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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맨해튼의 자유를"...북한 '엘리트' 남매, 워싱턴서 독재체제 변화 촉구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이현승 씨(오른쪽)와 이서현 씨 남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였던 아버지와 함께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두 남매가 워싱턴에서 북한 정권의 실체를 알리고 체제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북한 ‘엘리트’ 계층마저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의 폭압성과 극도로 열약한 인권 실태를 비판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대대적으로 전파하지 않고 북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이현승 씨와 이서현 씨 남매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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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두 분은 2016년 워싱턴포스트지를 통해서 “북한 상위 1% 엘리트 계층”으로 소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평양에 살면서 뉴욕 맨해튼 수준의 삶을 누렸다고 해서 ‘평해튼’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으로 묘사됐던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두 분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이서현) 안녕하세요? 이서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평양에서 나서 자랐고요. 이설주가 다녀서 잘 알려진 금성학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평양 외국어학원에서 중국어,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저는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 문학부를 2년 다니고 중국에 유학을 나가 오빠가 다니고 있던 동북재경대학 금융학부에 입학해 2014년 7월 졸업했습니다.

이현승) 안녕하십니까? 이현승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금성학원에 다니면서 음악을 좀 배웠고요. 그 후로는 평양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 뒤로 북한군에 입대해서 3년 이상 군사 복무를 했고 중국에 있는 동북재정경제대학에서 국제무역과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북한과의 무역도 실전경험을 했고요. 2014년 10월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서 망명했습니다.

기자) 아버지께서 북한 39호실 고위 관리를 지내신 분이 맞죠? 공개하실 수 있습니까?

이현승) 예. 저희 아버님(리정호 씨)은 39호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고요. 39호실 산하 대흥총국의 선박무역회사 사장과 무역관리국 국장, 나중에는 금강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등을 거쳐서 2014년 망명 직전엔 중국 다롄주재 대흥무역총회사 지사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북한 시민의 최고 영예인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으셨습니다.

기자) 두 분 모두 평양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가 중국 유학 생활까지 경험했단 말이죠. 폐쇄된 사회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누렸던 젊은이들이 과연 외부 세계를 얼마나 동경했을까 궁금하거든요.

이현승) 북한에서 과거 한 20년 전부터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면서부터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젊은 세대들은 적게나마 자본주의를 경험한 세대가 많고요. 그리고 해외에 나갔던 분들은 직접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살면서 그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해서 배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사회가 매우 폐쇄적인 사회이고 국제사회와 단절돼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면 그런 사상이나 생활에 대해서 남들한테 이야기도 할 수 없고 공유를 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많이 보고 느낀 분들이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누렸던 것을 북한에 돌아가서 누리지 못하게 되면 거기에 대한 그리움이 많거든요. 그런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 세상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많이 부러워하고 그래서 더 한국 드라마나 미국의 영화 같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그런 창작물들을 보려고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바깥 세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탈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란 말이죠. 북한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이곳에서 반드시 탈출해야 겠다, 그런 생각이 절실한 순간이 있었던 건가요?

이서현) 네. 제가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 저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대학 4년 기간 동안 같이 방을 썼던 룸메이트가 제 눈앞에서 보위부 요원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정말 너무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내 친구와 가족이 그렇게 처참하게 끌려가는 걸 목격하는 그때 그 당시의 심정과 그 후 그 가족에게 생긴 비참한 결말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 외에도 말레이시아 대사의 아들이나, 또 수많은 제 친구의 가족들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고 부모들이 처참히 처형되고 하는 사실들을 접하게 되면서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인식, 또 이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됐습니다.

기자) 오빠 이현승 씨는 인민군으로 복무하셨다고 했습니다. 소위 ‘평해튼’ 삶을 살다가 상당히 열악한 북한 군대를 경험한 것은 아주 극적인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혹시 그게 북한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계기는 아니었을까요?

이현승) 네, 군 생활 경험이 저에게는 정말 값진 시간이었고 도전과 시련을 겪은 시기였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고요. 제가 군을 가게 된 계기는, 저희 학교는 군 복무를 면제받는 특목고였지만 저는 자원을 해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한가지 실례를 들자면요, 군 생활을 4군단 해주에서 시작했거든요. TV를 틀면 한국 TV도 가끔 나왔습니다. 주파수가 고정이 안 돼서요. 북한은 절대적으로 전기가 부족합니다. 거의 3일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씩 전기를 볼 수 있거든요, 한두 시간씩. 그래서 다른 친구의 부대인 해상경비대에서는 자전거로 페달을 밟아서 전기를 생산하는 공정을 거쳐서 그것으로 TV를 보는데, 팀 전원이 한마음이 돼서 한국 TV를 공유하고 있더라고요. 그것에 대해서 많이 놀랐었고요.

기자)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 식량 배급 상황이라든지 그런 과정에서 좀 이상하다, 이런 점을 발견한 적이 있으세요?

이현승) 제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군 복무를 했습니다. 국제사회가 그때 당시에 북한에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도 식량 지원을 많이 했고요. 한국에 와서 보니까 그때 남북교류하고 식량 지원하고 했던 것이 다 북한 주민들에게 갔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북한 주민에게 그 식량이 간 것은 아니고요. 북한 군인들이 소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부대에서 한국, 대한민국에서 지원한 쌀이라고 적힌 쌀 포대를 나르고 모든 군인들이 섭취를 했습니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군부대에서 식량이 없어서 하루 두 끼씩 먹고 이런 부대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 초반에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하면서부터 식량이 대대적으로 들어오게 되고, 대부분의 식량이 한국으로부터 지원된 쌀이었고, 북한의 거의 모든 군부대가 한국에서 지원된 쌀을 가지고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기자) 두 분처럼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젊은이들은 북한에서 주로 어떤 길을 걷게 됩니까? 두 분이 지금 평양에 그대로 살고 계신다면 예정된 진로가 있었나요?

이현승) 북한에서 교육을 잘 받고, 또 해외에서도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북한 정권에서 중용되는 코스를 밟고 있습니다. 저도 북한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김정은 정권을 위해서 일하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해외에 살면서 자유가 소중한 것을 알고요. 김정은 정권의 비인간적인 만행들을 보면서 그 정권을 위해서 더는 복무할 수도, 그 밑에서 살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기자) 어떻게 보면, 말씀하신 대로 권력 가까이서 순탄할 수도 있었던 북한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선택한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의 생활, 만족하십니까?

이서현) 네. 당연히 만족합니다. 누구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이 생활에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기자)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

이서현) 저는 워싱턴 다운타운 5성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현승) 저는 지금 미국의 싱크탱크와 미국의 NGO, 비영리단체에서 북한과 관련한 자문역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두 분 모두 4년 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한 뒤에 공개 활동을 하진 않았거든요. 유튜브라는 창구를 통해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는 뭘까요? 동생 이서현 씨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서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폐쇄적인 국가,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북한에 대해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선전·선동을 위해 포장한 단면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북한 내막의 진실을 잘 모르고 있는 분들에게 북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그들을 노예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북한에 자유를 가져오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면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자) 유튜브를 통해 북한 실상을 설명하는 탈북민분들 영상을 자주 접했읍니다만 북한의 이른바 엘리트 출신 젊은이들이 영어로, 그것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방송하는 것은 두 분이 아마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요. 어떤 채널을 통해 북한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죠?

이서현) ‘평해트나이트(Pyonghattanite)’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요.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지 않습니까? 또 자유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고요. 저희는 평양도 맨해튼처럼 자유가 상징인 도시가 되기를 바라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뉴요커들처럼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또 그들이 북한 전체에 자유를 가져다주기 바라면서 ‘평해트나이트’라고 이름을 짓고 채널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이현승) 북한 체제의 본질에 대해서 아직도 국제사회의 많은 분들이 왜 김정은 체제가 주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왜 핵을 포기할 수 없고, 왜 인권을 말살하는지 그런 인식이나 지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경험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사회의 본질에 대해서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어서 저희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자) 바로 며칠 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고, 지금 당선자 확정이 안 돼서 상당 기간 진통이 예상되는데요. 정치의 중심지에서 직접 겪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두 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현승)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느꼈던 점은 미국이 참으로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법치가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보면서 조금의 의혹은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균형과 견제가 잘 형성된 나라라고 생각하고요. 어떤 의혹도 법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나라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자) 차기 미국 대통령이 그럼 어떤 대북 정책을 취해 달라, 혹시 기대하는 바나 구체적으로 주문하고 싶은 접근법이 있나요?

이서현) 네. 제가 차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런 부탁이나 기대를 하고 싶고요. 북한 인권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현승) 차기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핵 문제에만 그렇게 포커스를 맞춰서 외교 정책을 펼치기 보다는요, 북한 정권의 본질에 대해서 똑바로 알고, 왜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지, 왜 김정은 정권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안 주고 그들의 인권을 말살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와 미국이 합심해서 북한 정권이 개방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고 인권을 해결하는 것이 북한의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앞서 북한의 친한 동기생, 또 동료 이야기도 했는데, 북한에 남아있는 분들에게 워싱턴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동생분부터 말씀해 주시죠.

이서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북한의 잘못된 체제의 속성에 대해서 잘 들여다보고, 깨우치고, 또 그들이 자유 세계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또 그들만 자유를 찾는 게 아니라 북한에 남아있는 북한의 동포들에게도 자유를 찾아주는 일에 같이 동참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현승) 저의 동료들과 친구들,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배운 것보다 더 많은 비인간적인 만행과, 체제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게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거기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 그리고 그 정권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북한 정권은 앞으로도 100년 이상 갈 거라고 보고요. 여러분의 시대에 맞게 여러분이 옳은 결정을 하길 바랍니다.

2014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현승, 이서현 씨 남매로부터 북한 정권의 실상과 체제 변혁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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