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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북한 내 미군 유해발굴 재개 – 60년을 기다린 전우와 가족들


한국 전쟁포로 유해를 향해 거수 경례를 하는 참전용사
한국 전쟁포로 유해를 향해 거수 경례를 하는 참전용사

6.25 전쟁 중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미군 가운데 수 천 명의 장병들이 아직도 북한 땅 어딘가에 묻혀 있습니다. 미군 당국은 종전 이후 지금까지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올해 북한에서 7년 만에 재기되는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의 현황과 기대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60년 넘게 참전용사들의 귀환을 기다려온 유족들과 전우들의 얘기를 전해 드립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78살인 아이린 맨드래 씨는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묏자리를 정해 놨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묘로 쓰기엔 땅이 너무 넓습니다.

6.25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한 뒤 실종된 오빠와 함께 묻히고 싶어 마련해 놓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녹취: 아이린 맨드래 씨, 6.25 참전 실종자 가족] “When I bought a plot for myself…”

1952년 8월 7일, 가장 좋은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3살 터울의 오빠 필립 맨드래 하사는 머나먼 한국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빠를 찾기 위한 60년의 노력이 시작된 바로 그 날입니다.

[녹취: 아이린 맨드래 씨, 6.25 참전 실종자 가족] “I flew to Russia and confronted…”

오빠를 찾아 러시아까지 달려갔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에게 매달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살의 소녀는 이제 80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지난 달 뇌졸중으로 입원까지 했었지만 오빠를 찾기 전까진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6.25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군 병사를 60년 동안 기다려온 건 아이린 씨 같은 가족만이 아닙니다. 전우를 전장에 두고 왔다는 마음의 짐을 평생 동안 이고 살아온 참전용사들도 있습니다.

[녹취: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 6.25 참전용사] “Because it’s still over quite a few bodies…”

1952년 19살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 전투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머리와 목, 무릎, 어깨를 다쳤지만 그는 다시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스칼라토 씨는 7년 전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중단돼 안타까워 했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더디게나마 하나 둘 미국으로 귀환하던 전우들의 유해를 더 이상 맞이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올 봄 북한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된다는 소식을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뉴욕지부 회원들과 나누며 기뻐했습니다.

[녹취: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 6.25 참전용사] “I wish I could volunteer to go there…”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에 거주하는 제이크 허파커 씨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는 걸 느끼지만 60년 전 함께 싸웠던 전우들 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합니다.

[녹취: 제이크 허파커 씨, 6.25 참전용사] “You have our hope that…”

허파커 씨가 힘겹게 꺼낸 말은 이국땅에서 생사가 갈린 동료 미군 병사들의 유해를 꼭 찾아야 한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 기대는 6.25 전쟁에서 미군과 나란히 작전을 펼쳤던 한국 군 참전용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뉴욕의 ‘6.25 참전 유공자회’ 강석희 명예회장은 상이군인으로 전장에서 돌아왔지만 함께 참전했던 친척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녹취: 강석희 명예회장, 6.25 참전 유공자회] “삼촌은 그냥 안 돌아 온 거고 사촌 두 사람은 하나는 남쪽, 하나는 북쪽, 못 돌아왔지. 나는 수색대에 나가서 눈도 하나 잃어버려서 이식수술 했잖아.”

그래서 먼 이국땅까지 찾아와 자신들과 함께 싸워준 미군 병사들의 유해 발굴 재개가 남의 일 같을 수 없습니다.

[녹취: 강석희 명예회장, 6.25 참전 유공자회] “가족들이 죽기 전에 그 유해들이 고향을 찾아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뉴욕의 ‘6.25 참전 유공자회’ 김진창 회장은 전장에선 미군, 한국 군을 가를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녹취: 김진창 회장, 6.25 참전 유공자회] “우리는 같은 부대 전우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늦게나마 전우들의 유골을 찾아낸다고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해라도 찾아 고향에 묻고 싶다는 게 참전용사 가족들의 마음이지만, 여전히 실종 미군들의 생존 가능성을 제기하는 가족 단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6.25 참전 미군 실종자 중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한다는 미군 당국의 발표 때문입니다.

[녹취: 캐리 파커 공보관, 미 국방부 ‘전쟁포로와 실종자 담당국’ / 리 터커 공보관, ‘미군 전쟁포로와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 “There is no evidence…”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국’의 캐리 파커 공보관과 ‘미군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의 리 터커 공보관 모두 최근 ‘미국의 소리’ 방송에 6.25 전쟁 미군 포로와 실종자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미 국방부의 입장은 일부 실종 미군 병사 가족들에겐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녹취: 린 오쉬아 조사국장,‘미군 실종자 귀환을 위한 가족연합’] “They were totally…”

‘미군 실종자 귀환을 위한 가족연합’의 린 오쉬아 조사국장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미 당국이 북한에 미군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6.25 전쟁 종전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클라크 사령관은 당시 기자들에게 북한에 귀환시켜야 할 미군 포로가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쉬아 국장은 그러나 1989년 미 국방정보국은 북한에서 미군 포로가 석방되지 않았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기존의 입장을 뒤집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군 당국의 자체 비망록과 미 의회 청문회 증언 내용도 서로 엇갈리는 등 미국 정부가 북한 내 미군 포로 생존 가능성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여왔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내 미군 포로 생존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이국 땅에서 쓰러진 미군 병사들의 공을 기리고 이들의 흔적이나마 가족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건 기쁘다는 입장입니다.

미군 장병들의 유해라도 기다리던 미국의 가족과 전우들에게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7년 만에 재개될 미군 유해 발굴 작업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는 기획보도, 오늘 순서로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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