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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0년대 한-일 수교 반대 시위 불가리아에 요청


1960년대 한국과 일본의 수교를 앞두고 북한이 정부차원에서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불가리아에 수교 반대집회를 열어 줄 것을 요청한 사실 등이 담긴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불가리아 정부가 기밀해제한 대량의 북한 관련 외교문서들을 입수해 그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서울에서 보도합니다.

한국의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최근 불가리아 정부가 기밀 해제한 국립문서보존소의 북한 관련 기록물 2천 여매를 입수해 24일 그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이 기록물들은 지난 1950년~70년대 평양주재 불가리아대사관이 만든 문서와 소피아 주재 북한대사관이 불가리아 정부로 보낸 문서 등으로, 냉전시절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문서는 특히 북한이 지난 1966년 한-일 두 나라의 수교를 앞두고 동유럽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불가리아에 수교 반대집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지난 1962년 3월 소피아 주재 북한대사관은 “남한 정부가 일본의 자본을 들여오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불가리아 공장과 집단농장 등지에서 열어달라”며 “이 집회에는 북한대사관 대표들도 참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문위원인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당시 한-일 수교에 대한 북한의 위기감, 그리고 냉전시대 동서 진영간 대결외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한-일 국교 수교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완성으로 북한은 인식했고 거기에 대한 상당한 부담을 호소했기 때문에 북한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 얼마만큼 부담스러워 했는가를 간접적으로 확인케 하는 대목에서 의미 있는 자료 발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북한 유학생 망명 사건으로 두 나라 관계가 60년대 중반 수 년간 얼어붙었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이상종 씨 등 북한의 국비 유학생 4 명은 지난1962년 8월 김일성 독재체제에 반대하며 불가리아에서 망명을 선언했다가 북한대사관에 억류돼 현지 정부의 도움으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북한은 68년까지 6년간 불가리아와 문화교류 등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불가리아 정부는 1968년 9월9일 북한 건국 20주년에 즈음해 건국기념일을 축하하고 김일성 주석의 방문을 요청하는 우호적인 서한을 보냈습니다. 국가기록원 측은 “이 서한이 결정적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자들 사이에선 이즈음 두 나라 외교관계가 차츰 정상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1957년 북한은 불가리아에 토지 개량과 벼농사 등과 관련된 농업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가기록원이 소련을 제외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북한 관련 문서를 입수한 것은 지난 2007년 헝가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북한의 외교사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과 소련,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역사적 확인이 됐었지만 군소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그런 것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런 작업을 통해서 당대의 외교적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는 그런 점에서 의미 부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동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북한 관련 문서들을 기회가 닿는 대로 입수할 방침이며 이번에 입수한 자료들은 번역 작업 등을 거쳐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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