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외교장관 회담 갈등 노출...북한 매체 언급 안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10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가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 ARF를 계기로
또 다시 드러났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중국과의 양자회담 소식을 아예 다루지 않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 ARF에 참석한 리수용 외무상이 다른 나라 외교장관들과 별도로 가진 양자회담 소식을 11일 보도했습니다.

리 외무상이 9일 말레이시아와 캐나다, 몽골 등 9개국 외무상과 부수상 등 회담 대표단을 각각 만나 쌍무관계 문제를 토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10일 만나 담화를 했다며 북-일 양자회담 소식도 전했습니다.

하지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리 외무상은 10일 오후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국제컨벤션센터 양자회의장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왕 외교부장을 만났고 중국 외교부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 소식을 실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리 외무상의 동정을 보도하면서 왕 외교부장과의 회담 소식을 다루지 않은 것은 중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의도적 행동이라는 관측입니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한국의 김흥규 아주대 교수입니다.

[녹취: 김흥규 아주대 교수] “중국의 정체성도 발전도상국에서 강대국으로 바뀌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이 훨씬 더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순응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하는데 오히려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맞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서로 간에 어색한 장면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북-중 양자회담이 이뤄지기까지의 모양새도 소원해진 두 나라 관계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했던 지난해만 해도 두 나라 외교수장들은 ARF가 열리기 전에 미리 만나 돈독한 관계를 우회적으로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순탄치 않은 조율 과정을 거치면서 ARF가 끝난 뒤 막판에 가서야 회담이 이뤄졌다는 후문입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8일 리 외무상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종적인 결정이 되지 않았다며 시간이 많지 않아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중 관계는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으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특히 지난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급격하게 얼어붙었다는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달 북-중 우호조약 체결 기념일에도 북-중 친선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고 북 핵 문제에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같이 하는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반면 북한 매체가 일본과의 회담 사실을 보도한 것은 5월 말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대북 제재 조치 일부 해제에 의견을 모은 스톡홀름 합의 이후 진전되는 양국 관계가 반영됐다는 평가입니다.

김흥규 교수는 북한 매체의 이런 보도 태도에 대해 중국의 압박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행동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아주대 교수] “북한 입장에선 일본 카드도 있고 러시아 카드도 있다는 것을 중국과 미국에게 공히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너희들이 북한의 핵 문제를 갖고 압박을 해도 우리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고 핵 문제도 계속 발전시켜나가면서 너희들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는 거죠.”

중국에 대한 북한의 ‘자존심 외교’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전될 지 또 동북아 외교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