드아일랜드에서 실제로 그런 충돌사고가 나서 14명이 숨졌습니다. 시계가 서로 달랐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누가 나섰습니까?

기자: 이름을 기억할 만한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먼저 뉴욕주 새러토가의 교육자 찰스 다우드입니다. 1860년대부터 지구를 경도에 따라 한 시간 간격으로 나누자는 구상을 내놓고 오랫동안 설득했는데요. 방식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성사시킨 사람은 윌리엄 프레더릭 앨런입니다. 철도 시각표를 모아 발행하던 안내서의 편집장이자 철도업계 협의체의 간사였습니다. 매일 시각표를 정리하면서 이 혼란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진행자: 어떤 방안을 내놨습니까?

기자: 앨런의 안은 단순했습니다. 영국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75도, 90도, 105도, 120도 되는 지점을 각각 기준선으로 삼고, 그 사이를 한 시간씩 차이 나는 시간대로 묶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동부, 중부, 산악, 태평양 시간대가 바로 이렇게 나온 겁니다. 앨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철도회사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었고, 안내서에 공고를 실어 반응을 모았습니다. 1883년 10월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안이 통과됐고, 시행일은 그해 11월 18일 일요일 정오로 정해졌습니다.

진행자: 그날이 바로 '두 번의 정오'였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날 정오에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철도 시계가 새 기준으로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각 시간대의 동쪽에 있는 도시들은 이미 그 지역의 해시계 정오가 지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시계를 뒤로 돌려야 했고, 그 도시 사람들은 그날 정오를 두 번 맞이하게 됐습니다. 먼저 해가 알려준 정오가 왔고, 잠시 뒤에 철도가 정한 정오가 다시 온 겁니다. 그래서 이날이 '두 번의 정오(Day of Two Noons)'라고 불립니다.

진행자: 시행 준비는 어떻게 했습니까?

기자: 지금 보면 놀라울 정도로 치밀했습니다. 철도회사 관계자들이 시청을 찾아가 시장들을 설득했고, 전국 신문에는 시계와 회중시계를 어떻게 맞추면 되는지에 관한 안내가 실렸습니다. 새 시간대를 표시한 지도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워싱턴의 해군천문대와 피츠버그의 앨러게니 천문대는 정확한 시각을 전신으로 쏘아 보내 전국의 시계를 맞추도록 도왔습니다.

진행자: 일상을 바꾸는 큰 변화인데, 반발은 없었나요?

기자: 있었습니다. 시행 전날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신문은 이제 해가 더 이상 주인 노릇을 못 하게 됐다면서, 사람들이 철도 시간에 맞춰 먹고 자고 일하게 될 것이고, 철도 시간에 맞춰 결혼하고, 목사도 철도 시간에 맞춰 설교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시간은 신이 정하는 것인데 철도회사가 손댈 일이 아니라는 종교계의 반발도 있었고요. 실제로 버틴 도시들도 있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1900년까지 지역 시간을 고수했습니다. 시간대 경계선이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곳들도 있어서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진행자: 그래도 결국 정착했군요.

기자: 이유는 단순합니다. 철도 시간을 따르지 않으면 기차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놓치면 장사가 안 됐고요. 대도시들이 먼저 받아들였고, 예일대와 하버드대 같은 기관들도 지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연방정부가 이를 법으로 정한 시점입니다. 무려 35년이 지난 1918년 3월에야 표준시법이 제정됐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35년 동안 법에도 없는 시간, 민간 기업들이 합의한 시간으로 살았던 셈입니다.

진행자: 이 변화가 미국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기자: 시간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그전까지 시간은 하늘이 알려주는 것이었고, 마을마다 자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1883년 이후 시간은 사람이 정하고 전국이 함께 쓰는 것이 됐습니다. 전국 단위의 사업과 통신, 뒷날의 방송 편성까지 모두 이 위에서 가능해졌습니다. 이듬해인 1884년에는 워싱턴에서 국제 자오선 회의가 열려 그리니치를 세계 기준으로 삼는 체계가 마련됐습니다. 미국의 철도가 만든 방식이 세계로 퍼져 나간 셈입니다.

진행자: 해가 알려주던 시간을 기차가 대신하게 된 날, 1883년 '두 번의 정오'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