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파트 참사 대응, 국제사회와 대조적

지난 13일 북한 평양의 평천구역에서 23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붕괴돼 대형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이 돼 가지만 아직 최고 지도자의 사과나 조문, 인명 피해 상황은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 정부의 대응은 국제사회의 조처와는 크게 대비된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일 한국 청와대 춘추관. 박근혜 대통령은 300여 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중략)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터키에서는 지난 13일 301 명의 광부가 숨지는 탄광 사고가 발생하자 총리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희생자 가족을 위로했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사흘 간의 국가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습니다.

[녹취: 에르도안 총리] “터키어"

국가에 대형 재난과 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과하고 대책을 밝히며,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최고 지도자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05년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남부 뉴올리언스 등을 강타해 엄청난 재해가 발생하자 즉각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녹취: 부시 전 대통령] “Katrina exposed serious problems in our response capability at all levels of government…I take responsibility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재난 대응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며, 대통령인 자신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지난 13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신축 아파트가 무너져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23층 아파트에 92 세대가 입주했기 때문에 수 백 명의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참사에 대해 지금까지 북한 관영매체에 보도된 북한 최고 지도자와 정부의 대응은 국제사회와 크게 다릅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사고 현장을 방문했거나 희생자 가족과 주민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은 사고 뒤 열흘이 지난 22일 현재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은 사고 소식을 발생 닷새 만에 발표했고, 사고 현장은 물론 피해 규모조차 주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탈북자 출신 정치학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21일 ‘VOA’에, 최고 지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사안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북한에서는 어떤 대형 사고가 나도 그 게 당국의 잘못, 지도자의 잘못, 정치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선에서 책임을 자릅니다. 이번에도 역시 붕괴 책임을 인민보안부장인 최부일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고 5 명을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이 것은 바로 그 이상으로 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죠. 그래서 인민들에게 김정은이나 노동당은 책임과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조치로 명확히 구분하는 겁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일부 간부들의 사과 사실을 보도하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 밤을 지새웠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은 사고 다음 날인 14일 간부들과 군인 축구경기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19일에는 부인 리설주와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관영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모시고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 축하공연이 성대히 진행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아파트 붕괴가 북한의 속도전에 따른 날림 공사가 원인이란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 제1위원장은 20일, 46층 규모의 김책공대 종사자 아파트 건설현장을 방문해 “걸작품’ 이라며 속도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 “화약에 불이 달린 것처럼 폭풍처럼 내달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초고층 살림집 골조공사를 기본적으로 끝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은 국제사회에서 이런 지도자의 모습은 크게 비판 받을 일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아직 그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선전선동 자료에는 마음이 아파 밤을 지새웠다고 발표하고 축구장에 가서 파안대소하고 부인 리설주까지 대동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각에서는 지도자로서 참 잘못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히 볼 수 있는데 북한 인민들로서는 그런 사건과 사고가 과거에 공개된 적도 없고 사과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보도 형태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고 현장의 처참함과 지도자의 행태, 이 것을 다 연결시켜서 뭔가 통치자들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는 관점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북한 주민들의 정치의식이나 문화의식이 낮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터키에서는 현재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이미 관련자 여러 명이 기소되거나 구금됐습니다. 또 국회 등 정치권에서는 책임 소재를 묻는 청문회나 특별검사제 실시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이런 비판과 대응조치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외부에서는 북한 정부가 실종자 구출 등 사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아파트가 붕괴된 지 나흘 만에 구조전투 (구조작업)를 마무리 했다고 밝힌 것은 인명 구출을 등한시하고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입니다.

안찬일 소장은 이를 북한 특유의 생명존중 경시 풍조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깔려서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구별하지 않고 일단은 흔적 지우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인명 구출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인명경시 풍조입니다. 가족들이 당국에 책임을 묻거나 항의하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당국이 일방적으로 마무리해도 그게 언론에 나거나 개인이 항의하거나 하는 절차가 완전히 무시된다는 거죠.”

실제로 서울에서는 지난 1996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사고 발생 보름이 더 지난 시점에 매몰돼 있던 생존자가 구조된 전례가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