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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 한국전 문서 일부 공개...“북한, 지원 제의에 무응답” 


한국전 당시인 1951년 12월 18일 적십자 소속 이탈리아 의료진이 어린이들이 치료 받고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한국전 당시인 1951년 12월 18일 적십자 소속 이탈리아 의료진이 어린이들이 치료 받고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모두에 인도적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한국 내 북한군 포로수용소를 160차례 방문해 수감자들에게 식량과 담배를 공급하며 인도적 지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가 의사결정 기록을 70년 후 공개하는 원칙에 따라 최근 한국전쟁 기록물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스위스 공영매체인 ‘스위스인포’(Swissinfo)는 5일 입수한 자료를 통해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당국 모두에 전보를 보내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 외무성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ICRC는 1949년 새롭게 확대-보완된 4개 제네바협약에 따라 인도적 지원, 억류 수감자 등 포로와 민간인 보호 활동을 위해 이런 지원 제의를 했으며, 당시 남북한 정부는 모두 새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전쟁 발발 다음날인 26일 지원 제의를 바로 수용해 7월 3일 프레데릭 비에리 초대 한국 대표가 한국에 도착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국제적십자위원회 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그러나 북한 당국의 무응답으로 새로 임명한 북한 담당 요원들이 소련을 거쳐 북한 입국을 시도하고 홍콩에서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에는 당시 전쟁포로와 피난민 상황을 설명한 비에리 대표의 전보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군 포로들은 대부분 18~20세로, 1주 정도의 군사훈련과 1~2주의 사상교육을 받은 채 일부는 무장도 제대로 못 하고 전쟁에 투입됐으며, 체포될 경우 고문을 받거나 사살됐다는 내용입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단은 북한군 포로들에게 쌀과 보리, 담배를 지원했다며 당시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담배를 받는 북한군 장교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비에리 대표는 또 공군과 의사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통해 북한군에 체포된 미군 포로 150~200명의 행렬, 이 가운데 일부가 반자본주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으며, 모두 상태가 나빴고 일부는 구타를 당한 것처럼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아울러 한국 적십자 관계자를 통해 피란민 60가구에 대한 지원으로 가구당 5달러의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당시 실질적인 생활비의 5분의 1이었지만 생존은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에리 대표는 또 1950년 7월 21일 보낸 전보에서 선전물이 너무 많아 언론보도를 신뢰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가족에 대한 학살은 이 시점까지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만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앞서 지난 6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국 ‘연합뉴스’를 통해 전쟁 기간에 포로와 피난민들을 지원하는 사진을 일부 공개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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