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채널 사흘째 불통…남북관계 또다시 경색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스크린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남 발언 관련 소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 개시에 반발하며 사흘째 남북 연락채널을 통한 정기통화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락 채널 전격 복원으로 높아졌던 남북관계 개선 기대감이 빠르게 식어가면서 한반도 정세가 또 다시 얼어붙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12일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도 이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시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13개월 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한 뒤 2주간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해 한국 측과 정기적으로 통화했습니다.

그러나 미-한 연합훈련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지난 10일 오후부터 한국 측의 정기통화 시도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은 각각 지난 10일과 11일 잇달아 미-한 연합훈련에 반발하면서 한국에 대한 배신감을 강조하고 ‘안보 위기’를 경고하는 담화를 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통신선 복원으로 조성됐던 한반도 화해 모드는 2주만에 긴장 국면으로 회귀하는 양상입니다.

남북 협력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한 다각적인 준비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통일부가 조만간 열 것으로 알려졌던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 개최 일정도 불투명해졌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상황을 고려해 개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가 영향을 줬다는 관측입니다.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는 한국 내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협력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이번 회의를 통해 민간단체 약 20곳에 남북협력기금 100억원, 미화로 약 860만 달러 상당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내 북한전문가들은 연합훈련이 끝나는 오는 26일까지는 북한의 연락채널 차단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필요에 따라 통신선 가동 여부가 결정되고 한국 정부는 이에 끌려가야 하는 양상이 남북관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통신선 복원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지나친 기대를 가졌고 미-한 연합훈련을 빌미로 또 다시 일방적 차단에 나선 북한에 대해 별 다른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통신선 복원 이후 곧바로 담화 공세로 나온 북한의 행동은 도발의 명분을 쌓기 위한 사전 각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관계 회복에 힘을 쏟았던 한국 정부의 대응에 성급한 측면이 있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북한에겐 원래부터 민감하게 생각했던 사안이고 소위 대북 적대시 정책에 북한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집중적인 하나의 상징적 사안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미국과 협의해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너무 이른 시점에 협의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남 압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의 최근 일련의 행보가 체제 결속에 초점을 맞춘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 대내매체들이 통신선 복원 사실은 보도하지 않다가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철 부장의 담화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전했다며, 내부 위기의 원인을 외부세력에게 돌리기 위해 대남 비난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내부가 사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수해가 가중되고 있고. 그렇게 보면 지금 이 엄혹한 상황에서 외부에서 한-미가 문제를 일으키고 위협을 하고 있다는 그런 위기감을 더 강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어요. 체제 결속을 노리고. 왜냐 하면 북한이 한-미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할 행동이 많지 않거든요. 판을 완전히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규모 훈련을 할 수도 없고.”

조 박사는 북한이 연합훈련 직후 단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저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한국 정부를 메신저로 활용한 미국과의 대화 여지는 남겨둘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이 경제 위기가 한계치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 재개를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게 조 박사의 설명입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한국을 압박해 미국을 설득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도록 추동하려 할 것이라며, 한국과의 관계 단절이 장기화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자기 필요에 따라 한국과의 대화를 풀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향후 남북관계를 운용하는 데 내년 초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중요한 고려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이 남북대화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두면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북한도 사실은 한국의 내년 대선을

고려할 때 다시 보수정부가 탄생하는 것을 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게 어느 정도 호응할 필요성은 느낄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판 자체를 계속 깨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북한에게도 손실이 따르는 거죠. 향후 몇 년간의 정세를 고려할 때.”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미-북 관계에서의 한국의 중재역할의 한계를 익히 알고 있다고 본다며, 따라서 북한의 향후 행보에서 대남관계는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내부 사정을 감안하면 북한이 단기 승부에 나설 수 있다며 미국을 흔들만한 고강도 도발을 수반한 이른바 ‘벼랑끝 전술’로의 복귀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반도 긴장 조성을 단기간에 할 생각이 있다고 판단돼요. 내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라고 생각되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긴장 조성을 해야 다음 국면전환이 가능한 것이고요. 긴장을 조성하는 이유는 미국이 전혀 북한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주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그런 모습이니까 미국을 압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한편 북한의 도발 징후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미-한 정보당국 간 긴밀한 공조 하에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추가로 설명할 만한 특이동향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