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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출 구조 ‘미얀마형’ 고착화…제재 풀려도 ‘빈곤의 덫’ 될 것”


북한 라선 경제특구의 의류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재봉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라선 경제특구의 의류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재봉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의 수출 구조가 저개발국형에 장기간 머물면서 빈곤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대북 제재가 해소되더라도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경제 회생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수출 구조는 지난 1998년 만해도 한국과 유사했지만 이후 20년 사이 미얀마 같은 저개발국형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원, KDI의 이우정 전문연구원은 ‘KDI 북한경제 리뷰 4월호’에 ‘수출유사도 지수를 활용해 분석한 국가별 수출품목 변화’라는 제목의 분석 자료에 이 같은 내용을 실었습니다.

‘수출유사도 지수’(ESI)란 수출품목의 유사성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양국 간 수출품목의 구성이 비슷할수록 높은 값을 갖게 되는 지수입니다.

1998년에서 2017년 사이 20년 간 북한의 수출품목은 광물성 연료의 비중이 가장 크게 늘어난 게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다음으로 증가율이 큰 품목은 의류였습니다.

광물성 연료의 경우 1998년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불과했지만 2017년엔 24.6%로 치솟았고, 의류도 1998년 14.7%이던 게 2017년엔 27.2%로 급증했습니다.

반면 비중이 가장 크게 줄어든 품목은 전기기기와 원자로, 기계류 등이었습니다. 전기기기의 경우 1998년 17%였던 게 2017년 2.6%로 쪼그라들었고 원자로와 기계류도 같은 기간 8.7%에서 1.7%로 급감했습니다.

1998년 북한의 수출품목은 당시 중상위 국가로 분류됐던 한국과 가장 유사했고 홍콩, 태국, 중국, 일본 등과도 수출유사도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2017년엔 저개발국가인 미얀마와 수출유사도가 가장 높게 나왔고 모로코, 튀니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도 유사도가 높은 나라로 조사됐습니다.

이우정 전문연구원은 1998년 북한과 수출유사도 지수가 높았던 한국 등 5개 나라들은 이후 20년 동안 해당 지수가 일제히 하락하는 추세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이들 나라들이 20년 간 수출 구조를 선진화시킨 반면 북한은 반대로 수출 구조가 저개발국형으로 퇴보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해 정연하 KDI 부연구위원은 ‘국제비교적 관점에서 본 북한 수출 구조의 질적 저하: 1998~2017년’ 보고서에서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수출 구조가 질적으로 악화됐고 경제 체질 개선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양자 제재와 유엔 제재의 반복, 정책의 실패 등이 겹치면서 북한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정 부연구위원은 북한의 수출과 생산 구조가 대외교역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광산품과 저임금 기반 상품에 편중되면서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정연하 부연구위원] “2000년대 후반부터 광물성 상품 수출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무연탄이나 석탄 같은 것들이.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되는, 그냥 석탄 캐다가 중국에 파는 그런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었는데 광물성 상품뿐만 아니라 이번엔 전체적으로 다 쪼개서 한번 보자해서 봤더니 전반적으로 저부가가치 상품 수출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요.”

중국의 북한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은 비교우위가 아닌 중국의 수요로 인해 결정되기 때문에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하게 되며, 또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의 생산구조 다변화나 생산 유연성 등을 저해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고난의 행군’ 시기 즈음엔 20%가 채 안됐지만 2017엔 90%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잇단 대북 제재 강화로 인해 2018년엔 수출량마저 전년 대비 무려 86.3%나 줄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8월부터 유엔 회원국에 대해 북한산 석탄, 철광석, 수산물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대북 결의 2371호를 시행했고 같은 해 9월부터는 북한산 직물과 의류 완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2375호를 시행했습니다.

북한의 수출 급감은 이 같은 제재가 북한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수입을 크게 감소시킨 때문이었습니다. .

정연하 부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정연하 부연구위원] “당연히 제일 중요한 것은 제재가 해제될 수 있는 국제정세를 만드는 데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일 텐데 그런 국제정세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일단 중국에 너무 의존하다가는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게 제 메시지라고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중단기적으로 저숙련, 노동집약적인 상품 생산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수출을 강화하려면 더욱 적극적인 교류 협력과 시장의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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