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이 14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에서 통일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영결식에는 명예 장례위원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 각계 인사 3백여 명이 참석해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영결식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미국의 수잔 솔티 북한자유연합 의장 등이 조사와 추도사를 낭독한 가운데 1시간 동안 영상물 상영과 헌화,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조사를 낭독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입니다.
"북한 민주화와 7천만 민족 통일의 크나큰 과업이 태산처럼 남아있는데 선생님은 벌써 떠나려 하십니까."
영결식이 끝난 뒤 황 전 비서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져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을 안장하는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는 고 김상협,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 등 25명이 안장돼 있습니다.
여든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황 전 비서는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남한에서는 북한체제 비판의 선봉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923년 평남 강동군에서 태어난 황 전 비서는 1958년 고 김일성 주석의 이론서기로 임명되면서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의 사상적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주체사상을 가르치기도 했던 황 전 비서는 1965년부터 14년간 김일성대학 총장을, 1979년부터 18년간 노동당 비서를 맡는 등 북한 권력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90년 대 중반 수 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는 걸 보고 체제에 회의를 느낀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 주중 한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측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인 황 전 비서는 망명 이후 13년 간 각종 강연과 집필을 통해 북한의 독재 체제를 비판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2005년 북한인권 국제대회에 참석한 황 전 비서의 말입니다.
"북한 독재집단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의식을 말살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자기들의 독재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생존전략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후 탈북자 단체들을 규합해 북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민주화를 향한 황 전 비서의 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황 전 비서가 그토록 원했던 미국 방문은 망명 6년이 지난 2003년에야 이뤄졌고, 자유로운 외국 방문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능해졌습니다.
황 전 비서는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정신적인 스승이었고 탈북자들에게는 사상적 구심점이었습니다. 대표적 북한인권 단체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한기홍 대표입니다.
”황 선생님의 타계는 북한 민주화 운동에 큰 손실입니다. 북한인권 운동가와 탈북자들이 노력해서 하루 빨리 북한의 인권 유린을 종식시키고 북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주 7시간씩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강의를 했던 황 전 비서는 평소 후학을 양성하는 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황 전 비서에게 강의를 들었던 탈북자 김은정 씨는 “지난 10일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1시간 이상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셨다”며 탈북자들에게 애국심을 갖고 통일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군부 독재체제가 허물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탈북자들이 남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북한 주민들에게 거울이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 탈북자들이 북한 사람 10명, 20명, 30명을 이끌어야 한다, 탈북자들이 남북관계에서 큰 디딤목이 돼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
철학자이기도 한 황 전 비서는 한국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철학을 강의하고 20여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1년 간 황 전 비서의 철학 수업을 들었다는 김소울 씨는 “제자들에게 인자한 스승이자 평생을 인본주의 철학을 설파하며 살다간 학자”라며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시간을 굉장히 행복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 일각에선 학자였던 황 전 비서가 망명 이후 반북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내 이념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최고위층으로 활동하다 망명해 자택에서 숨지기까지 분단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살았던 황 전 비서는 북한의 당 창건 기념일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공식 등장하던 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오늘 (14일) 향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북한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자, 망명 이후 북한 체제 비판의 선봉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황 전 비서는 분단의 아픔을 안은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