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일장관 "미한 정상회담 대화 재개 여건 조성"…전문가들 "한국 '촉진자' 역할 여전히 한계"

이인영 한국 통일장관.

미-한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측의 대북 대화 의지가 확인되면서 한국 정부가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한 촉진자 역할에 보다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해 한국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은 미-한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뿐 아니라 미-북 관계의 대화를 재개하고 평화를 향해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장관은 24일 한국의 ‘MBC’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고 “그동안 단절된 대화채널 복원과 대화를 재개하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장관은 “북한으로서도 내심 기대했던 싱가포르 미-북 정상 합의에 기초한 대화 접근 가능성도 분명해졌다”며 “미-북 대화 의지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대북특별대표의 임명까지 종합적으로 보면 남-북-미가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충분한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미-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싱가포르 합의 존중이 명문화된 것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종전 선언은 물론 미-북 수교까지 포함한 다양한 수준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북한과의 실무 협상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물론 실무협상 시작 전에 미국이 이것을 줄 순 없는 상황이지만 협상 내에서 충분하게 유연하게 이런 카드를 북한에 줄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암시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실무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성 김 대표를 임명하면서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한-미 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게 아닌가, 이제는 공이 북한에 넘어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미-한 양국 간 노출됐던 대북정책에서의 혼선 조짐이 상당히 정리됐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한국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미-한 정상회담 결과를 북한에 전달하면서 미-북 관계 돌파구로서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한 북한과의 접촉 시도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어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으로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내용도 일부 들어있기 때문에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서도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 큰 틀에서 보면 그동안 한국과 미국과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뭔가 혼선이 있다는 게 이번에 정리가 됐잖아요. 한반도 비핵화가 앞으로 가고 확고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해서 북한을 외교적 방법으로 끌어들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을 북한한테 잘 설명을 해야죠. 그게 바로 2018년부터 만들었던 남북간 소통채널을 지금 활용해야죠.”

하지만 공개된 미-한 정상회담 결과만 놓고 볼 때 북한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만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주장해온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련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고 오히려 양국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언급되는 등 북한이 반발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던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대사는 한국 정부가 노력한 흔적은 역력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끌어들일만한 인센티브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이 대화에 호응할지 매우 불투명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싱가포르 선언에 기초한다는 것은 종래 이미 나왔던 것이니까 새롭지 않고요. 문서로 썼다는 점은 새롭지만 북한에게 크게 새롭지 않을 것이고요. 판문점 선언이 인정됐다는 것도 북한 입장에선 그렇게 대단한 부가가치가 있다고 보긴 어렵죠. 그러니까 북한이 호응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미-한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북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의지가 강조되긴 했지만 미국의 확장억지력 제공과 북한 인권 개선 필요성이 언급된 점, 그리고 미-한 미사일 지침 종료 등 북한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내용들도 포함돼 북한이 반길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와 함께 남북 정상간 4.27 판문점 선언까지 지지를 표명한 데 대해서도 북한이 태도를 바꿀 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남북관계를 미국에 가서 설득했다는 것 자체의 논리를 그다지 북한이 반겨하는 구도는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환호하고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그리고 실제 북-미 관계를 촉진하는 요소로서의 남북관계를 미국이 지지했다고 해서 북한이 반겨하면서 거기에 실제 협력으로,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은 더 더욱 없다고 봐야 될 것 같거든요.”

홍 박사는 이에 따라 북한이 지금 시점에서 대화에 나서기 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미국 측에 환기시키기 위한 반발 담화나 저강도 대남 도발을 택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판문점 선언 지지가 남북관계 개선 속도가 미-북 비핵화 협상을 앞지르는 것을 경계했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남북관계 독자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러나 한국 정부가 협상 재개 돌파구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대북 제재 예외를 인정받길 원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며, 북한은 아마도 이 같은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원래 원하는 선 적대시 정책 철회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제일 잘 알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계획과 내부사정이 훨씬 더 앞으로의 대화 가능성, 도발의 가능성에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미-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이나 한국과의 접촉에 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이미 천명한 전술핵 등 신무기 개발 시간표와 경제위기에 따른 체제 내구성과 같은 내부적 요인들이 향후 행동방향을 결정짓는 보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