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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을 때는 자유·권리 의미 몰라"


지난 19일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북한 평양 시내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지난 19일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북한 평양 시내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북한 고위급 간부 출신인 아버지와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 남매는 북한에 살고 있는 동안엔 자유와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느낀 자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 이서현 씨는 26일 워싱턴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개최한 인터넷 화상 간담회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자유나 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서현 씨] “I didn't know what the freedom means and the rights means. And then, I didn't know the North Korea is actually a dictatorship, and never suffer from hunger in North Korea, but I didn't have the full freedom as the other international society enjoy.”

또한 북한이 독재정권 하에 놓여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면서, 북한에서 굶주림을 겪지는 않았지만 다른 국제사회가 누리는 완전한 자유를 갖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였던 아버지 리정호 씨를 비롯해 어머니, 오빠 이현승 씨와 함께 2014년 10월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한 이서현 씨는 탈북 후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을 때 한반도 분단 후 75년 동안 한국이 보여준 발전상이 놀라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서현 씨] “It was really amazing to how South Korea had the all the development over the 75 years. It was the same country before it was divided by South Korea and North Korea. We are all the same nation. The only thing that made two parts different was the system, I believe so. If North Korea accepted the democracy and capitalism, instead of the socialism, I believe North Korean people would live pretty similar condition like South Korean people.”

한국과 북한으로 나눠지기 전까지는 하나의 나라였으며, 두 나라를 서로 다르게 만든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체제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사회주의 대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면 북한 주민들도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이현승 씨(오른쪽)와 이서현 씨 남매.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이현승 씨(오른쪽)와 이서현 씨 남매.

이서현 씨의 오빠 이현승 씨는 북한군에 입대해 3년 넘게 군 복무를 한 뒤 중국의 동북재정경제대학에 유학을 갔을 때 중국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가 놀라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에 가보니 한국 사람들은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China achieved so many things, in terms of freedom and free speech and travel and then freedom of movement. But I defected in 2014, and I realize South Korea has more freedom and more to enjoy in your life, and then all these economy development, and then those freedom. What they have do not come from the government.”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자유가 놀라웠고, 한국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후 신변 보호 상 가족이 모두 한국에 머물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을 때 자유와 삶의 질에 있어서 미국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The life in the United States is like ocean, life in South Korea is like a river, and the life in China is like a stream, and the North Korean life is like a pool, in terms of like a freedom, and in the life quality.”

그와 비교해 한국은 강과 같았고, 중국은 개울과 같았으며, 북한은 웅덩이와 같았다는 겁니다.

이현승 씨는 자신의 가족이 탈북을 하게 된 것은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이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의해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We found out that, you know, my friends were executed, and several were sent to prison camp, and things happened to my father's friend and my sister’s friends as well and we are very tired of seeing this instance, and then we believe it's not the country we continue to live, and it's not the leader we should serve.”

북한이 더 이상 자기들이 살 곳이 아니고, 김정은 위원장은 더 이상 섬길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현승 씨는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문제의 핵심에 놓여있다며,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우선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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