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물질 생산 확대가 비핵화 협상 구도와 미한 확장억제의 셈법을 동시에 흔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비핵화 목표와 ‘핵물질 생산 제한’ 같은 중간 조치의 양립은 가능하지만, 미신고 시설 검증과 동맹 간 신뢰 확보라는 과제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물질 생산 확대에도 비핵화 원칙을 유지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비핵화 원칙 재확인…대화 문은 열어둬”
국무부 대변인은 VOA에 “미국은 북한의 불법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지속적인 위협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계속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국무부 대변인] “The United States continues to have significant concerns regarding the ongoing threats posed by the DPRK's unlawful WMD programs. President Trump has been clear that the United States is pursuing the denuclearization of the DPRK.”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윌레졸 국무부 한국·일본·몽골 담당 부차관보도 지난달 18일 워싱턴 포럼에서 북한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며, 행정부 내 논의는 비핵화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할 준비가 되면 트럼프 행정부도 준비돼 있지만, 당분간은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임기 당시인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미 전쟁부 공보실은 북한의 핵물질 생산 확대와 미한 확장억제 계획에 대한 VOA의 질의에 “이번 사안에 제공할 내용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핵화 원칙이 유지되더라도, 북한 핵 프로그램이 굳어진 현실 속에서 억제와 협상, 중간 조치와 검증 문제를 함께 따져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제재 한계 속 억제와 협상 병행…‘중간 조치도 양립’”
반 밴 디펜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VOA에 “북한 핵 프로그램은 이제 매우 잘 구축돼 있으며, 주로 러시아와 중국 내 기관들로부터, 또는 이들을 통해 충분한 지원을 확보해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제재와 수출통제도 점점 더 효과가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밴 디펜 전 국무부 국제안보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This is now a very well-established program, and clearly the North Koreans have been able to get sufficient support, mostly from and through at least entities in Russia and China, that they can keep that program going, and the advent of US sanctions and export controls in a way having an increasingly lesser effect.”
밴 디펜 전 수석부차관보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충분한 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동시에 “조건이 맞고 북한이 관심을 보인다면 의미 있는 협상에 나설 준비도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I think ultimately the only way to try and get a handle on this, besides continuing to make sure that we have an adequate deterrent, which is obviously extremely important and has to happen no matter what, is to be prepared, assuming the stars align, to have some meaningful negotiations with the North Koreans, assuming they are interested in negotiating.
특히 장기적 비핵화 목표와 핵물질 생산 제한, 핵위험 감소 같은 중간 조치를 서로 배타적 선택지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짚었습니다. “비핵화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조치들 사이에 양자택일이 있다고 보는 건 잘못된 전제”라는 지적입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I think there's sort of a false choice implied there between denuclearization and things less or less than total denuclearization.”
이어 “비핵화를 궁극적 목표로 유지하면서, 그에 도달할 때까지 더 작은 조치들을 추진하는 것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런 중간 조치는 협상 가능한 유익한 합의여야 하며, 그 대가도 감수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It's not incompatible to maintain denuclearization as your ultimate objective. And then, in the meantime, if you're in a position to negotiate beneficial deals that are adequately negotiable at a worthwhile price, doing lesser things until you can ultimately get to denuclearization.”
지난 5월 17일 위성으로 촬영된 북한 영변 핵시설 단지의 모습.
그러나 “현재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 자신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협상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But right now the big obstacle is that the North Koreans themselves don't seem to be prepared to negotiate on anything.”
결국 중간 조치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타협이 아니라, 현실적인 비핵화 프로세스 아래 핵물질 증산과 위험을 통제하는 방안으로 풀이됩니다.
“‘영변 동결’도 더 넓은 범위 필요”
이런 난점은 영변 문제에서도 드러납니다. 영변 핵단지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면, 과거 협상에서 부분적 비핵화 조치로 거론돼 온 ‘영변 동결’의 범위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재우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 선임분석가는 VOA에 “영변은 종종 동결이나 폐기의 가능한 초점으로 다뤄져 왔지만, 영변 단지 자체가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면 향후 ‘영변 동결’은 이전 외교 시기보다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시설 범위를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신재우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ONN) 선임분석가. 제공 = ONN.
[신재우 /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 선임분석가] “Yongbyon has often been treated as a possible focus for freezes or dismantlement. But if the Yongbyon complex itself is still expanding, then any future ‘Yongbyon freeze’ would have to cover a larger and more capable facility footprint than in previous diplomatic periods.”
신 분석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교환해 넘길 협상 카드라기보다, 국가안보 전략의 영구적이고 확장적인 일부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재우 /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 선임분석가] “The nuclear programme is being presented as a permanent and expanding part of its national security strategy, rather than as a bargaining chip to be traded away.”
이에 따라 향후 협상에서는 동결 대상뿐 아니라, 확장된 생산능력의 신고와 검증 범위도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신고 없는 동결, 검증의 벽”
부분 동결 합의의 신뢰성은 결국 북한이 핵 생산망을 어디까지 신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알려진 시설만으로 북한의 핵물질 생산 능력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은 VOA에 “북한은 일부 시설에 관한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려 하지 않았고, 이것이 이후 하노이 회담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올리 하이노넨 / 전 IAEA 사무차장] “Information on some of those installations North Korea did not want to share with the US, which subsequently lead to the failure of the Hanoi talks.”
밴 디펜 전 수석부차관보도 “핵분열물질 생산 합의는 신뢰성 있게 협상하기 어렵다”며 “모든 시설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확신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And so, this is one of the things that makes any kind of fissile material production agreement difficult to reliably negotiate, because it's going to be really hard to be sure that you know where all the facilities are.”
“탄두 늘면 전술핵·ICBM 운용 선택지 확대”
핵물질 생산 확대는 북한의 핵전력 운용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탄두가 전술핵, ICBM, 다탄두 미사일 등 북한이 추구하는 전력 구조를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밴 디펜 전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은 더 많은 탄두를 갖게 되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며, 전술핵무기와 더 큰 ICBM 전력 확보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더 큰 ICBM 전력은 북한이 공격을 받은 뒤에도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넘어 효과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전력을 남겨두려는 목적과 관련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Basically, it can have more warheads to do things with, and probably things like having more so-called tactical nuclear weapons, which clearly is a priority of theirs, being able to have a larger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 force, which would be necessary, so that they could make sure that even if they had absorbed a strike, they still had enough left, despite American missile defenses, to be able to retaliate effectively against the United States…”
아울러 “북한은 다탄두 미사일 개발 초기 단계에 있으며, 성공할 경우 미사일에 여러 탄두를 탑재하기 위해 더 많은 탄두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We also know they're in the early stages of trying to develop multiple missile warheads. If they're successful, then they're going to need more warheads to put multiple warheads on missiles.”
다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력의 비중은 제한적으로 봤습니다. 그는 “북한이 매우 큰 SLBM 전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는 않다”며 “북한 핵전력은 압도적으로 지상 이동식 미사일 중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밴 디펜 /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 “…they don't seem to be on a trajectory to have a very large SLBM force… I think that's always going to be a very small contributor to what's going to be overwhelmingly a land mobile missile force.”
이 문제는 미한 확장억제의 신뢰성 논의와도 맞물립니다.
“NCG, ‘그냥 믿으라’ 넘어 핵계획 공유로”
한반도 안보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박사는 VOA에 “대규모 북한 핵무기고는 북한이 역내 미국 동맹을 상대로 전술핵무기를 쓸 수 있게 하고, 미국이 동맹을 지원하기 위해 확장억제 공약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개입하면 북한이 일부 핵무기로 미국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브루스 베넷 / 한반도 안보 전문가
[브루스 베넷 / 한반도 안보 전문가] “A large North Korean nuclear arsenal would presumably allow it to use tactical nuclear weapons against our regional allies and raise questions about whether the United States would meet US extended deterrence commitments in support of our allies because North Korea would likely target the United States with some nuclear weapons if we did.”
미한 양국은 지난달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6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했습니다. 양측은 핵위기 시 협의 절차와 정보공유, 연습·훈련, 전략적 메시지와 위험 감소 방안도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베넷 박사는 북한 핵전력이 커질수록 NCG가 단순한 안심 장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핵 보복 계획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공유해야 하며, 미한 핵협의그룹을 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핵 보장 없이 “그냥 우리를 믿으라”고 하는 미국의 설명을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 한반도 안보 전문가] “The United States needs to share more about its nuclear retaliation plans with our South Korean allies—presumably using the Nuclear Consultative Group as a vehicle for doing so. The time for the South Koreans to accept the United States saying, “Just trust us,” is rapidly ebbing, providing inadequate nuclear assurance of South Korea.”
베넷 박사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 지휘관이 한미연합사를 이끌게 될 경우, 미국 핵무기 운용 요청과 재래식 작전의 조율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핵무기 사용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남아 있지만, 한국군 사령관이 자신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특정 핵무기 운용을 요청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2026년 3월 14일, 미한 연합훈련 ‘프리덤 실드(FS)’의 일환으로 경기도 연천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부근에서 열린 미한 연합 도하 훈련 중, 제이비어 브런슨 미한연합사령관이 미군 장병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어 “한국군 사령관이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의 핵무기 운용 사고에 급진적인 변화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 한반도 안보 전문가] “Still, the ability of a South Korean commander to make such a request would be a radical change in US thinking about nuclear weapon employment, and maybe necessary to keep the US extended deterrence credible.”
또 한국의 정치·군사 조직이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잃고 독자 핵무기 개발을 결정한다면, 이는 “매우 불안정한 전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 한반도 안보 전문가] “If the South Korean political and military organizations lose faith in the US extended deterrence and decide to build their own nuclear weapons, that would be a highly destabilizing development.”
북한의 핵물질 생산 확대는 비핵화 논의에서는 생산시설의 신고와 검증 범위를, 동맹 차원에서는 미한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함께 시험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