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북한 노동당 정치국이 ‘9월 상순’에 열겠다고 발표했던 당 대표자회가 15일까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은 당 대표자회가 열리지 않은 배경과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과 내부 갈등설 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당 대표자회를 열기 어렵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의 말입니다.
“북한 전문가인 클링너 연구원은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달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을 감안할 때 건강 이상설은 별 근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도 지난 13일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때문에 당 대표자회가 늦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에서는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의 후계구도 가시화를 둘러싸고 모종의 갈등이 있는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에게 어떤 직책을 줄지, 또 후견인인 장성택을 어떤 자리에 배치할지 세부 조율이 아직 안 끝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에 대해 과거 평양의 대외보험총국에 근무하다 탈북한 김광진 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을 공식적으로 데뷔 시키느냐 안 시키느냐 내부에서 의견 불일치가 있다는데, 그건 말이 안됩니다. 불일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의견은 있을 수 있지만 표출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한국 인제대학교의 진희관 교수는 수해로 인해 당 대표자회가 연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7-8월 사이 집중호우와 압록강 범람, 태풍 등으로 수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당 대표자회를 강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 당 대표자회에는 평양과 지방에서 1천3백 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북한 같은 획일적인 정치 풍토에서는 비록 소수라 해도 불참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고 진희관 교수는 말했습니다. ‘1백% 투표에 1백% 찬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정치문화에서, 일부 대표가 빠진 상태에서 당 대표자회를 개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북측의 당 대회나 대표자회는 과반수가 참석해 열리는 국회와 다릅니다. 전인민적인 지지를 받는 대의원들이 전원이 참석해서 열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수해로 참석 못했다, 우리 사회의 정당과 달리 사회주의 국가에서 과반수 참석 이런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죠.”
한편 워싱턴의 북한인권위원회 방문 연구원인 탈북자 출신 김광진 씨는 ‘선물’ 등이 제대로 준비가 안돼 당 대표자회를 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북한 당국은 전국적인 경축 분위기 속에서 당 대표자회를 열려고 했는데 수해로 민심이 나빠진데다 선물 준비 등이 제대로 안돼 당 대표자회를 열지 못한다는 겁니다.
“44년 만에 열리는 큰 회의에서 좋은 선물을 줘야 하고 전국적으로 분위기, 주민들에게 쌀 한 열흘 분, 돼지고기 한 두 킬로, 술 한 두 병 줘서 경축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북한의 상황으로서는 그런 것이 여의치 않다고 봅니다.”
북한은 지난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권력 승계 준비 작업을 해왔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주민들을 상대로 권력 승계를 암시하는 노래 ‘발걸음’을 보급하고 강연회를 열어 왔습니다.
이어 북한은 지난 6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9월 상순에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해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소집한다”고 발표했었습니다.
북한이 이달 상순 개최를 공식 발표했던 노동당 대표자회가 9월15일이 지난 지금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1백% 투표에 1백% 찬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획일적 정치문화 때문에 회의가 연기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