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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법 위에 당, 당 위에 수령”


북한에서 대를 이어 세습되는 직위는 최고 지도자 자리 뿐이 아닙니다. 이른바 ‘백두산 줄기’에 포함되면 대를 이어 좋은 자리에 오르고 돈도 만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어깨총, 앞으로 가!"

5백만 노동적위대를 지휘하는 북한 군 상장 오일정의 목소리입니다.

올해 57살인 오일정은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던 오진우의 아들입니다. 오일정은 2년 전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한 지 불과 6개월만에 또다시 상장으로 초고속 진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 해군 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오일정이 북한에서 어떻게 권력이 대물림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출세를 하려면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이나 측근을 말하는 이른바 ‘백두산 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거 평양교원대학 교수로 근무하다 한국으로 탈북한 이숙 씨의 말입니다.

“아버지가 항일빨치산이면 그 아들도 직급도 높고 높은 간부가 계속 될 수 있고, 옆에서도 니네 집은 항일빨치산 집안인데 뭘 걱정하니, 하고…”

북한에서 무역일꾼으로 일하다 지난 2003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씨는 북한 고위직 인사들의 권력 대물림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노동당이 입당은 물론 학교 입학, 군 입대, 주택 배정권 등 거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당 간부 자제들이 요직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중앙당에 있는 사람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준비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중앙당에 들어가려면 토대가 좋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거기 있으니까 됐고, 대학도 아버지가 권력을 이용해 좋은 대학에 보내고, 배치도 중앙당이 하니까 자기 자식을 좋은데 배치하고, 간부들은 자기 자식에 권력을 물려주는 것과 똑같죠.”

고위직에 있는 아버지 덕에 좋은 자리를 차지한 2세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달러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폭로 전문 인터넷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 국무부의 외교 전문에는 북한 권력층 2세들의 이권 개입 실상이 묘사돼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월 중국의 선양 주재 미국 영사관이 워싱턴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평양에는 일단의 권력층 아들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과 중국간 각종 거래에 개입하며 이권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또 북-중 합작기업에 자신의 직속 부하나 친인척을 배치하고 해당 기업으로부터 수시로 뇌물을 받고 있다고 외교 전문은 밝혔습니다.

탈북자 김태산 씨는 고위층 2세들이 각종 이권에 손을 대고 있다는 외교 전문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후광을 이용해 무역회사를 하나 만들어 외화벌이를 합니다. 일반 무역회사는 무역 거래에서 생긴 돈은 모두 국가에 내지만 간부집 아들이 세운 무역회사는 거래에서 생긴 돈은 모두 자기 주머니에 들어갑니다.”

북한 권력층 자제들이 마약 거래나 위조지폐 유통에 간여한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타임스’ 신문은 지난 2010년 5월 미 재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에는 ‘봉화조’라는 당정군 고위층 인사들의 아들로 구성된 그룹이 있으며, 이들이 북한산 위조지폐인 수퍼노트와 헤로인 등 불법 거래에 간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마약 거래나 위조지폐 유통은 북한에서도 불법 행위입니다. 북한 형법 100조에 따르면 위조지폐를 사용한 사람은 5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권력층 자제들은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탈북자 김태산 씨는 말했습니다.

“법 위에 당이 있고 당 위에 수령이 있기 때문에 법은 그들에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법에 의해 잡혀간다고 해도 하루이틀 안에 빠져 나오는 거죠.”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처럼 김정은 일가와 특수한 관계가 있는 장성이 고속 승진하는 북한의 권력구조는 별다른 배경 없이 묵묵히 근무하는 일반 장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말입니다.

“오일정만 보더라도 6개월만에 중장에서 상장이 된 것처럼, 무슨 인사원칙이 없는데다 세습과 혈통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에 북한 군에서 이에 대한 불만은 거대한 화약고로 잠재돼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출신성분이 나쁘면 출세할 수 없는 북한의 사회구조가 일반 주민들에게 큰 허탈감과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고위층은 권력을 대물림하고 일반 주민들은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봉건적 사회구조는 결국 북한 체제의 가장 큰 내부 모순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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